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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새 상장 예식의 죽은 이를 위한 기도(연도)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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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천주교 주교회의는 2003년 1월 한국 고유의 상장 예식서를 발행했다.

2002년 추계 정기총회에서 주교회의 전례위원회에서 마련된 ‘상장 예식’ 최종안을 승인하고 사도좌 승인을 요청하기로 결정하는 한편, ‘상장 예식’을 한국 고유 예식서로 별도 출판하기로 승인한 결과였다.

상장 예식이 출간되기 전까지 한국교회에서 장례기도서로 자리 잡았던 것은 ‘천주성교공과’와 ‘천주성교예규’ 였다. 이 책들은 한국인에 의해 직접 저술된 것이 아니라 선교사에 의한 중국 기도서의 번역이라 할 수 있는데, ‘상장 예식’이 출간되기 까지 100여 년 넘게 한국교회에서 장례기도서로 자리매김 해왔다.

새로운 신자용 ‘상장 예식’은 화장, 예식, 우제, 예식, 이장, 예식 등 현 한국 상황에서 많이 사용되고 있는 관행을 받아들여 그리스도교 예식화 하였다는 점에서 새로움이 돋보이고 이 땅의 문화와 토양에 적응시키려는 토착화 작업을 시도한 노력이 높이 살만하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내용을 살펴보면 한국교회에서 신자들이 관행적으로 사용해 왔던 ‘성교예규’ 순서와 기도문을 고어체에서 오늘날 표현으로 바꾸고 극단적인 표현을 부분 삭제, 부족한 부분 중 그 안에서도 성경독서를 보완 편집한 점 외에는 크게 새로움이 돋보이지 않는다.

우선적으로 생각해 볼 것은, 두 기도서가 표현하는 신학은 전형적인 중세의 죽음과 심판에 대한 이해가 그 바탕을 이룸으로써, 장례 전례의 파스카적 특성이 전혀 부각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곧 ‘죽음’은 더 이상 새로운 삶의 세계로 건너감이나 주님께서 계시는 천상 본향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주님의 엄한 심판 앞에 등장함이며 혹독한 저 세상 단련의 시기가 시작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로인해 속죄와 보속 그리고 하느님의 준엄한 심판과 의노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이 전면에 등장하여 장례 전례의 성격을 어둡게 지배하고 있다.

특히 임종과 죽은 이를 위한 기도의 근저에는 악마의 위협과 연옥에 대한 두려움에 방향을 두고 있다. 이러한 관점은 죽은 이를 위한 기도인 세 편의 찬미경(찬미기도)에 아주 강하게 나타난다.

결국 주님의 수난과 죽음과 부활의 파스카 신비가 전면에 드러나 강조되지 않고, 속죄와 보속, 심판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에서 하느님께 죽은 이가 범한 죄의 용서와 간구가 중심을 이루고 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장례전례의 핵심을 파스카 신비라고 표명하였듯이 , 장례 기도서를 지배해야 하는 중심 사상 또한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의 ‘파스카 신비’여야 한다. 그럼에도 죽음이 파스카의 여행이라기보다는 재앙의 성격에 가깝게 이해되었던 중세 시대의 산물이 바티칸공의회가 끝난지 5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여전히 기도문 안에서 자리한다는 것은 무척 당황스럽고 안타까운 일이다.

새 상장 예식에서는 교회사 안에서 지난 시대에 풍미하였고 지배하였던 신학적 관점이 더 이상 그리스도의 파스카 신비를 드러내지 못하여 제2차 바티칸공의회 후 전례헌장(81항)의 가르침에 따라 발행한 로마교회 새 장례예식서(1969년)에서 삭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죽은 이를 위한 기도에서는 외형적인 약간의 변화를 주었을 뿐, 그에 대한 신학적인 이해와 관점에 대한 연구 작업도 전혀 없이 그대로 수록되어 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개정된 장례 예식에서의 중요한 한 부분이 ‘고별식’이며 이에 연결돼 나오는 두 개의 고별식 찬가(‘하늘의 성인들이여’ 와 ‘천사들은’)에서 초대 교회가 가진 죽음에 대한 이해가 아름답게 전달돼 온다. 이러한 이해를 전제로한 죽음이 새 상장 예식 안의 위령 기도에는 나타나지 않는다. 세 가지 새 찬미기도도 내용상 변화가 없다. 여전히 죽음은 천상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건너감의 기쁨이 아니라 두려운 심판이며 이 심판을 통해 지옥의 불길로 빠지게 될지 모르는 위험한 여행처럼 묘사되고 있다.

상장 예식의 시편의 경우 구 연도에 수록돼 있는 시편과 동일하지만(130편과 51편) 차이점이라면 시편에 구성진 가락의 악보를 붙여 읊조리게 하고 기도시간을 더 길게 만들어 마치 이 땅의 민속신앙 사고에서 나오는, 상여꾼들이 상여를 메고 가면서 부르는 구슬픈 소리 ‘상여소리’ 또는 ‘만가’ 분위기를 풍기게 한다.

민족의 토양과 심성을 고려하는 토착화 작업은 꼭 필요하지만 그렇더라도 잘못된 지난 시대의 신학적인 관점이 여전히 근본에 있어 조금도 변하지 않은 채 그 중심 기조를 이룬다면 이는 장례 전례의 원천이 되는 파스카 신비에 부합되지 않을 뿐더러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파스카 신비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망자를 위한 성인 호칭 기도를 하는 것도 성인들께 죽은 이를 하느님의 자비에 온전히 의탁하는 죽은 이를 위한 전구라는 뜻보다는 죽고 난 뒤 심판 때 받을지 모르는 형벌에 대한 두려움에서 죽은 이의 속죄를 위해 전구하는 기도로 여기게 한다. 그런 면에서 새롭게 만든 상장 예식의 위령기도는 내용적으로 여전히 중세 전성기의 잘못된 신학적 관점에 머물고 있어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기도문과 기도서의 토착화는 꼭 필요한 작업이지만 분명 근원적인 신학적, 역사적, 사목적 고찰과 반성 없이 기도문을 약간의 수정과 보완만을 거친 채, 잘못된 신학적 사조와 시대의 산물인 신심에 치우친 기도문을 보존하고 전승시키는 일은 신앙의 가르침과 전례 정신에도 부합하지 못할 뿐 아니라 정당한 평가를 받기 어렵다.

신앙생활에서 기도문은 소박한 신앙인들에게 믿음을 굳게 하고 신심을 앙양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기에, 이땅의 지역 교회가 죽은 이를 하느님 품에 맡겨드리는 기도를 만드는데 충분한 고려가 없었다는 점은 아쉬운 점이면서 또한 이제라도 해야하는 우리에게 주어진 과업이기도 하다. 예를 들면 초대교회의 ‘하늘의 성인들이여’ 와 ‘천사들은’ 과 같은 특성을 표현하는 새로운 찬미기도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기도를 바치는 시간도 현대인의 삶의 시간에 맞추어 너무 긴 시간을 요구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최창덕 신부(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전례신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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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3-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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