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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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평협 가정선교체험 공모전 수상작] 믿음상(최우수상) - 조영훈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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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은 가정선교의 중요성을 독자들에게 전하기 위해 한국천주교 평신도사도직단체협의회(회장 손병선, 담당 조성풍 신부)가 실시한 가정선교체험 공모전 믿음상(최우수상) 수상작 조영훈(안토니오·대구 성미카엘본당)씨의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 전문을 싣는다.

오늘은 가슴이 무척이나 두근거리고 설렌다. 아내가 상기된 얼굴로 독서자 자리에 앉아 있는 모습을 보자니 아내의 긴장이 나에게도 전해진다.

오늘 이 자리에 오기까지 참으로 많은 세월이 흘렀다. 결혼을 하면서 부모님 이하 누나, 동생들이 아내를 선교 대상으로 삼고 신앙을 권유했었다. 아내는 시댁 식구들의 반 강요에 의해 신앙을 받아들였다. 30년도 더 지난 희미한 기억이지만 아내는 어리둥절해 하면서 시댁 식구들 손에 이끌려 성당에 발을 들여놓은 것 같았다.

젊은 시절의 우리는 현실을 살아내기에 바빴다. 친구와 술을 좋아하는 난 사흘이 멀다 하고 친구들 아니면 지인들과 술을 마셨다. 어리석은 삶에 최선을 다했고 자연스럽게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지면서 냉담을 하게 되었으며 아내의 신앙도 돌보지 않았다.

그렇게 하느님을 까맣게 잊고 살아가는 삶은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가장으로 최선을 다해 경제생활을 했으나 거듭되는 실패로 삶이 어려워지는 때도 있었다. 대구 동쪽 끝에 살던 우리는 조촐하게 정리된 살림을 이끌고 대구 서쪽 끝인 성서로 터전을 옮겨 자그마한 가게를 하나 열어 아내는 주방을, 난 배달을 하며 새로운 삶을 살기 시작하였다.

가끔 가게에 손님이 없을 때 동네 주변을 산책하고는 했었는데 평소에는 보이지 않던 성당이 어느 날 내 눈에 들어왔다. 뾰족한 지붕의 성당 건물을 보고 있자니 왠지 모를 양심에 부끄러움이 찾아왔다. 그러나 ‘도둑이 제 발 저리다’고 10여 년을 하느님과 무관하게 살아온 자신이 부끄러워 선뜻 성당에 들어갈 수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머리가 희끗한 노년의 아주머니 한 분이 가게 문을 열고 들어오셨다. 어딘지 모르게 낯이 익어 자세히 보니 한 시간 거리에 살고 계시는 어머니의 친구분이셨다. 반가운 마음에 손을 잡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참 나누다 아주머니께서는 댁으로 돌아가셨다. 다음 날 가게 문을 열고 장사준비를 하고 있노라니 손님이 들어오시는데 또 그 아주머니셨다. 아주머니는 식사를 하시고 또 한참 이야기를 나누다 가셨다. 아주머니는 그 다음 날도 또 그 다음 날도 “이 동네에 볼 일이 있어 왔다 들렀다”거나 “너희 집 설렁탕이 자꾸 생각나 들렀다”는 말씀을 하시면서 계속해서 오시기를 몇 달을 하셨다.

그리고 아주머니께서 우리 가게에 오시기 시작하면서 성당 신부님께서도 가게에 손님으로 오셨다. 손님이 없을 때는 신부님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냉담을 하고 있다는 말씀을 드렸는데도 신부님은 성당 오라는 말씀은 하지 않으셨다. 미사가 없는 월요일 아침에는 갑자기 나타나시어 된장이며 반찬들을 얻어 가시고 신자들이 신부님께 드린 과일들이 생기면 반을 덜어 주고 가기도 하셨다.

그러던 어느 날 아주머니께서는 무슨 결심을 하셨는지 내 손을 잡으시고 “영훈아, 내 부탁이니 너 집사람 데리고 성당에 나가서 냉담을 풀어라” 하시며 내 손에 10만 원을 쥐어 주시며 그 한 마디를 남기고 가셨다. 그렇게 가시는 아주머니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머리가 어디에 부딪힌 듯 멍했다.

아주머니께서 가시고 가만히 앉아 생각해보니 신부님과 아주머니께서 은밀하게 던져 놓은 그물에 걸린 것 같았다. 그러나 그 그물은 나를 옥죄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용기를 주어 성당을 찾아갈 수가 있었다.

아내와 난 그렇게 냉담을 풀었고 하느님께서는 어리석은 우리를 따뜻하게 맞아 주셨다. 우리 동네에 작은 성당은 신자들 간의 친밀감이 매우 끈끈하다. 연세가 많으신 형님들께서는 동생을 대하듯, 나이가 어린 동생들은 형님을 대하듯 서로 도닥여주고 이끌어주었다.

어린 시절 신앙이 무엇인지, 왜 내가 신앙생활을 하는지, 깊은 고민도 없이 왔다 갔다 하던 때와 다르게 내 가슴에도 불이 지펴지기 시작하였다.

내 가슴은 뜨거웠고 입은 열렸다. 그때는 주위에 모든 사람에게 하느님 말씀을 전하고 싶었고 이야기만 하면 그 사람들은 내 말을 받아들일 것 같았다.

그런 열정으로 나의 자식 둘을 시작으로 이웃을 하나, 둘 입교시켰다. 그리고 성당에서 주어진 소임(레지오 마리애 단장, 구역 반장)도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이며 신자로서의 삶을 살았다. 열정으로 무엇엔가 홀린 듯 살다 문득 내 옆을 보니 아내는 또 냉담을 하여 저 세속의 강으로 떠내려가고 있었다.

아내의 냉담 이유는 신앙생활을 해도 지나치게 술을 먹는 습관은 버리지 못하는 내 모습을 보니 성당 다닐 이유가 없다는 것이었다. 난 약간의 충격을 받았고 그 말을 듣고 앞으로 나아가던 걸음을 멈추어 서서 곰곰이 나의 신앙생활을 되짚어 보았다. ‘내가 주변의 사람을 인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와 평생을 같이 살 사람을 하느님께로 인도하지 못해서 되겠는가?’라는 반성을 하고 다른 사람이 아닌 아내를 선교하기 위해 설득하기 시작하였으나 아내는 쉽게 돌아오지 않았다. 나 자신을 변화시키려 하지 않고 아내가 나를 따라오기만을 바라며 하는 말은 잔소리가 되고 부부간의 다툼이 되기도 하였다. 술 먹는 횟수를 줄여보기도 하였으나 나에 대한 아내의 신뢰는 제로였다.

그렇게 외발이 신자로 가슴 한구석에 짐을 안고 살고 있었는데 새로 오신 신부님께서 공동체로 사목을 하신다는 방침을 세우시고 거리가 가까운 지역끼리 공동체를 만들게 하셨다. 우리 지역의 공동체는 기쁜 소식이라는 이름을 가진 공동체로 연령대가 젊었다.

일주일에 한 번 하는 공동체 모임에는 부부가 두 팀, 배우자가 외인인 형제자매가 세 명, 그리고 나처럼 혼자 오는 사람이 2~3명, 그 외에 모임에 참석이 어려운 어르신들이 몇 분 계셨다. 한 번 두 번 모임이 진행되면서 남편이 외인이던 두 자매가 남편들을 선교해서 입교시켰다. 그 형제들이 공동체에 들어오고 부부가 네 팀으로 늘면서 우리 공동체는 부부공동체처럼 되어 갔다.

젊은 부부들이 하느님 이야기를 하고, 함께 신자로서 나갈 방법을 찾고 하는 모습이 너무나 보기에 좋았고 부러웠다. 공동체 모임을 하면서 난 자연스럽게 내 고민을 이야기하게 되었다.

“동생들아, 언니 좀 성당에 오게 해 도. 동생들아, 언니랑도 좀 놀아 도”라며 공동체에 도움을 요청하였다. 나의 요청을 들은 우리 공동체는 아내를 선교 대상으로 정하고 여러 가지 방법으로 선교를 하였다.

공동체 식구들이 직접 만든 말씀 사탕을 가게에 갖다 주며 손님들에게 나눠드리라며 두고 가고, 손수 떡을 만들어 독거노인들에게 나누면서 아내에게도 잊지 않고 방문하고 갔으며, 공동체 식사를 할 때도 일부러 우리 가게에서 단체 식사를 하는 등 소리 없는 선교가 이루어졌다. 그리고 나에게는 술을 줄여야 언니가 성당에 온다며 사랑의 잔소리도 빼놓지 않았다. 그렇게 공동체 식구들이 협력하여 기도와 선교를 하고 나는 술을 줄이며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려고 노력하였다. 그러기를 2년, 아내는 냉담을 풀었고 우리는 나란히 앉아 미사에 참례한다.

오늘은 아내가 공동체 전례에 독서를 하게 되었다. 아직 독서는 못한다며 거절하던 아내를 공동체 식구들은 하느님께서 하실 것이라며 설득하였고 긴장하며 독서자 자리에 앉은 모습에 내가 더 긴장이 되고 하느님의 자녀로 말씀을 선포하는 아내를 자랑스럽게 지켜본다. 그리고 더 많은 봉사를 공동체와 함께하고 싶지만 참여하지 못하는 여건을 아쉬워하는 아내를 보면 아내의 가슴에도 하느님 말씀의 씨앗이 뿌려진 것 같아 흐뭇하다.

미사 중 가만히 생각해보면 내가 냉담을 풀 수 있게 도움을 주신 아주머니나 신부님 그리고 신자들의 활동이 내 마음을 움직였고 아내가 냉담을 풀고 이 자리에 서게 된 것도 공동체 모임과 활동이었다. 몇 달을 먼 거리를 오고 가셨던 아주머니, 아무 말 없이 가게를 들러 주신 신부님, 지치지 않고 찾아주었던 공동체 식구들, 그들의 활동에 하느님께서 함께하신 것이 틀림없다. 사람의 인정으로는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복음 말씀 한 구절이 뇌리를 스쳐간다.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마태 18,20)

끝으로 주님의 은총 속에서 지금까지의 열정과 기도가 헛되지 않고 참된 열매가 맺어지도록 일치된 모습을 보여준 기쁜 소식 공동체의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전하며 이 원고를 마주할 모든 분께 하느님의 은총이 함께하기를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조영훈 (안토니오·대구 성미카엘본당)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20-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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