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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현대 박해기 - 강제 수용소의 선교사들] (16) 허리와 발목에 쇠사슬 찬 수인들’

노개영에 전염병 돌면 하루 20~30명 사망/ 벽돌 굽기·석탄 채굴 등 가혹한 노동에 시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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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개영에서 독살 당한 장성당 신부.
 
대련은 요동반도 최남단에 위치, 동으로는 황해와 서로는 발해, 남으로는 바다를 사이에 두고 산동반도를 마주하고 있다. 대련은 사계절이 확실하며 기후는 몬순형 온대기후에 속하는데 습도가 높다. 이런 날씨 아래 대련 노개영에서 전염병이 돌게 되면 하루에 20~30명씩 사망했으며, 이곳에서도 자살 사건이 자주 일어났다.

1951년 대련에는 6개 노개영에서 7만여 명의 수인들이 강제 노동을 하고 있었다. 노개영의 수인들에게 자홍색 옷을 입고 모자를 쓰게 했다.

이 수의(囚衣)는 일제 침략 때부터 내려오는 옷이라고 한다. 일본이 중국인을 강제 동원하여 일을 시키면서 도주하는 것을 막기 위해 자주색 옷에 자주색 모자를 씌웠다고 한다.

게다가 수인들은 허리와 발목에 쇠사슬 형구를 차고 일을 해야만 했는데, 그냥 일을 하면 발목에 피부가 전부 벗겨지므로 수인들은 헤진 옷을 찢어서 발목을 감고 살을 보호하곤 했다. 나머지 천 조각은 허리에 감아야 했다. 허리에도 형구를 차고 있으므로 피부를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많은 수인들이 일을 할 때마다 들리는 소리라고는 쇠형구에서 나는 철그렁 철그렁하는 소리 뿐이었다고 한다.

대련의 왕가구 제1노개영에서는 수인들에게 벽돌을 대량으로 만들도록 강제로 일을 시켰다. 중국은 오랜 내전과 중·일 전쟁으로 건물이 많이 파괴되었으므로 상당량의 건축자재가 필요했다. 신부들도 이곳에서 벽돌을 굽다가, 벽돌에 깔려 선종하기도 했다.

당시 대련 노개영에는 벽돌 굽는 큰 가마가 32개가 있었다. 붉은 벽돌 재료는 황토인데, 수인들은 바람이 불고 날씨가 추워도 황토에서 돌을 골라낸 후 맨발로 밟아 벽돌 모형을 만들어야 했다. 섭씨 1000도 이상에서 구워진 가마 속 벽돌을 꺼낼 때에도, 가마 온도가 50∼60도 정도됐다. 겨울에는 바깥 온도가 영하 20도 정도 되는데 가마 속은 50도 이상 되어, 수인들은 가마에 들어갔다 나오면 눈 위에 누워 찬물을 머리에 들어부어 몸의 열을 식혀야 했다.

한 때는 강서성 탄광 노개영에 있던 수인들이 이동되어 대련 노개영으로 왔는데, 이들은 갱속 깊이 들어 가서 마대에 50킬로그램 정도 되는 석탄을 지고 나와서 100미터 밖으로 갖다가 쏟아놓는 일을 했다. 수인들마다 하루 동안 석탄을 파내야 하는 책임량이 정해져 있어 수인들은 아무리 힘이 들어도 석탄 운반을 쉴 수가 없었다. 이들의 얼굴과 옷은 늘 칠흑처럼 검었다. 강서성 탄광 노개영에서 온 수인들은 종종 강서성 탄광에서 한 노동에 대해 이야기하곤 했는데, 뜨거운 벽돌 가마에서 나온 수인이 너무 더워 얼음 위에 눈 쌓인 곳에 누워 버리는 것을 보고 매우 분개하며 “감옥은 모두 같군요”라고 말했다고 한다. 결국 강서성에서 온 수인 중 4명이 나무에 목을 매고 자살을 했으며, 공산당들은 그 시신들을 대충 묻어버렸다.


서양자 수녀는 중앙대학교 대학원에서 사학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대만 유학을 거쳐 현재 한국순교복자수녀회 대전관구에 소속돼 있다. 저서로는 「중국천주교순교사」,「청나라 궁중의 서양 선교사들」 등이 있다.


서양자 수녀(한국순교복자수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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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3-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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