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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현대 박해기 - 강제 수용소의 선교사들] (12) ‘주교들의 애국교회 반대’

교황청과 단절 거부·애국교회 반대 성직·수도자/ 수십년간 노개영에 수감돼 강제노동에 시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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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개영에서 20년 동안 노동을 한 한정필 주교.
 
산동성 양곡교구 왕길상(王吉祥) 서리주교의 경우는 애국회 가입을 거부한 결과 36년 동안이나 노개영에서 강제노동에 시달리다 노개영에서 선종했다. 공천작 주교는 20년의 노개형을 받고 강제노동을 하다 가석방되었지만, 한동안 연금되어야만 했다. 내몽골의 장가흥 주교와 한정필 주교, 소희달 서리주교, 왕요원 대리주교, 왕멱록 주교 등도 수십 년간 노개영에 수감돼 강제노동과 굶주림 등에 고통을 받은 성직자들이다.

등이명 주교는 체포된 지 22년 4개월 동안 광주감옥과 노개영에서 강제 노동을 하다 1980년 6월 석방됐다. 등이명 주교는 석방된 후에도 몇 달이 지난 11월 들어서야 홍콩으로 나가는 것을 허락받아 중국 본토에서 나올 수 있었다. 이후 등이명 주교는 이탈리아 로마로 가서 1981년 4월 26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를 알현했고, 교황은 등이명 주교에게 광주총교구 총주교직을 맡겨도 되겠느냐고 질문했다고 한다. 이어 교황은 1981년 6월 6일, 등이명 주교를 광주총교구 교구장으로 임명한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하지만 이 일에 대해 중국 측에서는 내정 간섭이라고 교황청에 항의했고, 석방했던 선교사들까지 다시 노개영으로 끌고 가는 등, 이후 중국 대륙에 있던 선교사들에 대한 박해는 그 강도를 더해갔다.

상구교구의 외국인 선교사들은 1951∼1954년 사이에 전부 추방됐고, 1951년부터 애국교회 가입을 거부하고 교황청과의 단절을 거부한 중국 신부들도 전부 체포돼 노개영으로 보내졌다. 그중 장성당 신부는 1959년 거리로 조리돌림을 당하는 치욕까지 겪으면서 노개영으로 끌려갔다. 장성당 신부는 1981년 12월 17일 두 번째로 체포됐는데, 그때 장 신부에게는 무기노개형이 선고됐다. 하지만 장 신부는 그나마 노개영에서도 살지 못하고 1992년 7월 3일 청산가리로 독살 당했다.

석치국 신부는 노개영 원예장에서 양어일을 맡았는데, 연못에서 일하다가 감전돼 선종했고, 람국영 신부의 경우는 영덕 노개영에서 병을 얻어 세상을 떠났다.

유익민 신부는 반공호교죄로 체포돼 노개영에서 30년 동안 강제노동을 당하면서도 교황청과의 단절을 강요하는 중국정부의 명을 거부했다. 이 때문에 유 신부는 결국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노개영에서 83세 고령의 나이에 선종했다. 왕자양 신부도 노개영에 끌려가, 사상이 개조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석방시켜 주지 않아 90세의 고령으로 노개영에서 죽음을 맞았다. 예수회 소배영 신부도 애국교회 운동을 반대하다 무기노개형을, 하남성 위휘교구 곽정 신부와 고진수 신부는 애국교회에 들어가지 않아 15년 노개형을, 남경교구 조홍성 신부는 애국교회를 반대해 17년 노개형을 받고 티베트까지 가서 강제노동을 해야 했다. 이들 외에도 주옥보 신부, 근덕신 대리주교, 성모무염원죄회 가안납 수녀도 애국교회를 반대했다는 명목으로 체포돼야 했다. 당시 근덕신 대리주교는 15년 노개형을 받았으며, 주옥보 신부와 가안납 수녀는 10년 노개형을 받았다.


서양자 수녀는 중앙대학교 대학원에서 사학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대만 유학을 거쳐 현재 한국순교복자수녀회 대전관구에 소속돼 있다. 저서로는 「중국천주교순교사」, 「청나라 궁중의 서양 선교사들」 등이 있다.


서양자 수녀(한국순교복자수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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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3-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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