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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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음화국 생명위원회 생명수호 수기 공모 당선작 소개(상) - 나를 위해 너를 보내셨구나(생명기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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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구 사회복음화국 생명위원회(위원장 김창해 신부)는 생명수호와 생명문화 증진을 위해 교구 전 신자 대상 ‘2021년 생명수호 수기 공모’를 실시하고 지난 7월 25일 당선작을 발표했다.

‘아이는 선물입니다. 모든 아이는 저마다 특별하며 그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습니다’(「사랑의기쁨」170항)를 표어로 한 공모에서는 임신·자녀 출산 등을 통한 생명의 신비와 선물로서 주어진 생명에 대한 기쁜 체험이 주제로 다뤄졌다. 당선 수기 중 ‘생명기쁨상’과 ‘생명수호상’ 수상작 두 편을 2회에 걸쳐 소개한다.



신록이 아름답던 오월의 교정에서 남편과 나는 처음 만났다. 남편은 두 번째 만남에서 ‘결혼을 하게 되면 나랑 하자’고 청혼을 했다. 어느 날 우연히 만난 남자와 사랑에 빠지고, 부모 형제 다 떠나 홀린 듯 결혼을 했다. 결혼 후 임신을 확인한 순간부터 난 몹시 혼란스러웠다. 살면서 이 기막힌 일에 대해 제대로 교육을 받은 기억이 없다. 그간 사랑이나 결혼 생명의 탄생 같은 본질적 인륜지대사를, 중요하고 아름다운 삶의 과정으로 배우지 못했던 것이다. 내가 뭐를 알든 모르든 내 생각이 어떻든 내 안에서 새 생명이 만들어졌다. 늘 보던 것들이 경이롭게 보이면서 한편으로 미래가 걱정되는, 지금까지 살던 세상과는 완전히 다른 또 다른 차원의 세상이 열리는 것 같았다. 막연하기만 한데 한 가지 선명해지는 생각이 있었다. “나는 이 아이에게 위대한 유산으로 무엇을 남겨줘야 하나?” 우리 첫사랑의 첫 열매, 귀한 아기에게 정말 좋은 것을 주고 싶었다.

관면혼배를 하기 위해 성당에 가 보기는 했어도, 인생 첫 미사에서 ‘믿지 않는 이들을 위해 기도’하는 신자들의 기도를 듣고 ‘모르는 이들이 그간 나를 위해 기도하고 있었구나!’라는 가슴 뭉클한 감동을 받았어도 세례를 받아야겠다는 생각까지는 못 했었는데, 배 속에 자리 잡은 아이는 나를 강력하게 하느님께로 이끌었다. 아니 하느님께서 아기를 통해 나를 당신께로 불러주셨다는 표현이 더 낫겠다. 아이를 가지고 나의 본성은 너무나 자연스럽고 절실하게 하느님을 찾고 기도를 시작하게 된 것이다. 임신 중 형님이 주신 「가톨릭 기도서」를 보며 혼자 기도했고, 출산 후 내 발로 성당을 찾아가 교리를 배우고 아이와 함께 세례를 받았다.

1998년 IMF가 터지고 남편은 잘 다니던 직장을 자의반타의반 그만두게 됐다. 이미 내 안에는 둘째의 꼬물거림이 느껴지던 때. 우리는 남편 고향으로 내려갔고, 남편은 학업을 다시 시작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친정은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그야말로 패가망신 상황이 됐다. 그 불똥은 고스란히 우리 가정으로도 튀었다. 남편이 첫 직장을 그만둔 후 4년은 암흑 같은 시기이기도 했고, 불확실성 속에서 아이들이 연달아 찾아오며 새로운 희망이 움트는 시기이기도 했다.

극심한 고통 중에 계신 친정 부모님과 형제들에 대한 미안하고 안타까운 마음은, 내가 또래 엄마들처럼 아이들 육아에만 몰두할 수 없게 했다. 돌이켜보니 그때는 피난처를 찾듯 오로지 신앙만 파고들었고, ‘아이는 하느님께서 다 키워 주신다’같은 말들이 정말 글자 그대로 믿어져서 아이들에게는 겨우 밥만 챙겨주고 내 기도만 하며 살았던 것 같다. 친정에는 그럭저럭 살아갈 길이 열렸고, 나는 셋째를 무사히 낳았으며, 남편은 채 학업을 마치기도 전에 재취업에 성공했다. “알렐루야!” 얼마나 감사했던지, 인생의 첫 십일조를 바쳤다.

고백하건대 난 이 귀한 아이들을 키우며 모든 엄마가 위대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날마다 알게 된다. 내가 기대하는 엄마는 강하고 현명하고 억척스럽기까지 하며 아이들이 난관에 부딪혔을 때 슈퍼우먼처럼 나타나 시원하게 일을 해결해 주어야 하는데, 현실의 나는 모든 것이 엉망에 가까웠다. 아이들이 저마다의 삶에서 어려움을 만나 버거워하며 엄마인 나를 바라볼 때, 명쾌한 해답을 줄 수 없는 미약한 엄마가 차마 입 밖에 조언도 꺼낼 수 없을 때, 마카베오서 하권 7장 22~23절 일곱 아들 순교를 지켜본 어머니의 말을 마음속으로 얼마나 되뇌었는지 모른다.

아이들에 대한 내 사랑은 부족하고 왜곡되어 서로에게 허다한 아픔을 남기기도 했으나, 겪어야할 것들을 겪어낸 후 하느님께서는 끊임없이 치유와 회복을 주셨다. 그분은 또 모든 과정에서 내 지혜를 훨씬 넘는 멋진 삶의 그림을 선사하셨음을 기억한다. 그러므로 아이들이 진학하고 군 전역을 하고 취업을 준비하는 지금 나는 역시 기도할 뿐이다.

나는 아이들 덕분에, 예수님을 낳고 키우며 상처받고 영광 받으신 성모님 마음을 엿보게 됐고, 하느님을 어렴풋이나마 알게 된 것 같다. 아이가 웃을 때 온 세상은 행복해 보이고, 세 아이들이 서로 잘 지낼 때 그렇게 예쁠 수가 없었다. 아이가 슬플 때 나의 세상도 무너지고, 내 아이들이 서로 싸울 때는 바로 내가 지옥에 있는 듯 괴로웠다. 그래서 하느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나는, 내가 행복해야 함을, 감사해야 함을, 이웃과 서로 사랑하며 살아야 함을 명확히 알게 됐다. 하느님께서는 내게 이를 가르치시려고 아이들을 보내주신 듯하다. 신앙의 힘으로 나 스스로와 위기의 가족을 지키게 하시고, 어떻게 살아야 하느님 보시기 좋은 삶인지 깨우쳐 주시기 위해 하느님께서는 내게 아이들을 보내 주셨다. 이제 나는 나의 아이들에게 위대한 유산으로 가톨릭 신앙을 남겨주어 그 고마움을 갚아줄 수 있음이 행복하다.


이은주(스테파니아·제1대리구 영통성령본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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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1-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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