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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편지] 축복은 어디서 오나 / 송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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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그리스의 우화 작가인 이솝의 「나그네와 꿈」은 진정한 벗이란 무엇인가 하는 예를 맛깔나게 전해주고 있다. 친한 친구 두 사람이 같이 먼 길을 가는데, 산길에서 곰을 만난다. 한 사람은 자기의 위급만 생각하고 재빨리 나무 위에 올라가고 다른 한 사람은 달아날 수도 어쩔 수도 없어 그냥 땅에 쓰러진다. 곰은 그 나그네를 죽은 사람으로 여기고 냄새만 맡고 지나간다. 나무 위에 있던 그 친구는 이를 이상하게 생각하여 쓰러진 친구에게 묻는다. “곰이 자네에게 뭐라고 하던가?” 그러자 “자넨 곰이 내게 말하는 것을 못 들었는가. 위급할 때 도와주지 않고 혼자 나무 위로 올라가는 친구하고는 다니지 말라고 그러더군”하고 답했다. 이 말을 들은 친구는 몹시 부끄러워한다는 그런 이야기다.

우리는 세상을 살면서 무수한 사람을 만나고 헤어진다. 그러나 상대방이 정작 곤궁에 빠져 있을 때 선뜻 도와주기보다는, 앞뒤 계산부터 먼저 한다. 그리고 용기를 주기보다는, 도외시하는 경우가 더 많은 것을 본다. 한문 ‘만날 우(遇)’자에는 상대를 대접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그렇다. 진정한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란 ‘진심’이란 뜨거운 마음의 전류가 서로의 마음에 가 닿을 때, 그 만남에는 신의 축복이 내린다는 것을 깨닫지 못해, 나는 늘 우매함을 저지르며 생각 없이 사람을 만나며 살아가는 것도 같다. 무지개처럼 영롱한 신앙으로 맺어진 우정. 그것이 어떤 귀한 보석임을 모른 채 말이다.

내 신앙의 한 줄기 빛, 마리아는 P시에 이주하여 난생처음 가게를 하면서 첫 번째 사귄 이웃이었다. 그녀는 당시 옷가게(양장점)를 하고 있었다. 우리는 같은 나이에 같은 계열의 장사치에 같은 종교인이라는 점에서 그 여느 이웃보다 가까웠던 것이다. 그러나 당시 양장점은 기성복 물결에 밀려 그녀의 영업은 말할 수 없는 곤란을 받고 있었다. 더구나 IMF 한파까지 덮쳤다. 그러나 성스러운 교회에서 만나는 그녀에게서는 어떤 ‘쪼들림’도 느낄 수 없었다. 심지어는 쌀이 떨어져도 십일조는 물론 감사 헌금도 지성스럽게 냈다. 그런 그녀의 옷차림 또한 물 찬 제비같이 화려했다. 나는 그녀가 가끔 난색이 되어 돈 이야기를 하거나 생필품을 빌리러 올 때마다 아주 못마땅한 얼굴로 “신앙생활도 형편에 맞게 해야 한다”고 핀잔을 주곤 했다. 그럴 때마다 그녀는 밑도 끝도 없이 “축복은 준비된 자에게 찾아오는 선물이에요”라고 대꾸했다.

그 얼마 후 그녀의 양장점은 상가에서 말없이 사라졌고, 나도 가게를 힘들게 정리하는 중이라 그녀를 곧 잊고 말았다. 그로부터 많은 세월 뒤, 우연히 소식을 듣게 되었다. 어느 중소기업을 하는 분의 요청으로 기성복 재봉사업을 시작해서, 불같은 축복을 받아 그녀가 엄청 부자가 되었다는 소식 말이다. 냉담하고 있던 내 가슴에 불이 번쩍 드는 것 같았다. 그 후 또 많은 시간이 강물처럼 흘러가고 있다. 가끔 물 찬 제비같던 환한 그녀의 미소가 보고 싶다. 어쩜 내 겨자씨만 한 믿음은 그녀의 무조건적인 신앙심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만약 그때 그녀가 내민 힘든 손을 내가 기꺼이 잡아주었다면, 우리는 지금 어느 호젓한 찻집에서 마주 앉아 힘들었던 그 시절부터 다져온 우정에 온갖 수다를 털 터이다. 그러고 보면 홍상수 감독의 영화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처럼, 신앙생활이란, 항상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린’ 수학 문제 같은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보는 것이다.

■ 외부 필진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송유미(헬레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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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1-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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