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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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단상] 작은 배를 띄우는 마음(송희준 아델라,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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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부터 주변의 사람들보다 더 예민하고 섬세한 감정과 표현을 가졌던 저는, 저를 통해 어떠한 심상을 내어두는 일에 매력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학교에서 그림을 전공하면서부터는 작가가 되고 싶다는 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주 우연한 기회에 생각지도 못한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대학 생활을 하면서 필름 사진에 찍히게 되고, 그렇게 자연스레 모델 일과 지금의 배우 일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그림만 그려오던 저에게 배우 일은 낯선 세상이었지만, 점점 연기하는 것이 마치 그림을 그리는 것 같이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이토록 선물같이 주어진 일들에 흠뻑 빠지게 되었죠.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 매 계절이 제 모습대로 흘러가듯이 저의 마음도 어느 굴곡과 변화의 파도에 휩쓸리고 있었습니다. 때로는 큰 벽 앞에 서서 문고리를 찾지 못하는 어린아이처럼, 또 때로는 책상 가장자리에 곧 떨어질 듯 위태롭게 자리한 물잔처럼. 어떠한 불안감이나 외로움은 가슴 깊은 곳에 섬처럼 늘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여름, 초저녁의 푸른 땅거미가 질 무렵, 무심히 지나치던 길에 자리한 성당의 오렌지 빛깔의 초가 그날따라 유독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저는 무언가에 이끌리듯 문을 열고 들어갔습니다. 성당 안에는 아무도 없었고 저는 잠시 머물 생각으로 자리를 찾아 앉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두 눈을 감고 두 손을 모으고, 아무도 없는 어두운 성당에서 저는 결국 한참을 가만히 앉아있었습니다.

내 몫이라 여겼던 나의 연약함, 말로는 다 표현되지 않는 여러 감정을 그대로 내려놓을 수 있었습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요. 눈물이 그친 후, 마음은 한결 가볍고 편안했습니다. 처음 느껴보는 고요한 평안이었습니다. 부은 눈으로 성당 문을 나서는데 마당에 계시던 수녀님과 마주쳤습니다. 수녀님께서는 저를 가만히 보시더니 들꽃 같은 미소를 지으시며 “기도할게요” 하시고는 등을 토닥여주시고 가셨습니다.

그날 밤 저는 그 저녁의 잔상에서 쉽게 헤어 나오지 못하고 한참을 되새겨 봤습니다. 처음 보는 누군가가 나를 위해 기도해 준다는 사실이 “당신을 위해 기도할게요”라는 한마디 위로의 메아리가 되어 밤새 저를 감싸 안았습니다.

다음 날 이른 아침, 저는 무턱대고 성당으로 다시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수녀님께 여쭤봤습니다.

“수녀님, 저 계속 기도하고 싶어요. 성당에 다니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사실 저는 삶에 대한 의문과 존재에 대한 질문이 많았던 터라, 절대자를 믿어야 하는 종교를 갖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의 교만한 생각이었죠.

돌이켜 보면 하느님께서는 엷게라도 제게 와서 닿을 수 있도록 당신의 숨결을 드리워 주셨던 것 같습니다. 저는 이렇게 신앙으로 초대되어 제 작은 배를 띄우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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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1-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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