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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알 하나] 나의 십자가 / 함상혁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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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제는 약간 무거울 수 있는 주제입니다. ‘나의 십자가는 과연 무엇일까?’ 미사 때 입는 제의 앞면에 하나, 뒷면에 하나 두 개의 십자가가 있습니다. 하나는 나의 십자가 또 다른 하나는 신자들의 십자가를 대신 진다는 의미를 지나고 있다고 어릴 때부터 들었습니다. 그래서 평생 십자가를 지고 살아가야 한다는 것은 잘 알고 있지만 ‘나의 십자가는 무엇일까?’ 진지하게 묵상해 본 적은 많지 않았습니다.

본당 사목을 하며 관심을 두는 것 중 하나가 예비신학생 양성입니다. 좋은 후배들이 많이 생겨나기를 바라는 소박한 바람, 그리고 내가 훌륭한 사제가 아니라는 죄송스러운 마음 때문에 그렇습니다. 한 번은 어떤 학생한테 예비신학생 모임에 가보라고 했더니 이렇게 대답합니다. “저는 신부님 되기 싫은데요.” “왜?” “신부님은 매일 성당에만 있어야 하고 사는 게 힘들어 보여서요.”

자유롭게 살지 못하고 늘 절제된 삶을 사는 게 저의 십자가일까요? 그렇지도 않습니다. 어떤 분들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신부님들은 결혼만 못 하고 다 누리고 살잖아요.” 틀린 말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진짜 나의 십자가는 무엇일까?

몇 년 전 영화소개를 하는 TV프로그램을 보다가 인상적인 영화를 시청했습니다. 제목이 ‘베를린 천사의 시’라는 영화입니다. 간단한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베를린에 내려온 두 천사, 다미엘과 카시엘은 베를린 거리를 순회하며 사람들 모습을 관찰합니다. 그런데 천사들은 사람들만이 가진 감정을 느낄 수 없습니다. 천사들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사랑의 뜨거움도 느끼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날 다미엘은 서커스단에서 공중그네를 타는 마리온을 보곤 사랑에 빠지게 되고 마리온을 잊을 수 없게 된 다미엘은 카시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천사 생활을 포기하고 인간이 되기로 합니다. 천사는 사람의 감정을 느낄 수 없기에, 천사 지위를 포기해야 마리온을 완전히 사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카시엘은 천사의 임무를 마치고 다시 승천하고, 다미엘은 한 여인의 남자로 지상에 남게 된다는 것이 대략적인 줄거리입니다.

나의 십자가는 무엇일까? 천사의 지위를 지키기 위해서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느끼는 감정을 모두 포기해야 합니다. 누군가를 특별히 좋아하고 사랑하고 싶은 마음이 당연히 있지만, 그래서는 안 됩니다. 보통 사람들처럼 더 많이 갖고 더 좋은 것을 갖고 싶지만 그래서는 안 됩니다. 모두 그렇듯이 나를 먼저 챙기며 살고 싶지만 그래서는 안 됩니다. 결국 저의 십자가는 이것입니다. 사람이면서도 사람이 아닌 것처럼(?) 살아야 합니다. 사람의 본성을 거슬러 천사처럼 살아야 합니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 제가 평생 천사의 지위를 포기하지 않고 살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함상혁 신부(제1대리구 공도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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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1-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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