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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음] 춘천교구 이응현 신부 선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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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교구 이응현 신부가 11일 저녁 선종했다. 향년 95세.

고인의 장례 미사는 14일 춘천 죽림동주교좌성당에서 교구장 김주영 주교 주례와 김운회 주교, 사제단 공동집전으로 봉헌됐다.

1926년 북강원도 이천에서 태어난 고인은 어린 시절 미사를 집전하는 신부님을 보고 ‘나도 사제가 되겠다’고 마음을 먹고 꿈을 키웠다. 일찍이 돌 때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와 외동아들로 지낸 고인은 그렇게 이천성당을 다니며 사제 성소를 키웠다. 신학교 입학이 어려웠지만, 신학교 교수로 있던 삼촌 이재천 신부 덕에 소신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다.

그리고 1953년 서울 주교좌 명동대성당에서 사제품을 받은 후 군종 사제를 거쳐 문막ㆍ상동(현 공소)ㆍ풍수원ㆍ소양로ㆍ죽림동ㆍ동명동ㆍ운교동ㆍ가평본당 주임을 두루 지내며 본당의 기틀을 다졌고, 1969년 교구 총대리와 학교법인 상지학원 이사장도 지냈으며, 2000년 사목 일선에서 물러났다.

춘천교구 사제단의 맏형이었던 그는 사제들의 표양이자, 교구의 산증인으로 규칙적이고 소박하면서도 어디에 알리지 않고 늘 이웃을 돕는 사제였다. 사제가 미사 시간에 단 1분이라도 늦는다는 것은 100명 교우의 시간 100분을 빼앗는 것이라는 철칙을 늘 지켰고, 주변 사제들에겐 다소 엄하면서도 속정 깊이 조언하는 따뜻한 선배였다.

평소 ‘활동할 수 있을 때까지 신자들에게 봉사하며 살자’는 마음을 갖고 있던 이 신부는 은퇴 직후 ‘춘천교구의 요람’ 곰실공소로 짐을 옮겨 매주 주일미사를 봉헌하며 신자들과 함께 살아왔다.

고인의 추천으로 사제의 길을 걷고 있는 윤헌식(대진본당 주임) 신부는 강론을 통해 “6ㆍ25 동란과 어려운 시절 등 질곡의 역사 속에 신부님은 사제생활을 시작하셨고, 늘 규칙적인 삶으로 많은 사제의 표양이 되셨다”면서 “마지막 병상에서 제 손을 꼭 잡으셨던 모습을 떠올리며, 이제 천상에서 주님과 함께 그토록 그리워하시던 어머니를 만나뵙고 기쁨을 누리시길 기도드린다”고 추모했다.

고인과 80년 지기 동창으로 각별한 사이였던 김창렬(전 제주교구장) 주교도 추모사를 보내와 “이 신부와 나는 서로를 ‘너는 다른 나요, 나는 다른 너’라고 불렀고, 세상 다른 어떤 인연보다 나의 사제직에서 가장 소중히 여겨온 인연”이라며 “우리 동창 모두의 인연이 하늘에서도 살아있길 바란다”고 전했다.

고인의 유해는 죽림동주교좌성당 내 성직자묘지에 안장됐다.



이정훈 기자 sjunder@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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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1-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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