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5일
기획특집
전체기사 지난 연재 기사
7년간 손주들과 매일 전화 주모경… “신앙 물려주니 노후도 풍요로워”

신앙 수기 사랑상 (할머니 부문) 수상한 고명화 엘리사벳 어르신

폰트 작게 폰트 크게 인쇄 공유

▲ 7년 동안 손주들과 매일 밤 전화로 주모경을 바쳐온 고명화 할머니. 그는 “처음에는 아이들에게 신앙을 물려주고 싶어 시작했지만 내가 더 행복해졌다”고 말한다. 백영민 기자



▲ 고명화 할머니의 쌍둥이 손주 조예성군과 조혜원양. 손주들은 “신앙을 물려주신 할머니에게 감사하다”고 말했다.


▲ 쌍둥이 손주들이 첫 영성체를 한 날, 3대가 모여 기념 촬영을 하고있다. 고명화 할머니 제공



“얘들아, 일주일에 한 번 예수님께 너희가 좋아하는 짜장면 사드리면 어떨까?”

“그건 너무 비싸요!”

“그러면 떡볶이 사드리고, 나중에 너희가 돈 벌면 그때는 돈가스랑 갈비탕이랑 삼계탕 사드려라.”

“좋아요, 할머니!”



손자ㆍ손녀가 중학생이 될 때까지 7년 동안 매일 밤마다 전화로 주모경을 바쳐온 할머니가 있다. 할머니는 기도한 날을 달력에 표시해뒀다가 하루에 500원씩 용돈을 준다. 손자녀들은 매달 할머니한테 받은 용돈에서 십 분의 일을 떼어내 성당에 감사헌금으로 봉헌해왔다. 아이들이 크면서 친구도 만나고, 학원도 다녀야 해 바빠졌지만, 할머니와 주모경 바치는 기도 시간은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

고명화(엘리사벳, 74, 서울 녹번동본당) 할머니는 손주들을 신앙으로 키운 비법을 글로 녹여냈고, ‘세계 조부모와 노인의 날’을 기념해 서울대교구 사목국 노인사목팀이 마련한 신앙수기 공모에서 할머니 부문 사랑상(교구장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그러니까 16년 전 우리 집에 하느님께서 천사 같은 생명인 쌍둥이 남매를 보내 주셨습니다”로 시작하는 글에는 손주를 향한 할머니의 깊은 사랑이 배어있다.

첫 손주로 쌍둥이를 맞은 고 할머니는 태어나자마자 잠시 손주들을 직접 키웠다. 아들 부부의 맞벌이로 한 아이는 친가에, 다른 아이는 외가로 보내졌다.

손주를 자랑하고 싶었던 고 할머니는 유모차에 손주를 태워 매일같이 성당에 드나들었다. 미사를 봉헌하는 건 물론 성당 마당을 산책하면서 자연스럽게 신부, 수녀의 사랑을 한껏 받게 했다. 태어난 지 한 달 후 유아세례를 받게 했고, 6살부터 아이들은 유치부에 다니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주님 안에서 잘 자라 주기를 늘 기도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신앙생활을 잘하게 할까?’ 생각을 많이 했어요. 한글을 알기 시작할 때 주모경을 외우게 했습니다.”

고 할머니는 아이들이 한글에 눈 뜰 무렵, ‘기도의 맛’도 보게 했다.

“매일 상금으로 500원을 주었더니 남매가 경쟁하듯 기도를 잘 바쳤습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 한동네에 가까이 살다 김포로 이사를 갔는데, 손주들을 자주 못 보게 되어 서운하더라고요. 매일 전화로 함께 기도를 바치고, 안부도 주고받으니 좋았습니다.”

기도 용돈(?) 500원은 7년째 오르지 않고 그대로이지만, 7살 터울의 막내가 태어나 할머니의 지갑은 기분 좋게 얇아졌다. 매달 초에 만나, 기도 용돈을 정산할 때면 웃음바다가 된다. 받은 용돈에서 예수님께 좀 떼어드리자는 할머니와 세 손주의 협상과 실랑이가 오간다.

아이들이 중학교에 입학하자, 고 할머니는 성경 읽기 노트를 만들어줬다. 아이들은 4복음서와 사도행전까지 읽었다. 코로나가 덮치기 전까지는 함께 성지순례도 많이 다녔다.

고 할머니는 아이들과 나누는 대화 주제가 풍성하다. 스스로 독서 노트를 만들어 쓰고 있다. 아이들에게 책 선물도 많이 했다. 아이들과 만나는 날이면 서로 한 달 동안 읽은 책 이야기를 해주고, 환경문제, 기후문제, 청소년 문제에 관해 토론한다. 최근에는 “요즘 청소년들이 스마트폰을 너무 많이 사용한다는데 너희들 생각은 어떠냐”고 물었고, 아이들은 “좋지 않다는 것은 아는데 절제하기가 어렵다”고 의젓하게 대답했다.

“다양한 주제로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는 거예요. 대화를 나누며 신앙의 씨앗을 뿌리는 농부가 되는 거죠. 열매가 성소로 이어질 수 있도록요.”

고 할머니는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는다. 아들, 며느리, 손주들과 깊이 있고 다양한 대화를 나누고 싶어 틈틈이 공부한다.

“젊은이들과 대화를 많이 나누려면 노인네들은 공부를 해야 합니다. 너무 모르면 대화 주제 없이 겉돌게 되거든요.”

고 할머니는 새해가 되면 며느리(박은애 아녜스)와 기도 계획표를 짠다. 대축일과 가족의 영명 축일에 맞춰서 54일 기도를 몇 년째 하고 있다. 그는 며느리를 처음 맞았을 때, “하느님이 수많은 사람 중에 우리를 고부간으로 묶어 주셨으니 감사하게 생각하자”며 “서운한 일이 있더라도 서로 이해하면서 잘 살자”고 말해주었다.

고 할머니의 두 아들은 캐나다와 이라크에서 생활한다.

“두 아들이 외국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지만, 신앙이 삶에 많은 힘이 된다고 고맙다고 합니다. 탈무드에 ‘고기를 물려 주기보다 고기 잡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것이 낫다’는 말이 있듯이, 물질을 남겨 주기보다 신앙을 물려 주는 것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조예성(토마스 모어, 중3, 인천교구 풍무동본당)군은 “처음에는 할머니와 매일 같이 기도하는 게 귀찮기도 하고, 바쁘다고 핑계를 대고 빠진 적도 있었다”면서 “어릴 때부터 기도문을 외울 수 있고, 기도하고 나서 뿌듯함을 알게 해주셔서 감사하다”고 털어놨다.

조혜원(그라시아, 중3)양은 “신앙이 힘들 때 위로와 힘이 되기도 하지만 제게 신앙은 즐거움에 더 가깝다”면서 “즐거운 신앙생활을 할 수 있게 도와주신 할머니께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이라크에서 잠시 휴가를 맞아 귀국한 아들, 쌍둥이 남매의 아버지 조형민(야고보, 47)씨는 “평생 저도 어머니의 기도 덕택에 살아왔는데, 손주들에게 신앙 유산을 선물해주셔서 감사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고 할머니는 “가정에서 조부모의 역할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세상에 다른 것은 몰라도 신앙에서만큼은 큰 소리를 냈으면 좋겠다”면서 “그 첫걸음은 소통과 대화에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요즘 어린 손주들을 돌보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많은데 아이들 데리고 동네 한 바퀴를 돌 때, 성당에도 하루에 한 번은 꼭 들리고 성당 마당에서 뛰어놀게 하면 자연스럽게 신앙에 물들 수 있다”고 조언했다.

“오늘도 전화기 저 너머 들려오는 기도 소리는 제 삶의 기쁨이며 행복입니다. 아마도 예수님도, 성모님도, 요셉 성인께서도 기뻐하실 것 같습니다. 정말로 아이들이 잘 따라주고, 특히 며늘아기가 잘 협조해 주어서 더욱 고맙지요. 처음 시작할 때는 아이들에게 신앙심을 심어주기 위함이었는데 지금에 와서 보면 저의 행복하고 풍요로운 노후생활을 준비한 것 같습니다. 이 모든 것이 주님의 이끄심이며 은총임을 믿고 감사드립니다.”(고명화 할머니 수기 중에서)

이지혜 기자 bonappetit@cpbc.co.kr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21-07-20

관련뉴스

말씀사탕2024. 4. 25

마태 5장 3절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 QUICK MENU

  • 성경
  • 기도문
  • 소리주보

  • 카톨릭성가
  • 카톨릭대사전
  • 성무일도

  • 성경쓰기
  • 7성사
  • 가톨릭성인


GoodNews Copyright ⓒ 1998
천주교 서울대교구 · 가톨릭굿뉴스.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