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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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무조건 믿고, 가르치기보단 경청하고 물어보세요”

[성 요셉의 해, 우리 시대 요셉을 찾아서] (5)한국분노관리연구소 이서원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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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2 아들을 둔 한국분노관리연구소 이서원 소장은 “모든 사람이 오십견과 대상포진에 걸리지 않듯, 아이의 마음을 잘 읽어주고 알아주면 사춘기는 지나갈 수 있다”고 말한다.

▲ 이서원 소장은 지금까지 아들에게 150통에 이르는 사랑의 편지를 썼다.



“저기 걸어가는 사람을 보라. 나의 아버지 혹은 당신의 아버지인가. 가족에게 소외 받고 돈 벌어 오는 자의 비애와 거대한 짐승의 시체처럼 껍질만 남은 권위의 이름을 짊어지고 비틀거린다. 집안 어느 곳에서도 지금 그가 앉아 쉴 자리는 없다. 이제 더 이상 그를 두려워하지 않는 아내와 다 커 버린 자식들 앞에서 무너져가는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한 남은 방법이란 침묵뿐이다. 우리의 아버지들은 아직 수줍다. 그들은 다정하게 뺨을 부비며 말하는 법을 배운 적이 없었다.”(가수 신해철, ‘아버지와 나’ 중에서)

신해철씨 가사처럼 한국에서 아버지로 살아가는 일은 고단하다. 가부장적인 문화에서 자란 남성들은 자신을 돌볼 새 없이 가족의 경제적 책임을 떠안아야 했다. 돈만 벌어다 주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시대는 변했다. 가족 간 유대와 친밀감이 중요해졌고, 아빠도 양육자로서 역할을 요구받는 시대다. ‘좋은 남편, 좋은 아빠’가 되고 싶은 마음은 확실하지만 그 길로 가는 법을 배운 적이 없다.



중2 아들에게 101점이라는 후한 점수를 받는 50대 아버지가 있다. “16년 동안 아이에게 단 한 번도 화를 내본 적이 없습니다. 화는 수천 번 났지요. 화가 나는 것은 산에 불이 나는 것과 같습니다. 화를 내는 것은 산에 불을 지르는 겁니다. 아이의 말과 행동이 마음에 안 들면 부모는 화가 나지요. 화가 난 순간들을 살펴보면 아이가 의도적으로 저를 해치려고 한 적은 없어요. 화가 나면 저에게 묻습니다. 화를 낼까, 말까.”

한국분노관리연구소의 ‘소장’다운 대답이었다. 이서원(프란치스코) 소장은 부모 상담만 26년째, 내담자만 3만 명 넘게 만나왔다. 부부 사이, 부모와 자녀 사이가 극단으로 치닫는 내담자들의 갈등 상황을 보면서 무수한 실패를 반면교사 삼았다. 실패에도 한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부모가 아이를 믿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사랑이라고 믿지만 결과는 불신을 낳는 거죠. 부모와 자녀 사이에 신뢰를 잃으면 더 이상 잃을 건 없습니다. 부부 사이도 마찬가지이지요.”

이 소장은 “상담받으러 온 부부들은 한결같이 자녀를 잘 키우고 싶은 좋은 목적이 있었지만 좋은 방법을 갖고 있지는 않았다”고 털어놨다. 자녀 양육의 비결은 가장 좋은 방법으로 가장 좋은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다.

그에게 아들은 첫 내담자다. 그는 아버지로서 아이를 다그치거나 꾸중한 적이 없다. 어떤 일이 생기면 아들을 믿고, 진상파악에 나선다. 그는 “아빠가 궁금한 게 있는데, 이게 무슨 일이지? 왜 이렇게 했는지 궁금한데, 그때 기분은 어땠고, 지금은 어때? 더 할 말은 없어?”라고 묻는다. 아이의 말을 경청한 후, 아이가 한 말을 정리해준 후 “그럴 수 있었겠다”라고 해준다. 그러고 “그런데 다른 방법은 없었을까?”라고 돌려서 묻는다.

“이 과정을 거치면 아이에게 억울함이 남지 않습니다. 아이도 스스로 잘못했다는 걸 알거든요. 부모는 아이의 잘못된 행동에 대한 올바른 답을 직진으로 바로 알려주고 싶어 합니다. 속이 시원하니까요. 하지만 아이의 마음을 하나도 들어주지 않았기 때문에 아이는 귀를 닫습니다. 아이의 마음을 밖으로 다 꺼내준 후에 마음이 비워지면, 그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살포시 해줍니다. 직진이 아니고 돌아가는 거죠.”

직진이 아닌 돌아가야 한다는 그에게 특유의 인내와 여유가 돋보였다. 그는 아들이 어린 시절, 마트에서 레고를 사달라고 떼를 썼던 일화를 언급했다.

“‘아빠가 집에 카드를 두고 왔네. 지갑에는 2만 원밖에 없고. 레고가 정말 갖고 싶겠다. 다음에 엄마와 같이 오자.’ 아이는 계속 떼를 씁니다. 아이는 ‘레고 갖고 싶다고!’ 하며 떼를 씁니다. 그러나 아이가 레고를 너무 갖고 싶은 것일 뿐 아빠를 의도적으로 창피 주려고 하는 건 아니지요. 저는 반복해서 말을 잘하거든요. 화내지 않고 반복해서 설명해줍니다.”

그는 모든 청소년이 사춘기를 겪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춘기는 없을 수도 있어요. 옆에서 아이 마음을 잘 읽어주고 받아주면 무난히 넘어갈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오십견과 대상포진에 걸리지 않듯, 사춘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이가 속상해서 반항할 때 내는 소리에 어른들은 사춘기가 왔구나 하지요. ‘사춘기가 왔다’는 말은 부모가 책임을 뒤로 빼고 싶은 말일 수도 있어요.”

이 소장은 16년 전 결혼 당시, 자기 자신과 약속했다. 아내에게 화를 내면 상담을 그만두겠다고 결심한 것. ‘상담가가 자기 앞가림도 못 하면서 다른 사람을 어떻게 인도할 수 있겠느냐’는 자신을 향한 물음이었다. 그에게 상담은 곧 삶이다. 잘 살아야 상담도 잘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는 아내에게도 화를 내본 적이 없다. 이쯤 되면 주변에서 되묻는다. “화를 참고 있는 거 아니냐, 혹시 가짜 부부는 아닌지” 하고.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자연스럽게 얻은 결과가 아니다. 그에게도 자기 자신을 사랑하기 위해 끊임없이 의식적으로 훈련한 피와 땀의 시간이 있었다.

“저는 저를 제일 많이 달래고 칭찬해줘요. 화가 나면 맛있는 음식 먹여 주며 달래줍니다. 역시 이서원이다. 옷만 사지 말고 양말부터 모자까지 다 사라!”(웃음)

그는 “자기 자신이 행복한 사람은 남을 괴롭히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그의 20대 일기장은 자신을 혐오하는 말로 빼곡했다. ‘나는 왜 이렇게 못생겼을까, 나는 왜 학교가 싫을까?’ 하며 “우울했고, 괴로웠고 그 수렁에는 끝이 없었다”고 털어놨다. 그의 아버지 역시 롤모델은 아니었다. 그러던 그는 30대에 상담공부를 시작하면서 자기 자신을 사랑해야겠다고 결심했다. 결국, 자신을 힘들 게 하는 건 자신임을 깨달았다.

“수많은 부부가 같은 데서 넘어지더라고요. 좋은 부모를 못 만나면 자신도 좋은 부모가 못 되고, 자기가 상처받은 곳에서 또 넘어지고, 아이에게 같은 상처를 주더라고요. 내담자들은 고마운 분들입니다. 상담하면서 내가 새로운 가문을 만들자, 내가 1대가 되자 결심했습니다. 고리를 끊고 다르게 살고 싶었어요.”

그가 좋은 아버지가 되고 싶은 이들에게 건네는 팁이 있다. ‘아이를 무조건 믿어주는 것’과 ‘가르치려 하지 말고 물어보라’는 것이다.

“돈보스코 성인이 말했죠. 사랑은 받는 사람이 사랑이라고 느낄 때 완성된다고요. 모든 아이의 문제는 가정에서 사랑의 결여로 생겨납니다.”

그는 “기쁠 때나 힘들 때 항상 나눌 수 있는 아빠가 되고 싶다”고 했다. 그가 아들에게 가장 많이 한 말은 “괜찮아”다. 넘어져도, 못해도, 틀려도, 달라도 괜찮아였다. “넘어지면 뒤에서 늘 아빠가 일으켜주니 두려워 말라”고 했다. 그가 아들에게 쓴 편지는 150통에 이른다.

“이제는 친구로 어깨동무하고 걸어가고 싶어요. 아이를 제 자식으로 생각하지 않고, ‘귀한 분’이라고 생각해요. 우리 부부를 통해 오셨지만 하느님이 보내신 분이죠. 하느님이 어느 집에 아이를 맡길까 고민하시다가 저희에게 이 아이를 보내주셨으니까요.”



이서원 소장은

연세대 사회복지학 박사. 고려사이버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로 재직했고, 서강대 신학대학원 겸임교수로 수도자들에게 상담을 가르치고 있다. 가정폭력과 아동학대로 고통받는 피해자와 가해자를 위한 상담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의 부부와 부모 자녀가 겪는 고통의 뿌리에 해소되지 못한 분노가 있음을 발견하고 한국분노관리연구소를 설립했다.



이지혜 기자 bonappetit@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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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1-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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