2021년 9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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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단상]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류지현, 안나, 아나운서·커뮤니케이션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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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주보에 글을 쓰면서 아버지의 빈자리가 많이 생각납니다. 아버지가 황급히 하늘나라로 떠나신 건 7년 전 주님 승천 대축일, 이후 매년 5~6월이 되면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더욱더 깊은 가슴앓이로 찾아옵니다.

아버지의 흔적이 남은 방에는 서랍마다 수년간의 매일 미사 책과 주보, 그리고 신문에서 매일 스크랩하신 3개 국어 학습 노트 수십 권이 있습니다. 성체를 귀하게 영하셨던 아버지가 몇 번의 수술 이후엔 평일 미사를 집에서 대체하시며 미사 책이 필독서로 쌓여갔습니다. 여러 해 전의 사고가 몇 차례 수술의 원인이 됐을 것이라고 늘 미안한 마음을 갖습니다.

어느 해의 12월 31일, 송년 생방송 진행을 위해 늦은 밤에 집을 나서는 딸이 안쓰러우셨던지 아버지가 동행하셨습니다. 장시간 추운 야외 일정에 대비해 보신각 근처 한 건물 2층에 들렀다가, 한복을 입고 어렵게 어두운 층계를 내려오는 딸만 조심스럽게 챙기시던 아버지가 얼어 있던 계단에서 미끄러지셨습니다. 뼈가 부러져 꼼짝 못 하시는 아버지와 다가오는 방송 시간 사이에서 갈등하는 딸에게 아버지는 “염려 말라”고 애써 미소를 보이셨고, 어서 가라 손짓하시는 아버지를 뒤로 한 채 저는 현장으로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방송 후 연락해 보니, 아버지는 병원에 실려가서도 혹시 딸이 걱정 가득한 모습은 아닐지 TV에서 눈을 떼지 못하시다가 저의 미소 띤 얼굴을 보고 나서야 안심하고 치료를 받으셨다고 합니다.

아버지는 1년가량 깁스로 고생하시면서도 염려하는 딸의 마음을 헤아려 단 한 번도 아픔을 내색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렇게 배려와 진한 사랑을 남기신 아버지는 늘 ‘성령의 인도하심, 예비하심’을 믿고 사셨고, 자녀들이 실패나 어려움에 직면할 때면 “주님께서 가장 좋은 길로 이끌려고 하신다”고 희망을 주셨습니다. 좋은 일은 ‘주님의 안배하심으로…’가 아버지 사고의 중심이었습니다.

그런 말씀들이 현실감 없이 고리타분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모든 걸 너무 신앙적으로 받아들이셔서 손해 보는 것 같아 답답하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아버지를 추억하며 그 신앙의 의미를 이제 조금씩 느낍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얼마나 많은 순간 더 나쁜 선택을 하지 않았고, 더 큰 위험에 처할 위기에서 구제되었고, 더 깊은 절망에 빠질 고난에서 일어섰는지. 걸어온 모든 길이 주님 뜻이었음을. 지금 이 지면으로 나의 작은 신앙 체험을 나누라는 부르심까지도 모두 성령의 인도하심과 예비하심임을.

그래서 저 또한 아버지에게서 새겨진 그 신앙의 뿌리를 자녀들에게 대물림하게 됩니다. 저의 시아버지께서 삶의 지표로 삼으시는 신명기 6장 5절,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느님을 사랑하라”는 말씀을 자녀들에게 인생의 선물로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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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1-07-07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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