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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알 하나] 잠꾸러기가 사제로 살아가는 방법 / 정연진 베드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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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정말이지 잠이 많다. 정확히 말하자면 아침잠이 많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교구청에서 살아가는 지금도 알람을 듣지 못해 새벽 미사를 나가지 못하는 일이 종종 발생한다. 미사는 나가지 못했지만, 다행히(?) 아침 식사 시간 전에라도 일어나는 날엔 ‘정 신부, 푹 쉬었어?’라고 눈웃음으로 안부 인사를 건네시는 주교님 앞에서 얼굴이 홍당무가 되어버린다.

철산본당에 있을 때는 이런 일도 있었다. 그곳은 미사 시간이 되면 해설자가 그날 미사를 설명하고 성가 번호를 안내했다. 그러면 오르간 반주가 시작되고, 그 소리에 맞춰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나 성가를 부르며 주례자의 입당을 기다리는 식으로 미사가 진행된다. 하루는 이런 방식 때문에 철산본당이 ‘뒤집히는’ 사건 하나가 터지고야 말았다. 새벽 미사 시간이 다 되었음에도 주례자인 내가 눈을 뜨지 못한 것이다.

그냥 눈을 뜨지 못한 일이라면 본당이 뒤집힌 사건이라 말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주례자인 내가 꿈나라를 여행하느라 이불 속에 있었는데, 해설자가 미사의 시작을 알려버린 것이다. 제의실이 텅 비어있는 줄도 모르고 해설자는 모두를 일으켜 성가를 시작하도록 했다. 1절을 마치고 2절이 시작되자 다들 이상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마치 ‘TV는 사랑을 싣고’의 한 장면처럼 애타게 주례자가 등장하기만을 기다렸다. 급기야 4절에 다다르자 해설자는 사태를 파악하여 신자들을 다시 자리에 앉혔고, 수녀님은 황급히 달려 나가 전화로 나를 깨웠다.

그날 이후 철산성당 제의실에는 주례자의 존재를 알리는 빨간색 전등이 설치되었다. 주례자가 제의를 모두 입고 그 빨간 전등을 켜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해 내면 그제야 해설자는 안심하고 미사의 시작을 알리는 것이다.

이 전설과 같은 사건을 겪은 뒤로 나에게 새벽은 공포의 시간이 되었다. 작은 소리에도 소스라치게 놀라 일어났다. 새벽 미사가 없는 날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정작 새벽 미사가 있는 날에는 또 알람 소리를 듣지 못해 수녀님의 전화를 받아야 했다. “수녀님 죄송해요 얼른 나갈게요!” 헐레벌떡 옷을 챙겨 입고 미사에 나가 “여러분 정말 죄송합니다”하고 사과를 드리면 신자들은 항상 괜찮다고, 죄송해하실 필요가 없다고 말씀하셨다. 그 말에 오히려 더 죄송해서 눈물이 핑 돌았다.

물론 눈물이 쏙 들어가게 하는 신자분도 있었다. “저는 신부님이 못 일어나시는 게 너무 좋아요!! 꼭 제가 미사에 지각하는 날엔 하느님께서 신부님을 저보다 늦게 나오게 하시더라니까요?”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다. 그러나 사제의 부족함을 비난하기에 앞서 신자들은 언제나 격려와 위로가 우선이었다. 심지어 나의 부족함을 통해 하느님 섭리를 체험하는 분도 있다니! 그 마음이 참 따뜻하고 고마웠다. 덕분에 나는 힘을 내어 약점을 딛고 내가 지닌 장점들을 공동체와 나누려 애쓰게 된다.

본당에서와 마찬가지로 이곳 교구청 분들도 나의 부족함을 질책하기보다 따뜻하게 감싸주기 바쁘다. 덕분에 잠꾸러기인 나는 오늘도 내가 지닌 장점에만 집중하며 기쁘게 살아간다.
정연진 베드로 신부
홍보국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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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2-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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