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9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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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을 오르다 하느님을 만나다] (4) 문경 한실 교우촌에서 마원성지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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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문경시 가은읍에 위치한 안동교구 한실 교우촌을 찾았다. 산나물, 약초 등이 많이 나 이를 보존하기 위해 마을 사람들의 건의로 현재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된 곳이다. 하지만 안동교구 성지·사적지 담당 정도영 신부와 동행하면 출입이 가능하다. 이처럼 한실 교우촌은 사람 발길이 거의 닿지 않고, 중장비가 들어가기 힘든 길이기 때문에 잘 가꿔진 성지라기보다 자연 그대로 모습을 간직한 숲에 가까운 모습이다. 소박하지만 자연의 광활함을 담고 있는 한실 교우촌과 사제와 평신도 간의 끈끈한 우정을 간직한 ‘우정의 길’도 걸어본다.



■ 한실 교우촌

정도영 신부, 김한중(요셉) 안동교구 성지 선교사와 함께 한실 교우촌으로 향했다. 교우촌은 백두대간을 잇는 백화산(1063m)과 뇌정산(991m) 사이 8부 능선에 있다. 충북 괴산군과 경북 문경시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백화산은 괴산군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뇌정산은 백화산에서 동남쪽으로 흘러내린 능선 위에 우뚝 솟은 산으로 현재까지 인적이 드물어 지도에 표시된 길이 초입에서나 확인될 뿐 조금만 들어가도 희미해지거나 없어져 버린다. 이처럼 한실 교우촌은 높고 인적이 드문 곳에 자리 잡았다.

한실 교우촌은 1801년 신유박해 전후로 형성된 영남지방에서 가장 오래된 교우촌이지만 이러한 지리적 상황 때문에 1866년 병인박해 전까지 모든 박해를 피할 수 있었다. 또한 다른 지역에서 밀려드는 신자들에게 경상도 지방의 교우촌을 소개해주고 동시에 타지방으로 이동하려는 신자들에게 휴식처를 제공한 교두보 역할도 했다.

한실 교우촌 15명의 신자들은 병인박해 때 대부분 상주 감옥에서 순교했다. 안타까운 점은 이들의 본관이 어디인지 후손이 누구인지 알 수 있는 기록이 없고 무덤도 발견되지 않아 결국 성인 반열에 오르지 못했다는 것이다. 대신 안동교구는 이들의 가묘를 만들어 순교자들을 기리고자 계획하고 있다.

현재 한실 교우촌에는 상주 옥에서 순교한 서유형 바오로와 박 루치아 순교자 무덤이 있다. 이들은 한실 교우촌 신자는 아니지만 성역화 작업을 시작하면서 상주에 있던 무덤을 이곳으로 이장했다.

이들 묘 앞에서 기도를 바치고 순례를 시작했다. 성지 부지는 3만3000㎡(약 3만평) 정도 되는데, 이는 조성을 위해서라기보다 워낙 숲이다 보니 길을 내기 위해 지난 30년간 조각 땅을 매입해 마련한 성지터다.

정 신부는 “성지의 목적은 순교자들이 살았던 곳을 보며 그분들의 숨결을 느끼고 영신적으로 도움을 받는 것”이라며 “자칫 잘못하면 성지를 개발하는 자체가 목적이 돼 버릴 수 있다”고 말했다. 정 신부 말대로 교우촌 터는 소박했지만, 산속 깊은 곳에서 숨어 지내야만 했던 순교자들의 상황이 고스란히 몸으로 느껴졌고 거대한 숲 속에서 살아 숨 쉬는 순교자들의 넋이 우리를 맞이하고 있는 듯했다.


■ 우정의 길에서 마원성지까지

“신부님 곁을 떠날 수 없습니다. 함께 가겠습니다. 신부님께서 이 험한 곳에서 돌아가신다면 저도 기꺼이 따라서 죽겠습니다.”

“마티아, 내 말대로 하세요. 명령입니다. 당신이 가져온 과일 절반은 가져가고, 나머지 절반은 내게 주시오. 제발 순명하시오!”

박상근(마티아·1836~1866) 복자와 칼레 신부(1833~1884)의 마지막 대화다.

파리 외방 전교회 소속이었던 칼레 신부는 1861년 한국에 입국해 경상도 서북부지역인 상주, 문경 일대에서 사목활동을 했고 병인박해 당시 한실 교우촌에서 은신하고 있었다.

문경 토박이로 착실하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던 박상근 복자는 한실 교우촌에 갔다가 칼레 신부가 그곳에 숨어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교우들이 모여 있는 한실보다 문경관아 근처 읍내에 숨는 것이 더 안전하다 판단하고 문경읍에 있는 자신의 집으로 칼레 신부를 데리고 왔다. 하지만 3일 후 칼레 신부가 이웃 주민에게 발각되자 동이 트기 전 급히 한실로 다시 되돌아가기로 했다. 둘은 허기와 갈증으로 고생하면서 험한 산길을 걸었고, 백화산 중턱까지 도달했을 때 복자는 탈진 직전에 이르렀다. 이에 칼레 신부는 복자에게 다시 돌아가라는 명령을 내렸고, 복자는 미안한 마음에 통곡했다. 서로 손을 붙잡고 통곡한 끝에 이별을 고했다. 복자는 혼자 떠나는 칼레 신부를 한참동안 그 자리에서 서서 바라봤다. 돌아온 복자는 얼마 후 체포돼 온갖 고초를 겪고 상주 옥에서 30세의 나이로 순교했다. 칼레 신부는 고향인 프랑스로 돌아가서도 복자와의 우정을 평생 간직했다.

칼레 신부와 복자가 마지막 이별을 고한 이 길을 ‘우정의 길’이라 부른다. 백두대간 능선과 겹쳐지는 우정의 길은 매우 가파른 코스가 중간중간 있었고 아직까지 산행로가 완벽하게 갖춰지지 않아 당시 험난한 상황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힘든 길을 헤쳐 지나고 나면 엄청난 풍광이 펼쳐진다. 문경에는 공장이 없기 때문에 고압 송전탑도 없어 시야가 완전히 트여 있다. 그곳에서 정 신부 주례로 미사를 봉헌하고 김 선교사가 챙겨온 음식으로 식사도 했다. 서로를 챙기고 맡은 바에 충실한 정 신부와 김 선교사를 보면서 칼레 신부와 박상근 복자의 우정이 겹쳐져 보이기도 했다.

한편 그 순간 ‘성지순례 하는데 이렇게 좋은 풍광을 만끽해도 되는 것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정 신부는 “부모님 생각을 하면 된다”고 했다.

“부모는 맛있는 음식을 자녀들에게 먼저 주지요. 순교자들도 자신들 덕분에 후손들이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고 마음껏 자연을 즐기는 것을 보면 뿌듯해 하시지 않을까요. 대신 우리는 앞길을 닦아놓은 순교자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신앙을 잘 전수해야 되겠죠.”

광활한 풍광을 가슴에 담고 우정의 길을 끝까지 걸으면 박상근 복자의 묘가 있는 마원성지가 나온다. 원 묘터는 조금 떨어진 곳에 있지만, 성지를 조성하면서 이장했다. 마원성지에는 칼레 신부의 동상도 함께 세워져 있어 이들의 우정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다.





■ 문경일대 성지

문경일대에는 이 외에도 가경자 최양업 신부가 선종했다고 추정되는 문경 주막터가 있는 진안리성지와 이윤일(요한) 성인 중심으로 형성된 교우촌을 조성한 여우목성지가 있다.

한실 교우촌과 마원, 진안리, 여우목성지를 모두 순례하려면 체력적으로 어느 정도 고생은 감내해야 하지만, 그만큼 순교자의 삶을 몸으로 느낄 수 있는 탁월한 곳이기도 하다. 광활한 자연의 위대함을 마주하는 시간은 덤으로 주어진다.

다만, 개인적으로는 갈 수 없고 정도영 신부와 동행해야 한다. 정 신부는 “한 분이 오셔도 순교자들의 숨결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우리가 이곳에 있는 이유”라고 밝혔다.

※문의 010-9944-0145 정도영 신부




박민규 기자 pmink@catime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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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1-07-20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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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 3장 6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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