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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화해·일치] 냉전을 넘어서는 대화 / 강주석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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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을 치르면서 소련과 협력이 필요했던 미국 루즈벨트 대통령은 교황청과 소련 사이의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노력했다. 1941년 9월 3일자로 비오 12세 교황에게 보낸 편지에서 루즈벨트는 소련이 어떤 형태로든 종교의 자유를 허용할 준비가 됐다고 설명한다. 이 편지에서 루즈벨트는 나치 독재정권보다는 러시아가 종교인들에게 더 나을 것이라고 주장했는데, 당시는 독일과 소련이 한창 치열한 전투를 치르고 있던 상황이었다.

하지만 교황은 루즈벨트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았다. 소련의 변화에 대해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면서, 교회에 대한 소련의 박해는 나치의 박해보다 훨씬 더 가혹하다고 단언했다. 스탈린이 종교정책에 어떤 변화를 줄 수 있을지 모르지만, 러시아 정교회에 대한 양보는 있을 수 있더라도 가톨릭에 유화적일 수 없다는 것이 비오 12세 교황의 생각이었다. 교황청과 히틀러의 관계도 불편한 게 사실이었지만, 소련과는 아예 교류 자체가 이뤄지지 않았다.

결국 비오 12세 교황은 전쟁이 끝나기 전인 1944년 9월 1일 라디오 연설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사유재산 소유를 반대하는 사회질서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분명하게 입장을 밝혔다. 그리고 그해 크리스마스 메시지에서 독재와 전체주의에 대한 단죄와 함께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호의를 직접적으로 드러냈다. 이듬해인 1945년 6월 샌프란시스코에서 유엔이 구성되는 상황에서도 교황청은 전후 유럽에서 소련이 갖게 될 중요한 역할에 대해 깊은 우려를 드러냈다.

지난 8월 12일 교황청 국무원 총리 피에트로 파롤린 추기경은 이탈리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교황청은 중국 정부와 대화를 계속하고 있으며, 교회는 신앙을 고수하고 있는 중국 신자들을 자랑스러워한다고 언급했다. 외교적으로 중국과 대화 국면임을 강조하는 파롤린 추기경은 ‘주교임명에 관한 잠정협약’을 둘러싼 논란에서 ‘서구세계’가 교황의 메시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점도 다시 강조했다.

사실 그간 주교임명 문제 등에 있어서 교황청이 중국 정부에 지나치게 유화적이라는 교회 안팎의 비난들이 있었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폼페이오 국무장관도 지난해 9월 잠정협약이 연장되기 직전에 “협약을 갱신하면 교황청은 도덕적 권위를 잃어버리게 될 것”라고 주장했다. 미중 갈등을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십분 활용했던 트럼프 행정부의 입장에서는 중국과의 대화를 이어가고 있는 교황청이 아주 못마땅했던 것이다.

냉전의 대립이 끝나지 않은 이 땅에서 복음화 사명을 지닌 교회는 자신의 소명을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 복음이 얘기하는 그리스도의 평화를 더 깊이 이해하면서, 세상의 힘이 아닌 성령으로 우리를 변화시키는 아버지 하느님의 자비를 기억하자.

■ 외부 필진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강주석 신부(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 총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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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1-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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