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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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장 신부부터 조선대목구장 주교까지 세 학생을 지극정성으로 가르쳐

[신 김대건·최양업 전] (12)마카오 극동대표부 조선 신학교의 스승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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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대건과 최양업이 마카오 파리외방전교회 극동대표부 조선 신학교에서 스승 신부들로부터 신학을 배우고 있다. 가톨릭평화방송 TV 특별 기획 드라마 ‘성 김대건’의 한 장면. 가톨릭평화신문 DB



마카오 파리외방전교회 극동대표부 조선 신학교 교수 신부들의 면면을 간단히 살펴보자.



먼저, 조선 신학교 교장인 칼르리(Callery, 1810~1862) 신부는 이탈리아계 프랑스인으로 1835년 조선 선교사로 임명됐다. 그는 조선 입국이 쉽지 않아 마카오에 머물러 있었다. 그는 김대건, 최양업, 최방제 세 신학생이 마카오에 도착하자 조선 신학교 교장으로 임명돼 교리와 교회 음악 등을 가르쳤다. 그는 1841년 11월 파리외방전교회를 탈회하고 프랑스로 돌아가 환속했다.

르그레즈와(Legregeois, 1801~1866) 신부는 마카오 선교사로 파견돼 극동대표부 부대표를 거쳐 1830년부터 12년간 대표부장으로 재직했다. 그는 1831년 조선대목구 설정과 함께 초대 대목구장으로 브뤼기에르 주교가 임명되자 조선 선교를 적극 도왔다. 그는 극동대표부 내에 조선 신학교를 세웠고, 칼르리 신부에 이어 교장 겸 교수로 세 신학생에게 라틴어와 프랑스어 등을 가르쳤다. 1841년 말에 파리외방전교회 본부 신학교 지도자로 임명돼 프랑스로 귀국했다. 그는 김대건 신부로부터 3통, 최양업 신부로부터 15통의 편지를 받았다.

리브와(Libois, 1805~1872) 신부는 세 조선 신학생이 마카오에 도착하던 해인 1837년 극동대표부에 왔다. 그는 조선인 세 신학생에게 교리와 라틴어, 프랑스어, 지리학 등을 가르쳤다. 1839년부터 극동대표부 부대표로 일하다 1841년 말 그르레즈와 신부 후임으로 극동대표부장으로 임명됐다. 그는 김대건과 최양업에게 프랑스 함대에 승선해 조선 입국로를 탐색하게 하는 등 조선 선교를 적극 지원했다. 또 1847년 파리외방전교회 극동대표부를 마카오에서 홍콩으로 이전했고, 이후 각 선교지에 대표부를 설치하는 데 많은 노력을 했다. 1866년 파리로 돌아간 후 파리외방전교회 신학교 교장과 로마 대표부장으로 활동했다. 그는 김대건 신부로부터 12통의 편지를, 최양업 신부로부터 4통의 편지를 받았다.

데플레슈(Desfleches, 1814~1887) 신부는 1838년 중국 사천 선교사로 임명된 후 임지로 가기 전에 약 2년 동안 조선 신학생들을 가르쳤다. 아편 거래 문제로 소요 사태가 발생해 마카오가 혼란해지자 칼르리 신부 등과 함께 김대건과 최양업을 필리핀 롤롬보이로 피난시키고 그곳에서 함께 생활하면서 매일 두 신학생을 가르쳤다. 1840년부터 사천에서 사목했으며 1856년 사천대목구장으로 임명됐다.

메스트르(Maistre, 1808~1857) 신부는 1840년 베르뇌 신부와 함께 마카오에 도착해 선교 임지를 발령받기까지 김대건과 최양업에게 철학과 신학 등을 가르쳤다. 1842년 2월 조선 선교사로 임명된 그는 김대건과 함께 마카오를 출발해 1842년 10월 요동반도에 도착해 조선 입국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이후 그는 1846년 1월 함경도 경원으로 조선 입국을 시도했으나 실패하고, 1847년 8월 최양업 부제와 함께 고군산도를 통해 입국하려 했으나 군함이 좌초돼 또 한 번 실패하고 만다. 1852년 8월 고군산도를 통해 결국 조선에 입국한 그는 1853년 페레올 주교 사망 이후 1856년 제4대 조선대목구장 베르뇌 주교가 입국할 때까지 조선대목구장 서리로 활동했다. 그는 성영회를 조직해 고아들을 돌보았고, 1856년 배론에 성 요셉 신학교를 세웠다. 그는 1857년 12월 충청도 덕산 황무실 교우촌에서 과로로 선종했다.

베르뇌(Berneux, 1814~1866) 주교는 제4대 조선대목구장이다. 그는 1840년 1월 북베트남 지역 선교사로 임명돼 마카오를 거쳐 통킹으로 갔다. 마카오에 머무는 몇 주 동안 김대건과 최양업에게 철학을 가르쳤다. 그는 통킹에서 체포돼 사형 선고를 받고 2년 동안 감옥살이를 하다 프랑스군의 도움으로 구출돼 1844년 3월 중국 선교를 위해 요동에 도착해 11년간 사목했다. 1854년 제4대 조선대목구장으로 임명된 그는 메스트르 신부의 도움으로 1856년 3월 입국했다. 그는 다블뤼 신부를 보좌 주교로 임명하고, 선교사의 사목 지역을 8개 구역으로 나눠 효율적인 사목을 하도록 했다. 또 다블뤼 주교와 최양업 신부에게 기도서와 교리서를 저술하게 해 신자들의 교육에 힘썼고, 목판 인쇄소를 설립해 교회 서적 보급에 앞장섰다. 1866년 병인박해 때 체포돼 그해 3월 새남터에서 순교했다.

이들 외에도 제3대 조선대목구장 페레올 주교가 1843년 4월부터 중국 소팔가자에서 김대건, 최양업이 1844년 12월 부제품을 받기 전에 1년여간 신학을 가르쳤다.



세 신학생의 신학교 생활

조선의 세 신학생은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들의 우려와 기대 이상으로 그들을 만족하게 했다. 칼르리 신부는 “3명의 조선 소년들은 훌륭한 사제에게 바람직스러운 것, 신심, 겸손, 면학심, 선생에 대한 존경 등 모든 면에서 완전합니다. 그들은 그들을 가르치는 데 위로를 주고 그 수고를 보상해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갖추고 있습니다”라고 흡족해했다.(칼르리 신부가 1837년 10월 6일자 파리외방전교회 신학교 트송 신부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러나 파리외방전교회 극동대표부는 조선 신학교를 안정적으로 운영할 준비나 여력이 없었다. 극동대표부장 르그레즈와 신부는 파리외방전교회 본부 지도자들에게 보낸 편지(1840년 3월 15일자)에서 다음과 같이 그의 고충을 털어놓았다.

“페낭신학교에는 학생이 30명인데 쿠에노 주교가 레제로 신부에게 10명을 보내기로 약속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페낭에는 36명의 학생 자리밖에 없습니다.…저로서는 페낭신학교 상태가 좀더 향상되지 않고, 또 조선 학생들을 특별히 책임질 신부가 없는 한, 조선 학생들을 중국인, 인도차이나인 학생들과 같이 둘 생각은 없습니다. 조선 학생들을 마카오에 있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리브와 신부나 저 자신이 그들을 가르칠만한 충분한 시간이 없으므로 다른 신부 한 사람을 허락하는 조건에서입니다.”

메스트르 신부는 극동대표부에서 공부하는 신학생들에 관한 건의 편지(1841년 11월 17일자)를 파리외방전교회 신학교 교장 알브랑 신부에게 보낸다. 메스트르 신부는 이 편지에서 △대표들은 학생들을 보내는 교구장들의 명백한 허락 없이, 또한 파리신학교의 허가 없이는 어떠한 학생도 대표부에서 받지 않는 것이 적절해 보입니다. △대표부에 학생들이 있을 경우 대표들이 그들의 교육을 맡고, 그곳에 들르는 선교사에게는 맡기지 않는 것이 적절해 보입니다. △학생들에게는 그들을 보내는 교구장들의 요구가 없는 한 라틴어와 그들의 나라말만 가르쳐야 할 것입니다. △학생들에게 지하실과 주방 일을 맡기지 말아야 하고, 또 매일 경비 장부를 기록하고, 각 선교지에 필요한 돈을 추리고 계산하고, 보낼 물건들을 준비하는 등의 일들도 학생들에게 요구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은 신부님도 너무나 잘 아시다시피 작은 일이 아닙니다라고 건의했다.

메스트르 신부는 조선 선교사로서 자신이 가르친 김대건, 최양업과 함께 늘 동행하기를 희망하고 사랑을 쏟았다. 김대건과 최양업 두 신학생이 극동대표부 신부들이 시키는 잡무에 시달리고, 프랑스어와 중국어 등을 배우는 등 과도한 공부에 힘들어하는 것을 보고 아마 과하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두 조선 신학생에 대한 극동대표부의 처우가 부당하다고 여긴 그는 파리외방전교회 신학교 교장에게 직접 신학생들은 오직 기도와 공부에만 전념해 좋은 사제로 양성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요청했다. 메스트르 신부는 이러한 그의 바람을 훗날 조선에 입국해 배론신학교를 설립해 신학들을 양성하면서 조금씩 실현해 갔다.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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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1-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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