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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최인호 베드로 선생님! 당신이 그립습니다 / 허영엽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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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베드로 선생님! 지금쯤이면 하늘나라에서 그렇게도 그리워하셨던 어머니를 만나 어리광을 부리며 얼굴에 뽀뽀를 해드렸겠지요? 제가 처음 선생님을 만난 것은 1995년 겨울에 서울주보 집필진이 함께 모인 식사자리였죠. 당시 저는 서울주보 <불기둥>란을 쓰고 있었고, 선생님은 <말씀의 이삭>란에 기고를 하고 계셨죠. 그때 선생님의 첫 인상은 무척 카리스마가 있고 조금은 냉정한 모습이었습니다. 무척 반짝이고 맑은 눈빛을 가지셨던 것으로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모임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뒷모습이 조금은 쓸쓸해 보였습니다.

그 후 시간이 흘러 2006년 2월, 정 추기경님의 서임 발표 후 한 일간지의 인터뷰 때 다시 뵈었습니다. 선생님은 추기경님께 거침없이 질문을 하셨지요. 그리고 얼마 후에 선생님 부부는 정 추기경님 초청으로 주교관에 식사를 하러 오셨죠. 부부가 교구청마당에 들어서자마자 성모자상 앞에서 성호를 긋고 눈을 감은 채 두 손 모아 기도하던 모습은 아직까지도 눈에 선합니다.

그리고 다시 시간이 흘러 선생님의 투병 소식을 들었습니다. 한번은 선생님께서 정 추기경님과 통화를 원하셨죠. 그 때 추기경께서는 “하느님께 모든 걸 맡기세요. 그리고 힘내세요.”라고 하셨죠. 선생님은 추기경의 말이 큰 힘이 된다고 하셨죠. 선생님은 그 무서운 병과 싸우는 와중에도 서울주보에 기고를 하셨고, 소설도 출간하셨지요.

그날 통화 중에 정 추기경께서는 “아픈 분이 어디서 그런 글을 쓸 힘이 나올까 한참 생각했다. 재주만 갖고 글을 쓴다면 그런 힘이 안 나온다. 나를 포함해 세상 많은 사람을 도와주고 있는 그 재능을 더 오래 발휘하기 바란다.”라고 격려하셨습니다.

그리고 작년 성탄에는 제가 인사 문자를 보냈죠. 이윽고 선생님의 답문이 도착했습니다. “신부님, 고맙습니다. 근데 제가 너무 아파요. 기도해주세요. 제가 이겨낼 수 있을까요. 두려워요.” 용기를 내시라고 답했지만, 그 문자 한 통에 마음이 무척 아팠습니다. 지금도 제 휴대폰에는 그 문자가 남아 있습니다.

지난 9월23일 서울성모병원에서 선생님을 마지막으로 만났네요. 그날 정 추기경님을 모시고 병실에 도착했는데, 병색이 짙은데도 선생님은 미소를 지으려고 안간힘을 쓰셨지요. 정 추기경께서는 선생님의 두 손을 잡고 아무 말씀 없이 아주 오랫동안 선생님의 눈을 가만히 쳐다보셨지요. 그리고 약 10여 분 후 고백성사를 끝낸 선생님의 얼굴을 뵈었을 땐 그렇게 평화로워 보일 수 없었습니다.

이어 병자성사가 진행되었고 선생님은 성체는 넘길 수 없어 따님과 며느리가 대신 받아 모셨지요. 추기경님께서 “딸과 며느님이 선생님을 대신해서 성체를 영하는 것입니다”라고 하자 선생님은 고개를 끄덕였지요. 예전에 선생님께서 아픈 어머니를 대신해서 미사에 참례했을 때, “이 성체는 제가 아니라 어머니가 모시는 것 입니다”라고 기도하셨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당시 선생님은 병상에 계시던 어머니를 위해서 무엇을 할까 생각하다가 묵주기도를 같이 드리자고 했다지요. 그러자 눈을 잘 못 뜨시던 어머니가 눈을 번쩍 뜨셨다는 말도 생각납니다.

암 투병을 하면서 서울주보에 쓰셨던 글들은 그야말로 최고 인기였습니다. 특히 병으로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큰 위로와 힘이 되었습니다. 아파본 사람들은 압니다. 병으로 아플 때 작은 위로가 얼마나 큰 힘을 되는지 말입니다.

지난 9월 28일 토요일 정 추기경님이 명동 대성당에서 선생님의 장례미사를 집전하시면서 “선생님은 삶을 통찰하는 혜안과 인간을 향한 애정이 녹아있는 글로 많은 국민들에게 사랑을 받으셨던 이 시대 최고의 작가였다”라고 칭송하셨지요. 결코 지나친 말이 아닙니다. 선생님의 글은 정말 몸과 마음이 아픈 이들에게 휴식이었고 힘이었고 깊은 감동이었습니다.

선생님은 헤어질 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 무척 힘든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자꾸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라고 하셨지요. 이 세상 모든 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이자 선생님 평생의 삶에 대한 응답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이 말은 반대로 우리가 선생님께 드리고 싶은 말입니다. 이제 선생님의 뒷모습은 결코 쓸쓸해 보이지 않습니다.

“최인호 선생님. 좋은 글을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글들은 선생님의 분신이 되어 끝없이 우리를 웃게 하고 편안하게 하고 힘을 줄 것입니다. 선생님, 이제는 고통도 이별도 없는 하느님 나라에서 편히 쉬세요. 고맙습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교구장 수석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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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3-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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