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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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인의 눈] 할머니, 이제 안 외로우시죠? / 김형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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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월 여사가 돌아가셨습니다. 박정월이 누구야? 여사라고? 할머니는 아흔 넷의 세월을 살아오면서 제 속으로 낳은 자식도 없고 왕래하는 친지도 없이 홀로 사시다가 요양보호사 아주머니에 의해 그 마지막이 발견됐습니다. ‘정원에 뜬 달’이란 아름다운 뜻을 가진 그 이름을 아는 이는 이 세상에 몇이 안 됩니다. 그리고 ‘여사’ 하면 영부인에게나 어울리는 말이지만 그래도 나는 아는 사람도 별로 없는 할머니 이름을 부르고, 여사라는 호칭을 붙여 마지막 가는 길을 애도합니다.

몇 년 전, 온 천지가 타들어 가듯 뜨겁던 어느 여름 날 병원에서 할머니를 처음 뵈었습니다. 구순의 할머니는 다리를 다쳐 병원에 누워 계셨는데 너무도 정정하셨습니다. 할머니는 얼마 안 되는 재산이지만 평화와 통일을 위해 잘 써 달라는 뜻을 밝히셨습니다. 당신은 처녀 시절 미혼인 줄 알고 결혼했던 남편이 전처소생 자식을 셋이나 데리고 있다는 걸 뒤늦게 알았습니다. 그래도 그 애들을 위해 제 자식 안 낳고 잘 키웠습니다. 사업 수완이 있어 가족 생계를 책임졌고 전처 자식들 시집 장가보낼 때 먹고 살 밑천도 마련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할머니 잘 모실 생각은 않고 재산에 관심을 가지다가 급기야 얼마 전에는 막말까지 해대고 결국 민형사 소송에까지 이르게 됐습니다.

할머니는 형제들이 이북에 있어 아주 오래 전 북에 가려다 붙잡혀 국가보안법으로 감옥살이를 한 적이 있고, 그 뒤 북에 있는 조카들과 연락이 닿아 제법 큰돈을 보내 주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전처 자식들은 이런 왕래편지를 빌미로 할머니를 국가보안법으로 고발하겠다는 으름장을 놓기도 했습니다. 이제 마지막 길에, 찾아와 엎드려 절할 이가 없어 빈소도 차리지 못한 터에 왕래가 별로 없던 조카들과 전처 자식들의 연고권 문제로 장례도 제때 못 치르고 할머니는 차가운 냉동고 속에 속절없이 누워 있습니다.

참, 하느님도 무심하시지. 저 냉동고 속 할머니가 처녀시절 왜 속아서 결혼을 하게 내버려 두셨나요. 마음 넓은 총각 만나 토끼 같은 새끼들 낳아 증손주들 재롱 보다가 눈감도록 해 주셨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아니, 그런 호사는 못 누리더라도 그저 전처 자식들이며 조카들이라도 마지막 가는 길에 달려와 엎드려 절하고 눈물로 보내 드리게 하실 수는 없는 건가요. 할머니 유지를 받들어 뒷일을 수습해야 할 나로서는 참으로 원망스러웠습니다. 잠이 안 와 뒤척이다 곰곰 생각해 보니 어디 저 할머니 일뿐 아니라 세상사 모두가 그렇더군요. 착한 이가 잘 되고 나쁜 놈이 망하고 일이 순리대로 풀리는 경우가 어디 흔하던가요.

예수님 일만 해도 그렇지요.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분이 왜 거지처럼 마구간에서 태어나 병든 자, 어부, 세리, 가난한 이들 같은 밑바닥 인생들과 어울려 다니시다 제자에게 배신당하고 강도 옆에서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셨다는 건가요.

아니, 예수님 스스로 가난한 이가 복이 있다고, 슬퍼하는 이가 복이 있다고, 의로움 때문에 박해받는 이가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으니 할머니의 박복한 삶을 이유로 하느님을 원망할 일이 아니라는 깨우침이 새삼 들었습니다.

아니, 이 흠투성이 ‘나’ 밖에 어디 저 멀리 하늘나라에 하느님이 따로 계셔서 나의 운명이며 세상만사를 좌지우지하시는 게 아니라, 이 흠투성이 ‘나’가 바로 하느님의 모상(Imago Dei)이며, 이 흠투성이 ‘나’야말로 당신의 손이 되고 발이 돼 당신 뜻을 이 세상에 펴 나가는 거란 깨달음이 새삼 다가왔습니다.

그렇습니다. 비록 장례도 제대로 못 치르고 빈소도 없이 냉동고 속에 누워 계신 ‘박복한’ 할머니지만 평화를 위해 가진 걸 모두 내어놓으신 저 할머니는 예수님 말씀에 따르면 박복한 게 아니라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입니다.

평생 통일운동을 하다가 ‘빨갱이’로 감옥을 들락거린 팔순, 구순 노인들에게 할머니 부음을 전했더니 발인 날에 오겠다고들 하시더군요. 그리고 화장한 유골은 먼저 가신 ‘빨갱이’ 할아버지들이 있는 북한산 자락 어느 절에 같이 모시로 했습니다.
평생 외로우셨던 할머니도 이제 더 이상 외롭지 않으시겠죠?

■ 외부 필진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김형태(요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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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1-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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