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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돋보기] 17세 소년 이민식 빈첸시오의 신심

이정훈 필립보 네리(신문취재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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뙤약볕 내리쬐던 7월 어느 날. ‘윙~’하는 잔디 깎는 기계가 미리내성지 한복판 잔디밭을 다듬으며 풀 내음을 자아내고 있었다.

드넓은 성지를 가로질러 당도한 작은 경당 앞. 성 김대건 신부와 어머니 고 우르술라가 모셔진 묘소 앞에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그런데 바로 옆, 또 다른 이의 묘가 눈에 들어온다. 김대건 신부가 새남터에서 처형당하고 40일 만에 시신를 수습해 홀로 이곳 미리내까지 옮겨온 이민식(빈첸시오, 1808~1921)의 묘이다.

이 빈첸시오는 김대건 신부의 복사를 서며 사제를 꿈꾸던 17세 소년이었다. 그는 ‘나도 김대건 신부님과 같은 사제가 되어야지’ 하며 그를 따랐을 것이다. 그러다 1846년 9월 16일 김대건 신부가 새남터에서 순교했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듣는다. 그는 머리와 몸이 토막 난 채 새남터 모래사장에 가매장된 김대건 신부의 유해를 40일 만에 수습한다. 그곳을 감시하던 포졸들의 동태를 한 달 넘게 살핀 것이다.

때는 10월 중순. 기골이 좋았던 이민식은 김대건 신부의 유해를 이불깃에 둘둘 싸맨 뒤 지게에 올렸다. 그렇게 새남터에서 산과 고개를 넘어 미리내까지 150리(60㎞)를 닷새 만에 당도한다. 혹여나 포졸들에 발각될까 밤에만 몰래 거친 숲길을 걸었다. 그 먼 길 동안 존경했던 사제의 무거운 유해를 등에 짊어진 마음은 어땠을까. 순교한 지 한 달이 넘은 사제의 유해는 적잖이 부패가 진행되고 있을 터였지만, 덩굴과 콩밭에 유해를 잘 숨겨 미리내에 도착한다. 그의 묘소 앞에서 존경하는 사제의 주검을 업고 먼 길을 숨어 걸어야 했던 한 평신도의 마음을 떠올렸다.

이 빈첸시오는 김대건 신부뿐만 아니라, 고 우르술라와 페레올 주교 유해도 거두어 거룩히 모셨다. 훗날 그는 재산을 모두 교회에 봉헌하고 92세에 선종했다. 올해는 이 빈첸시오의 선종 10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오늘날 우리 평신도들이야말로 수많은 성인과 순교자를 등에 업은 나귀들이 아닐까. 엄중한 상황 속에서도 성인 사제를 부모 모시듯 정성스레 수습해 안장한 신앙 선조의 마음도 묵상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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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1-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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