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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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나고 힘나는 신앙- 차동엽 신부의 「가톨릭 교회 교리서」해설] (97) 성경 안에서 만나는 기도의 달인 (14) - 키워진 인물, 모세(상)

내 백성들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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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센 정착 400년 후

모세가 주도한 엑소더스! 이른바 이집트 탈출 사건은 람세스 2세의 치세 때인 기원전 1,250년경이라는 견해가 우세하다. 야곱의 자손 70여 명이 요셉 덕택에 이집트 땅 고센 지방에 정착한지 어언 400년이 흐른 뒤였다.

야곱의 가족 공동체는 정착 이후 세월의 흐름과 함께 점차 부족 공동체를 넘어 민족 공동체로 성장하게 된다. 역사학자들의 견해처럼, 이 고센 땅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인큐베이터 역할을 했던 셈이다. 결과적으로 모세가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고 나올 때는 400만에 가까운 대인구가 된다.

그러자 이집트 왕은 군사적·정치적으로 위협을 느껴 불안해지기 시작한다. 그리하여 이스라엘 민족에게 강제노역, 출산 시 남아 사산, 그리고 영아 살해, 이렇게 세 가지를 명령한다(탈출 1,11-22 참조).

역사의 아이러니?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본디 피신의 장소였다가, 졸지에 박해와 죽음의 장소가 돼버린 이집트! 그 상황에서 모세가 출생한다.

■ 양성기간 장장 80년

하느님이 하시는 일이 어련하랴. 모세는 치밀한 하느님의 섭리로 키워진 인물이다. 그것도 이집트 궁중에서 40년, 미디안 광야에서 40년, 합하여 장장 80년간.

먼저, 하느님께서는 호랑이를 잡기 위하여 호랑이 굴에서 인물을 키우시는 수순을 밟으신다. 이집트 권력을 거슬러 대탈출극을 벌이려면, 이집트 궁중 사정에 빠삭한 인물을 키워야 한다! 이런 신적 안목에서 모세는 엄마 탯속에서부터 간택되었다.

그의 부모 아므람과 요케벳(탈출 6,20 참조)은 갓 태어난 모세의 운명을 담대하게 하느님 자비에 맡기고, 그를 몰래 집안에서 키운다. 하지만 석 달이 지나면서 아이 울음소리가 커지기 시작하자, 할 수 없이 그를 ‘왕골상자’에 넣어 강물에 띄우게 된다. 그때 마침 파라오의 딸이 강가에 나왔다가 모세를 발견한다. 공주는 첫눈에 그를 데려다 키우고 싶어 한다. 이 광경을 숨어서 쭉 지켜보던 아기의 누이 미르얌은 공주에게 다가가 아기의 유모로 엄마 요케벳을 소개한다. 모세는 버젓이 히브리 엄마 품에서 가장 중요한 유아기를 보내게 된다. 짧았지만, 이 시기는 모세에게 자신이 히브리인 핏줄임을 각인시켜준 시기였다.

어쨌든, 젖을 뗀 모세는 40년간 이집트의 궁중교육을 받는다(탈출 2,6-10 사도 7,22-23 참조). 이 역시 훗날을 위한 하느님의 포석이었다.

다음으로, 하느님께서는 모세에게 또 40년간 광야 목자 생활을 경험케 하신다.

이제 모세는 겉으로 볼 때 영락없는 이집트인이었다. 하지만 모세는 이집트 관리가 히브리(=이스라엘)인 동포를 때리는 것을 보고 민족적 분노를 느껴 그를 때려죽인다. 그런데 그 다음날 이스라엘 사람들끼리 서로 싸우는 현장에서 뜯어말리다가, 외려 자신이 이집트 관리를 죽인 사실이 탄로 난다. 이에 그는 곧바로 미디안으로 도망친다. 모세는 그곳에서 또 40년 동안 양을 치는 목자 생활을 한다.

하느님은 공연히 움직이지 않으신다. 이렇게 사태를 몰고 가신 것도 그것이 나중에 다 쓰임새가 있어서였다. 사막 지대에서의 양치기 체험이 그대로 영도자에게 필요한 덕목들이기에.

■ 기념비적 소명

그로써 영원히 기억될 역사의 한 획이 그어졌으니, 모세의 소명은 가히 기념비적이라 부를 만하다. 그에 어울릴 만큼 부르심의 과정도 극적이었다.

광야 생활 40년이 족히 흐른 어느 날! 호렙 산, 곧 시나이 산에서 양 떼를 몰고 있던 중, 모세는 희한한 현상을 목도한다. “주님의 천사가 떨기나무 한가운데로부터 솟아오르는 불꽃 속에서 그에게 나타났다”(탈출 3,2).

불은 타고 있는데 어째서 연기가 나지 않을까? 호기심에 가까이 다가갔더니 웬 음성이 들린다. “이리 가까이 오지 마라. 네가 서 있는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어라”(탈출 3,5). 이리하여 모세는 신을 벗고 하느님의 역사적 명령을 듣는다.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들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어라”(탈출 3,10).

난데없는 부르심에 모세는 당황스럽기만 하다. 그는 결과적으로 세 번 사양한다. 이유는 자격 및 능력에 대한 회의다. 지엄한 부르심을 거슬러 모세가 늘어놓았을 자격지심의 장타령은 되레 어딘지 고혹스럽게만 들린다.

“신을 벗어라, 네가 서 있는 땅은 거룩한 땅이다”(탈출 3,5 참조).

아이고, 하느님! 즉시 벗겠사옵니다.

어인 일이십니까? 이 몹쓸 죄인을 몸소 찾아주시다뇨.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들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어라”(탈출 3,10).

“제가 무엇이라고 감히”(탈출 3,11) 그 엄청난 일을?

불초소생은 진즉 나이 80을 넘겨 힘 빠진 늙은이.

자격이라곤 오직 제 몸속을 흐르는 히브리인의 피뿐.

비록 이집트 궁중에서 40년을 살았지만,

지금은 살인자요 도망자의 신세!

궁중의 사치를 내팽개치고 들어선 광야 40년,

호락호락하지 않았습니다.

하루에도 엄청난 고뇌와 번민 속에서

좌로 갔다가 우로 갔다가,

앉았다 일어섰다,

울었다가 웃었다가….

지금 제 공식 직함은 고작 광야의 양치기.

묵언의 세월로 혀가 굳어 어눌한 말투에,

불의를 못 참던 불뚝성질도 비정한 자연의 법칙에 길들여져,

할 줄 아는 것이라곤 인내와 기다림과 순응!

팔딱거리던 맥박도 40년의 지리함에 느려지고 늘어져,

희로애락 그 잽싸던 반응도 하릴없이 무뎌져,

하루하루 그저 무덤덤히 사는 사막의 촌부이올습니다.

아 참! 그 드넓은 모래땅 헤매고 누빈 덕에 절로 익혀진 것 쬐끔 있습죠.

산세를 읽고, 땅속 물길을 보고, 피부촉감으로 일기를 예단하고,

하늘의 떼구름 정세를 감 잡고, 그리하여 하늘님 속마음을 헤아리고….

그리고 또 하나 부끄런 자랑이지만, 양떼들의 동태엔 빠끔이입죠.

척하면 전체 무리가 한눈에 들어오고,

쓱 보면 다리 저는 놈, 위험에 빠진 놈, 제 성미에 뿔난 놈이 보이고,

눈 맞으면 그놈들 나이가 헤아려지고,

소리만 들어도 배고픈 놈 목마른 놈이 구별되고,

눈 감으면 어디론가 사라진 놈 빈자리가 보이고….

모세 그는 알았을까? 자신이 영도자로서 자질부족을 입증하려고 넋두리 삼아 늘어놓은 목가적 면면들이 실상 하느님 눈에는 둘도 없는 자격 조건들이었음을.



차동엽 신부는 오스트리아 빈대학교에서 성서신학 석사, 사목신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인천가톨릭대학교 교수 및 미래사목연구소 소장으로 활동 중이다.
 


가톨릭신문  2015-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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