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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인의 눈] 오늘의 순교 영성 / 이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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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동생이 김대건 신부님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사제로부터 온 편지’를 무료로 온라인에서 볼 수 있다며 가족들에게 링크를 공유해 주었습니다. 올해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 탄생 200주년 희년 행사로 성인의 탄생일 전후에 진행된 온라인 시사회였습니다. 그날까지만 볼 수 있다는 문자 내용을 확인한 시간이 자정 무렵이라, 서둘러 접속해서 잠시 보다가 곧 끄고 잠이 들었습니다. 김대건 신부님의 삶을 오랫동안 연구해 온 교회사학자들과 집안 후손인 사제, 오늘의 사제인 젊은 신학생과 사제들의 인터뷰로 구성된 다큐멘터리라, 다 보지 않아도 대충 알만한 내용처럼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다음 날 아침 출근길에 어머니와 통화하는데, 어머니는 그 영화를 재미있게 잘 보셨다고 했습니다. 예전에 성지순례를 다니며 들어봤던 이야기지만, 그래도 또 새롭게 다가오는 내용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 시절에도 지금 코로나처럼 콜레라 같은 역병으로 고생했다는 건 이번에 처음 알았는데, 그때 신자들이 어려운 이웃들을 돌봤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참 신앙 선조들은 대단하셨구나 싶더라.” 그 말씀을 듣고 저도 영화를 끝까지 제대로 볼 걸 하는 후회가 들었는데, 혹시나 해 눌러본 링크가 여전히 열려 있어 다행히 영화를 다 볼 수 있었습니다.

제가 영화를 보며 인상 깊었던 내용은 시복시성 절차에서 기적 심사를 거칠 때, 한국천주교회의 순교성인들은 피의 순교라는 증거도 그렇지만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선교사 없이 스스로 교회 공동체를 이루었다는 사실 자체가 큰 기적으로 인정되었다는 설명이었습니다. 문득 예전에 한 원로 교회사학자께서, 한국천주교회의 순교 영성은 순교자 한 개인의 특출나고 영웅적인 성덕보다 초대 교회의 복음 정신을 그대로 살고자 했던 당시 신앙공동체의 영성 속에서 이해할 때 더 빛난다고 말씀하셨던 것이 떠올랐습니다. 신앙 때문에 끔찍한 고문 속에 처참하게 죽었다는 ‘죽음’의 숭고함보다,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고 신앙을 증거할 수 있었던 ‘삶’을 오늘의 우리가 더 새겨야 한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영화의 모티브가 된 김대건 신부님의 마지막 옥중 편지를 고이 새기고 간직했던 교우들의 심정을 헤아려봅니다. 교회 공동체가 생겨난 지 60여 년 만에 드디어 첫 번째 한국인 사제가 탄생했다는 기쁨을 채 느껴보기도 전에 형장의 이슬로 떠나보낸 교우들의 슬픔이 얼마나 컸을까요? 그러한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위험을 무릅쓰고 남몰래 순교자의 유해를 거두어 고향 땅에 모시고 온 신자들 덕분에, 김대건 신부님뿐 아니라 여러 순교자의 삶과 복음적 덕행을 글로 적어 전하거나 글을 모르면 그 내용을 외워서라도 마음에 새기고 가족과 형제, 이웃들과 나눈 신앙공동체 덕분에 순교성인들의 삶과 영성이 오늘날까지 우리에게 생생하게 전해지고 있습니다.

한국천주교회의 역사는 신자들이 자발적인 신앙공동체를 이루며 시작되었다는 것도 자랑스럽지만, 박해 시대 동안 교우촌이라는 신앙공동체로서 신앙의 명맥을 이어온 귀한 전통이 있습니다. 남들의 눈을 피해 숨어 사느라 가난하고 고단한 삶을 살면서도 함께 기도하고 서로 도우며 생활공동체가 곧 신앙공동체였던 교우촌은 성경 속 초대 교회 공동체의 삶과 이상이 이 땅에서 그대로 실현된 모습이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교회가 성장하면서, 교우촌은 대부분 순교성지나 유적지와 같은 과거 역사의 흔적으로 바뀌었습니다. 어쩌면 선조들의 신앙공동체 정신도 그렇게 과거의 영성으로 박제되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보게 됩니다.

올해는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 탄생 200주년 희년이라 전국 곳곳에서 9월 순교자 성월을 맞아 다양한 기념행사가 준비되고 있습니다. 대부분 김대건 신부님의 역사적 삶을 기억하려는 기념행사가 많지만, 기후위기 시대의 순교 영성은 생태적인 녹색 순교가 되어야 한다는 행사에 눈길이 갑니다. 순교 영성이 과거의 기억에 머물지 않고 오늘 이 땅에서 우리 신앙공동체의 삶과 증거로 이어져야 한다는 부르심처럼 여겨집니다.

■ 외부 필진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미영(우리신학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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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1-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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