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9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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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알 하나] 코로나19 시대의 사랑 / 함상혁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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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회 제목은 ‘코로나19 시대의 사랑’으로 정해 보았습니다. 이유는 왠지 멋있어 보여서 그랬습니다. 사실은 이런 사연이 있습니다. 작년 코로나19 기세가 무서울 때 미사가 중단됐습니다. 생각보다 긴 두 달 이상 미사가 중단됐고 무엇을 해야 할지 막막했습니다. 개인 미사는 매일 드리지만, 시간적인 여유가 있으니 책을 좀 읽어볼까 하다가 특이한 제목의 책이 눈에 띄었습니다. 책장에 꽂혀있던 책 제목은 ‘콜레라 시대의 사랑’이었습니다. 코로나19가 휩쓸고 있는 이 시대와 잘 맞는 것 같아 책을 꺼내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동안 스마트폰에 너무 빠져 있었나 봅니다. 몇 장 읽지 못하고 다시 책장에 모셔 두었습니다.(아직 노안이 오진 않은 것 같은데 글자는 왜 이리 작아 보일까요?) 참고로 인터넷에서 찾아본 줄거리를 간략하게 소개해 드리면, 첫사랑의 여인을 만난 한 남자가 그녀와의 이별 후, 여자가 결혼하고 난 뒤에도 평생에 걸쳐 계속 그녀와 다시 사랑할 날을 기다리다 마침내 노년에 이르러 그녀와의 사랑을 이룬다는 내용입니다. 책을 다 읽지 못해 자세한 내용은 소개해 드리지 못합니다.) 아무튼 콜레라 시대의 사랑 그리고 코로나19 시대의 사랑, 묘하게 어울리는 이 두 단어가 마음에 들어왔습니다.

2019년 말부터 시작된 코로나19는 우리의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미사는 중단과 재개를 반복했고 모든 대면 모임은 축소되고, 만남 자체가 어려워졌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가 아니라 ‘뭉치면 죽고 흩어져야 사는’ 세상이 된 것입니다. 다행히 코로나19 초기에는 신자들이 미사가 끝나면 급하게 도망(?)가기 바빴지만, 미사가 재개되니 성당에 오래 머물러 있으려 해 감사할 따름입니다. ‘거리두기’라는 생소한 용어가 너무나 친숙한 단어가 된 지금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사랑해야 할까요? 어차피 전염병의 주기는 짧아진다고 하니 개인적인 생활패턴에 빨리 적응하고 살아야 할까요? 많이 모이는 것 자체가 현대사회에 맞지 않으니 모든 모임은 화상으로 대체하고 살아야 하는 것일까요? 적당한 거리를 두는 것, 서로의 삶에 간섭하지 않는 것 그것만이 코로나 시대의 사랑일까요?

저는 지금 후회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작년에 미사가 중단된 적이 여러 번 있었습니다. 그때 무엇을 했나 생각해 보면 좀 아쉽습니다. 매일 개인적으로 미사를 드리기는 했지만, 신자들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지는 못했습니다. 코로나19를 무서워하는 분들도 계시고, 가족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을까 걱정하는 분들도 계셨을 것입니다. 코로나 때문에 하느님과 멀어진 분들도 많이 계셨습니다. 그런데 저는 신자들 한 명 한 명을 기억하며 기도하지 못했습니다.

코로나 시대의 사랑, 이전처럼 자주 만나지는 못하지만 서로를 위해 기도해 주는 건 어떨까요? 그동안 연락이 뜸했던 친구들, 지인들을 생각하며 기도하는 시간을 가져봅시다.


함상혁 신부(제1대리구 공도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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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1-07-27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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