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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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진단] 가을 우체국 앞에서(최영일, 빈첸시오, 공공소통전략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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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기로 보면 처서도 지나고 추분을 기다리는 가을로 접어들었다. 살아온 경험으로 추석까지 낮 햇볕은 따갑지만, 아침저녁 선선한 기운은 살갗이 계절 변화를 느끼기에 충분하다. 한여름 매미떼의 시끄러운 합창은 멀리 사라져 가고, 땅에서 솟아올랐는지 귀뚜라미를 비롯한 풀벌레들의 가을 하모니는 또 다른 느낌을 준다. 이렇게 자연은 순환하지만 시시각각 변화한다.

그 속의 일부인 우리는 감각을 통해 자연을 경험한다. 대기의 변화를 촉각으로 느끼고, 길고 선명해진 그림자를 시각으로 느끼고, 곤충의 소리를 청각으로 느낀다. 그 무엇이 느껴질 때 감각의 자극은 생각으로 이어진다. 사람이기에 우리 내면의 무언가가 떠오르게 되는 것이다.

환절기 또는 간절기라고 부르는 찰나의 가을, 우리는 무엇을 사색할 것인가? 아, 트렌치코트를 꺼내야겠다. 곧 우수수 떨어질 낙엽길을 코트 자락 휘날리며 걸어봐야지. 트렌치코트 하면 로버트 테일러와 비비언 리가 전쟁의 와중에 비극적 사랑을 하는 스토리, 클래식 무비 ‘애수’도 떠오르고, 홍콩 누아르의 주윤발과 장국영이 강호의 의리를 이쑤시개처럼 씹으며 폼 나게 걷던, 젊은 날 인상적이었던 레트로 작품들의 장면들도 스쳐갈 것이다. 이맘때면 라디오에서 윤도현의 노래 ‘가을 우체국 앞에서’가 많이 흘러나오는데 워낙 가을 정서와 밀착된 명곡이라 시와 같은 가사에 흘러간 세월의 여러 에피소드가 샘물처럼 솟아올라 자신의 살아온 인생을 돌아보게 되는 기억의 방아쇠 역할을 한다.

가을의 의미. 두 해째 이어진 글로벌 코로나 팬데믹, 그 위험이 어쩌면 더 커지고 있는 바이러스와의 전쟁 시대에 우리가 점검할 존재의 성숙, 인격의 무르익음, 자아실현의 수확은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까?

그리고 관계. 소셜 버블을 이루고 일상적으로 소통하는 가족, 벗, 동료, 지인과 더불어 소소하지만 소중한 삶을 누리고 있음에 감사할 수 있는지 물어야 할 계절이다. 가을은 바야흐로 성찰의 계절인 것이다. 자신을 비추어 돌아보고, ‘Winter is coming.’ 긴 겨울의 공세가 닥쳐올 것에 대비하며 나 자신의 뿌리와 줄기와 가지를 다듬고, 때어낸 과실은 이웃과 공동체에 돌리고, 새로운 자기충전을 준비할 잠깐의 여유인 것이다. 이것을 지금 못하면 순식간에 추석이 지나고, 성탄절이 지나고, 2021이 2022로 숫자가 바뀌는 연말연시에 삶의 지표를 놓치고, 내년 3월 대통령 선거라는 정치적 대립과 혼란 속에 매일 터지는 뉴스에 일희일비하다가 내년 가을이 되어서야 정신 차리게 될지 모른다.

다시 라디오에서 흐르는 노래 가사가 기분 좋게 마음을 울린다.

“가을 우체국 앞에서 그대를 기다리다 노오란 은행잎들이 바람에 날려가고 지나는 사람들같이 저 멀리 가는 걸 보네.”

세상에 아름다운 것들이 얼마나 오래 남을까. 한여름 소나기 쏟아져도 굳세게 버틴 꽃들과 지난겨울 눈보라에도 우뚝 서 있는 나무들같이 하늘 아래 모든 것이 저 홀로 설 수 있을까.

이제는 옛날 우체국은커녕 우체통 보기도 힘든 세상으로 바뀌었지만 그래도 생각해 본다. 그 어느 시절의 내가 가을 우체국 앞에서 기다리던 ‘그대’는 누구였던가? 지금은 그대를 만났는가, 아니면 여전히 기다리고 있는가, 아니면 잊었는가?

21세기에 아프가니스탄을 재장악한 탈레반의 여성인권 억압을 보며 우리가 사는 시대는 도대체 어떤 시대인가, 정신 차려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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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1-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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