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성가 가수 유승훈(프란치스코)씨가 9일 갑작스레 선종했다. 향년 54세.
고인은 9일 경기 부천시 상동역에서 쓰러진 채 발견된 뒤 병원으로 이송되던 중 숨을 거뒀다. 그가 발견되기 2시간 전 상동역 변전실에서 감전 사고가 발생했는데, 경찰은 이 사고와의 연관성에 대해 조사 중이다.
유씨는 평생 주님을 찬양하며 생활성가를 알린 1세대 생활성가 가수다. 가수 겸 편곡자요, 음반 기획자 등 전천후로 활동하며 한국 가톨릭 생활성가의 확대와 후배 양성, 발전에 가장 큰 역할을 했다.
그는 1991년 ‘신상옥과 형제들’ 창단 멤버로 당시 신상옥(안드레아)씨와 전국을 다니며 300여 회에 이르는 공연을 펼치며 교회 내 생활성가계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2000년대 들어 음반 제작자로 변신한 그는 주님을 찬양하려는 많은 선후배와 사제들을 위해 자신의 스튜디오를 내주고, 수많은 앨범이 빛을 보도록 산파 역할을 했다.
1살 때 소아마비를 앓아 목발과 휠체어에 의지해 지내면서도 수원가톨릭대 신학대 갓등중창단, 현정수ㆍ김태진 신부를 비롯해 수많은 생활성가 가수와 사제들의 앨범이 그의 손을 거쳐 나왔으며, 제작자로서 참여한 음반만 150개가 넘는다. 자신의 음반보다 앨범 제작에 어려움을 겪는 선후배들을 늘 걱정하며 물심양면 도왔던 그는 생전 “끝까지 하느님 찬양하다가 쓰러져 죽는 게 소원”이라고 밝혔었다. 그는 대표곡 ‘소망’, ‘하느님의 어린양’, ‘늘 그렇게’, ‘이 밤에’ 등을 통해 허스키하면서도 꾸밈없는 창법과 곡 분위기를 물 흐르듯 이끄는 기타 반주로 많은 이에게 사랑받았다. 이외에도 CPBC 가톨릭평화방송 창작생활성가제 밴드 리더, 가톨릭찬양사도협의회 회장 등도 역임하며 생활성가가 뿌리내리고, 교회 문화로 자리매김하는 데에 꾸준히 힘썼다.
고인의 장례 미사는 12일 인천교구 심곡부활성당에서 최호영(가톨릭대 음악과 교수) 신부 주례와 생전 그와 함께 작업했던 사제단 공동집전으로 유가족과 동료 가수들이 참여한 가운데 봉헌됐다.
이정훈 기자 sjunder@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