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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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리신앙, 깊어가는 믿음] (12) 성당에서 마음을 다친 아이 어떻게 도와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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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딸은 초등학생 때 첫영성체를 하며 예쁜 신앙을 잘 가꿔왔습니다. 그러다가 중학교 입학하고 새로 부임하신 보좌신부님과 면담하던 중에 신부님께서 ‘주일학교를 꼭 참석해야 한다, 미사만으로는 부족하다’ 하시며 주일학교를 나오기 싫은 이유에 대해 강하게 물으셔서 아이가 울음을 터뜨렸고, 잘 수습이 안 된 채 면담이 끝난 일이 있었습니다. 그때부터 딸아이는 냉담하기 시작했고, 현재 대학교 3학년이 되었습니다. 사춘기 때의 그 일이 자신에겐 상처가 되었는지 신앙에 대해 줄곧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고, 최근에도 신부님들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을 갖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교회 공동체 안에서 상처를 입은 사람들은 말합니다. “어떻게 교회에서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지? 나는 교회에 실망했어, 하느님께도 마찬가지야” 하고 말입니다. 특별히 청소년기에는 내용의 전달자(messenger)와 내용(message)을 동일시하는 경향이 크기 때문에 사제나 수도자, 교리교사와 관계가 틀어지면, 그분들이 이야기하는 하느님까지도 부정적으로 여기는 모습을 보입니다. 성숙한 어른들의 경우에도 같은 이유로 교회 공동체에서 상처를 받게 되었을 때 하느님과의 관계를 단절해 버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혼동하지 않아야 하는 것은 교회를 대표하는 사람들인 사제나 수도자들은 하느님과 같은 분이 아니시며,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부족한 사람이고 죄를 가진 인간이지 절대 하느님의 자리를 대신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는 두 가지 면이 있습니다. 하나는 하느님의 거룩한 면입니다. 교회의 거룩한 면은 사람들이 하느님의 손과 발로서 많은 선을 행하도록 이끕니다. 또 다른 면은 부족하고 죄스럽고 추한 면입니다. 아시다시피 교회도 사회입니다. 따라서 아쉽게도 교회는 세상의 원리에 영향을 받기도 합니다. 그래서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이 교회를 ‘거룩한 창녀’라고 하신 것도 그런 의미에서입니다. 교회는 거룩한 성인(聖人)들의 모임이 아니기에, 그 안에 모인 사람들은 서로 상처를 주기도 하고 받기도 합니다. 심지어 사도들조차 예수님을 부인하고 도망치며 예수님께 상처를 드렸던 것을 기억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와 같은 교회의 부족한 면이 우리가 교회를 그리고 하느님 품을 떠날 이유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흔히 교회를 일컬어 제2의 가정(second home)이라 부르는데, 우리가 때때로 가족들에게 실망하거나 상처를 받기도 하지만, 그것이 집을 떠나 광야에서 살아가야 하는 이유가 될 수 없듯이 교회에서 상처를 받았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상처가 하느님의 품을 떠날 이유가 될 수는 없지요.

인간은 모두가 영적인 갈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갈망은 우리를 하느님께로 가까이 나아가도록 이끌어 주는 중요한 힘입니다. 그런데 교회 공동체 안에서 상처를 입게 되면 영적인 갈망이 좌절되고, 영적 세계로 나아가는 통로가 막히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삶의 성숙과 행복으로 나아가는 데에도 장애가 되지요. 그렇기 때문에 상처로 인해 어두움 속에서 아픔을 겪는 사람은 상처를 준 사람 혹은 공동체가 아니라 자신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쉽지 않겠지만 자신에게 상처를 준 사람과 하느님을 분리해서 바라보려고 애쓰고, 다시 영적인 갈망을 회복하려는 시도를 시작해야 이 어두움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상처를 치유해야 그 다음을 볼 수 있습니다. 상처의 치유는 ‘내가 그 일로 인해, 그 사람으로 인해 마음이 다쳤구나’라는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그리고 이어서 내가 받은 상처가 무엇이었는지 직면하고 표현해야 합니다. 이때 가까이에서 깊이 공감해주고 경청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상처받은 마음을 해소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이 과정에서 충분히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고 묻어두었던 상처를 잘 꺼낸다면 자신과 상처받은 상황, 상대방을 돌아볼 수 있는 여유가 생겨날 것입니다. 그때 다시 객관적으로 상황을 되짚어 보십시오. 이 과정에서 지나치게 상대의 탓을 하거나 자책하지 않도록 애쓰며 제3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다 보면 이해와 수용의 여지가 생길 것입니다. 그 순간부터 비로소 나를 행복하게 하는 선택을 하고 변화를 시작할 수 있지요.

특별히 사춘기 자녀가 교회 공동체 안에서 상처를 입었을 때, 그리고 시간이 훌쩍 지나 화해의 대상이 뚜렷하지 않게 되었을 때 부모님께서는 다시 상처를 잘 꺼내고 직면하도록 도와주어 하느님과의 통로를 열어주어야 합니다. 그 일을 잘 다루는 것을 통해 자유로워지는 것은 나 자신이지 상대방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지시켜주고 객관적으로 다루어주십시오. “너보다 어른이고 사제이지만, 한 인간으로서는 미성숙한 부분이 있을 수 있다. 하느님께서는 너와 그 신부님을 항상 기다리고 계신다”하고 더 크고 넓은 시선을 열 수 있도록 말입니다.

상처를 받았던 순간의 억울함, 서운함, 실망감을 부모님께 충분히 풀어내고 나면 어느덧 어른이 된 자녀 또한 서투르고 젊었던 한 사제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 과정이 자녀에게도 자신과 그리고 상처를 준 상대와 화해하는 법을 배우고 성숙으로 나아갈 기회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제 경험상 사제에게 받은 상처는 좋은 사제를 만나 회복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교회에서 상처를 입은 분들이 잘 화해하고 돌아와 하느님의 품 안에서 평화를 찾길 기도하겠습니다.


※자녀, 손자녀들의 신앙 이어주기에 어려움을 겪는 부모, 조부모들은 이메일로 사연을 보내주시면, 지면을 통해서 답하겠습니다.
이메일 : hatsal94@hanmail.net


조재연 신부(햇살사목센터 소장)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21-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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