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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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진단] ‘존엄’의 오용과 남용(최진일, 마리아, 생명윤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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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존엄하다.” 대한민국 헌법에서도 세계인권선언에서도 하는 말이다. 그래서 이 말을 들을 때마다 어깨가 으쓱해진다. “그래 나는 존엄한 존재이지!” 그렇다면 나의 존엄은 언제부터 시작된 것일까? 이 질문의 대답은 의외로 단순하다. 내가 인간이 되는 그 순간, 인간 생명으로서 삶의 여정을 시작하는 그 순간부터이다. 그것은 다름 아닌 바로 수정된 순간을 말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의 존엄은 언제 끝나는 것일까? 이 질문의 대답도 단순하다. 내가 인간으로서 생명을 다하는 그 순간 바로 죽음에서 끝이 난다. 여기까지는 문제가 없어 보인다. 그런데 우리 인간은 때때로 자신과 타자의 존엄을 임의로 결정하고 싶은 유혹을 받는다. 특히나 생명이 시작되는 시점과 생명이 마감하는 시점에 개입할 수 있는 과학기술이 발전하면서 그 유혹은 점점 거세지고 있다.

생명윤리의 논의를 들여다보면 때론 깊은 통한이 느껴질 때가 있다. “왜들 죽이지 못해 안달일까?” 생명의 시작 단계가 되었든 생명의 말기 단계가 되었든, 어떤 기준을 만들어 그 기준에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은 죽여도 된다는 식의 논의를 거창하게 포장하고 있을 뿐, 그 중심에는 “죽일 수 있다”는 생명경시 풍조가 자리하고 있다.

예를 들어 우리 사회에서 언론매체나 미디어를 통해 확산하고 있는 ‘존엄사’라는 의미는 ‘안락사’를 미화시키는 표현으로 둔갑하고 있다. 안락사(euthanasia)는 그리스어의 ‘eu(좋다)’와 ‘thnatos(죽음)’에서 유래한 말로, ‘좋은 죽음’이라는 의미가 있다. 그러나 오늘날 안락사는 이런 전통적인 의미를 상실하였다. 그보다는 독성물질을 투여하거나 필수적인 처치를 생략함으로써 의도적으로 유발한 죽음을 뜻한다. 그런데 ‘죽임을 당하는 죽음’을 존엄한 죽음인 것처럼 점점 미화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호스피스ㆍ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 의료결정에 관한 법률’(약칭 연명의료결정법)을 ‘존엄사법’이라 부르는 사람들 가운데는 우리나라가 부분적으로 안락사를 합법화하는 것으로 오해하는 이들이 많다.

연명의료결정은 의학적으로 치료에 반응하지 않고, 급속도로 더 악화하고, 의학적으로 볼 때는 회복이 불가능하다고 판단이 되는 임종기(죽음의 시간에 접어든) 환자에게 심폐소생술, 혈액 투석, 항암제 투여, 인공호흡기 착용 등 임종과정의 기간만을 연장하는 의료행위를 중단 혹은 유보할 수 있는 결정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은 연명 의료중단에만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어 안타깝다. 연명의료결정법은 임종기 환자가 비록 연명 의료를 중단할지라도 고통을 최소화하고 영양과 수분 공급을 포함한 기본적인 의료행위를 받으며 그의 마지막 시간을 보살핌 속에서 임종할 수 있도록 보장하여 그의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보호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우리는 ‘죽임을 당하는 죽음’을 절대로 존엄한 죽음이라고 할 수 없다. 한편 ‘죽임을 당하는 죽음’을 옹호하려는 문화에서 우리 사회의 씁쓸한 단편을 읽어낼 수 있다. ‘보살핌’과 ‘돌봄’의 의미의 경시가 생명의 경시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인간에 대한 이해가 단편적이라는 사실을 반증한다. 인간은 서로 의존하며 살아가는 존재로서, ‘나는 누군가를 보살필 수도 있고, 또한 누군가의 보살핌을 받을 수 있는 존재’이다. 우리에게 보살핌이 가장 필요로 하는 시기는 바로 자신 생명의 시작과 말기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보살핌과 돌봄이 가장 필요한 시기에 이를 요청하고 보장하는 것이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지켜내는 것이지, 이를 외면하고 죽임을 옹호하는 것이 존엄을 지켜내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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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1-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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