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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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여와 두 은인, “용서와 기적, 희망을 말하다”

화성사건 무죄 판결 받은 윤성여씨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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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자리에 모인 박종덕(좌) 나호견(중앙) 윤성여(우). 세 사람이 한 자리에 모여 인터뷰에 응한 것은 가톨릭평화신문이 처음이다.



1988년 화성 연쇄살인 8차 사건 범인으로 지목된 윤성여(빈첸시오, 54)씨는 교도소에 수감될 때부터 무죄라고 했다. 그 말을 믿어준 유일한 사람은 충주교도소 박종덕(55) 교도관뿐이었다. 시종일관 억울함을 호소했던 윤씨는 19년 6개월 만에 가석방됐지만, 갈 곳이 없었다. 박 교도관은 출소자 보호시설 뷰티플라이프 나호견(엘리사벳, 71) 원장에게 윤성여를 받아 달라고 부탁했다. 윤씨는 직장에서 주간과 야간 2교대로 근무하며, 쉬는 날이면 성당을 찾는 삶을 반복했다. 2020년 12월 17일, 윤씨는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사건이 발생한 지 32년, 대법원에서 무기징역이 확정된 지 30년 만이다.

주님의 수난과 희생을 되새기는 사순 시기, 32년간의 고통을 떨치고 무죄 판결을 받은 윤성여씨와 그리고 그의 두 은인(恩人) 박종덕 교도관, 나호견 원장을 충북 청주에서 만났다. 세 사람이 한 자리에서 언론인터뷰에 응한 것은 가톨릭평화신문이 처음이다. 이들은 “용서와 하느님의 기적, 희망”을 얘기했다.



- 현재 생활은 어떤가요.

(윤) “똑같습니다. 직장 그대로 다니고 평상시하고 바뀐 게 없어요. 대신 마음이 홀가분해졌습니다. 전과자라는 신분이 벗겨졌으니까 기쁘게 살고 있습니다. 코로나19 때문에 성당은 자주 못 갑니다. 전에는 미사에 꼭 갔고요.”



- 무죄가 확정될 때까지 불안하셨다고요.

(나) “처음에 이춘재가 자백했을 때 굉장히 불안했어요. 빈첸시오(성여)는 신분이 노출되지 않고 열심히 살고 있는데 이춘재가 번복하면 말할 수 없는 피해를 입게 되잖아요. 재판 가는 날까지 불안했어요. ‘땅땅’ 무죄라고 할 때 ‘하느님 감사합니다’ 그랬어요. 윤성여가 살아온 30년을 누가 알겠어요. 하느님이 이루신 기적입니다.”



- 감회가 특별했을 거 같네요.

(박) “사필귀정(事必歸正) 같습니다. 옳은 길로 몇십 년 동안 참고 살았던 게 결국 정해진 길로 오지 않았나. 너무 기쁘죠.”



- 무죄 판결 직후 인도네시아 옆 나라인 브루나이를 가고 싶다고 했는데.

(윤) “제가 추운 거, 겨울을 싫어해요. 제가 소아마비잖아요. 통증이 있어서 지금도 잠을 제대로 못 자요. 지금도 세 시간 이상 자기가 힘들어요. 거기는 겨울이 없잖아요.”

(박) “성여가 따뜻한 나라를 좋아해요. 교도소에서 추웠던 경험이 있거든요. 따뜻한 나라에 대한 소망이 있어요.”



- 이춘재와 당시 수사를 진행한 경찰관들은 용서가 되는지요.

(윤) “교도소에서 성경 필사를 두 번 했어요. 필사를 하다 보면 ‘용서’라는 단어를 많이 쓰게 됩니다. 누군가는 용서해야 해요. 하지만 (경찰관) 한 분은 딱 잡아뗐어요. 솔직히 재판하면서 (감정이)많이 올라와서 참다 보니까 혈압이 터지는 줄 알았어요. 그래도 참고 인내했으니까 무죄를 받은 거고 믿어주는 사람이 있으니까 여기까지 왔습니다. 기도도 노력도 많이 했죠.”



- 교도소에서 ‘무죄’라는 노래를 그렇게 많이 했나요.

(윤) “무죄는 (가수)하춘화의 노래에요. 장애인 행사에서 무죄라는 노래가 나왔어요. 그때부터 부르게 된 거죠.”

(박) “무죄라는 노래가 와 닿은 거죠. 가사는 전혀 상관없이 자기 심정을 대변해주니까. 원래 노래가 ‘사랑은 무죄’거든요. 그런데 무죄라는 소리만 계속한 거죠. 동료 수감자들이 그만 부르라고 하고 싸우기도 많이 싸웠고, 대법원까지 간 놈이 무죄라고 하니까 귀찮았겠죠.”



- 박 교도관을 믿고, 윤성여를 받아주셨는데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요.

(나) “박 교도관은 재소자에 대한 사랑, 배려하는 마음이 교도관 중에 최고였어요. 저는 박 교도관이 말하면 다 들어줬어요. 믿으니까. 성여를 부탁하는 데 장애가 있으면 본인도 불편하고 다른 사람도 불편하잖아요. 출소자의 집에서는 일하고 집을 얻어서 나가야 해요. 몸이 불편하면 취업이 어려울까 봐 받기를 꺼린 거죠. 그런데 ‘갈 데가 없다’ 그래요. 그래서 ‘성여를 만나보겠다’고 했죠.”



- 윤성여가 무죄라고 믿었나요.

(나) “교도소에서 천주교 자매(결연)할 때 성여가 왔어요. 근데 다른 애들은 얌전한데 ‘자기는 무죄다’ 그러는 거예요. 무식하지, 장애 있지, 무기수지, 저런 조건이면 기가 죽었어야 하는 데 기가 센 거예요. (가석방 후) 집에 와서도 무죄라고 해요. 제가 3개월간 관찰했어요. 성범죄자라면 외박도 하고 돈도 써야 하고 술도 먹어야 해요. 그런데 외박ㆍ외출도 안 하고 술도 한 잔 안 먹어요. 제가 3개월 지켜보고 ‘아니다, 너 말이 맞다’ 했어요. 그리고 저하고 3년을 살고 나가서 10년을 한결같이 살았어요.”



- 왜 천주교를 택했는지요.

(윤) “원래 종교가 없었습니다. 불교, 개신교, 원불교 다 가봤는데 천주교에 가니까 말들이 와 닿았습니다. 수녀님한테 교리를 받았는데 좀 엄했습니다. ‘성서를 다 쓰느냐 못 쓰느냐’ (성경 필사) 얘기를 하기에 ‘1년 안에 다 쓰겠다’고 했어요. 그래서 10개월 만에 다 썼어요. 근데 그때는 집필허가가 없던 때라 빼앗겼어요. 2000년도가 넘으니까 집필허가가 나왔어요. 다시 한 번 썼죠. 11개월이 걸렸습니다.”



- 교도소에서 종교교화위원들의 역할은 어느 정도인가요.

(박) “수용자들에게 어마어마한 역할을 합니다. 가정으로 표현하면 교도관들이 아버지라면 종교 쪽 교화위원들은 마음을 위로해주는 어머니 역할을 합니다. 교도소에서 순찰을 하다 보면 새벽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반성하고 하는 건 종교적인 힘입니다.”,

(나) “교정사목 때문에 제 인생이 바뀌었습니다. 교도소를 가서 재소자를 만난 다음에 소명을 느끼고 이 일을 하게 됐죠. 이 일을 내가 죽는 날까지 하겠지만 재소자라고, 출소자라고 돌 던지고 낙인찍으면 안 되는 거죠. 예수님도 사형수고 재소자였어요.”



- 조두순 출소 이후 출소자들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죠.

(나) “사회가 ‘우리를 불안하게 만드는 사람들은 다 나가라’ 그럽니다. 그럼 이 사람들은 어디로 가야 합니까. 자기 죄를 치르고 사회로 돌아왔으면 ‘잘 살아라, 너희도 잘할 수 있어’라고 안아줘야 해요. 그래서 제가 우리 형제들 데리고 사는 거예요. 근데 이 사람들이 착하게 살면 누가 좋아요? 동네가 조용하고 시민이 좋은 거예요. 그런데 나타나기만 하면 돌멩이를 던져요.”

(박) “출소한 후 안정이 안 되면 결국은 또 범죄를 저지릅니다. 그럼 누가 피해를 보나요. 우리 가족이 될 수도 있고 다 피해를 입게 됩니다.”

(윤) “원장님이 교통카드를 주는 데 쓸 줄을 몰랐어요. 이런 사람들을 포용해야 해요. 솔직히 전과자들이 다 나쁜 거는 아니잖아요. 근데 기업들은 전과자들을 냉대하죠. 사회에서 좀 넓게 봐야 해요.”



- 출소자의 집 운영이 어렵지 않은가요.

(나) “조두순이 출소한 이후 아주 어려워졌어요. 안 그래도 적었던 후원이 더 적어졌습니다. 출소자의 집 운영비는 국가에서 70를 지원하고 나머지 30는 법인을 만든 내가 구해 와야 해요. 그런데 30 마련이 안 된다고요. 누가 (후원금)내는 줄 아나요? 불쌍한 할머니들, 가난한 사람들이 돈을 냅니다. 부자는 안 내고 회사도 절대 안 내요. 전과자 도와준다면 누가 좋아하겠어요. ‘불쌍한 할머니, 소년소녀가장들도 많은데 왜 도둑질한 놈들 도와주느냐?’ 그래요. 이 사람들이 나와서 살아야 하는데 출소자에게 3개월에 100만 원만 줘요. 그다음에는 끝이죠. 100만 원 갖고 3개월 살 수 있어요? ”



- 1년 3개월 전 인터뷰에서 세례명처럼 살고 싶다고 했는데.

(윤) “큰 계획은 없어요. 저는 세례명이 빈첸시오인데 빈첸시오가 거지왕이잖아요. 그렇다고 거지처럼 살 수는 없잖아요.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고 앞으로 어려운 사람, (나호견)원장님 같은 분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요.”



- 윤성여씨가 이제 어떤 삶을 살았으면 좋겠는지요.

(나) “주변에서 ‘결혼해라’ 그러는 등 본인도 생각이 많을 거예요. 윤성여의 인생을 보면 삶에 대한 희망이 없는데 한결같이 살았어요. 그 기적은 하느님이 윤성여의 삶을 보고 당신이 마음을 내놓으신 거예요. “빈첸시오 너는 진짜야” 이렇게 도장을 찍어줬으니까 지금부터가 출발이에요. 지금부터 어떻게 살지 쟤(윤성여)가 하는 것보다 하느님이 하시리라 생각하고 하느님의 소리에 귀를 기울일 겁니다. 하느님은 한결같이 지금 하신 것처럼 계속하시리라 생각합니다.”

(박) “이제 전과자 딱지를, 굴레를 벗어난 것이니까 조금 못다 했던 것, 브루나이도 다녀오고 자기가 소망했던 것도 성취하면서 그런 꿈을 이뤘으면 좋겠어요.”

(후원 계좌: 농협 401821-55-000142 뷰티플라이프)


이상도 기자 raelly1@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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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1-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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