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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나나와 아이들 웃음이 치료비… “도움 주고 더 큰 행복 얻어”

필리핀 요셉의원 원장 장경근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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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경근 신부가 필리핀 아이들과 함께 셀카를 찍고 있다.



새로운 세계에 발을 내딛는 일, 새로운 세계를 향해 문을 연다는 것은 용기가 필요하다. 어렵사리 문을 열어도 관심과 사랑, 지속적 후원이 없다면 이어갈 수 없다. 2013년 필리핀 마닐라 말라본시에 개원한 무료 진료소 요셉의원 분원 이야기다.

말라본은 1인당 국내총생산 세계 131위인 필리핀에서도 가장 가난하고 열악한 지역이다. 이곳을 비롯해 칼로오칸ㆍ나보타스 등 칼로오칸교구가 담당하는 3개 도시는 필리핀 최대의 빈민촌이다.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이곳 주민들을 향해 필리핀 요셉의원이 희망의 문을 활짝 연 것이다. 지난달 귀국한 필리핀 요셉의원 원장 장경근(서울대교구) 신부를 가톨릭평화신문 창간 34주년을 맞아 만났다.



벌써 그리운 필리핀 아이들의 미소

장 신부는 2015년부터 약 7년간 필리핀 요셉의원 원장으로 사목했다. 할 일이 참 많았다. 매일 환자 60명을 돌봤고, 영양실조 아동 260명에게 밥을 제공했다. 형편이 어렵지만 장래가 촉망되는 학생 40명에게 장학금도 줬다. 한국에서 의료봉사자들이 오면 기쁘게 반겨줬고, 이들과 함께 빈민촌 구석구석에 숨은 환자를 찾아다녔다. 필리핀에서의 쉴 새 없는 삶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온 지 이제 막 일주일. 장 신부는 벌써 가난하지만 순박한 필리핀 사람들이 그립다고 했다.

“요셉의원에 처음 왔을 때는 아파서 죽으려고 하던 환자들이 치료가 끝나면 해맑게 웃으며 바나나 같은 걸 사들고 와요. 사실 필리핀 현지인들에게 바나나는 절대 싸지 않거든요. 최대한 성의 표시한 거죠. 밝아진 환자들 모습을 보면 참 기쁘고 보람이 많이 느껴지죠.”

요셉의원을 찾는 환자 가운데는 한국에선 쉽게 치료할 수 있는 병으로 오랜 시간 고통받은 이들이 많았다. 어떤 사람은 2년 동안이나 요로결석을 앓았다. 장 수술할 돈 200만 원이 없어서 9살까지 장루 주머니를 달고 살던 ‘요한’이라는 소년도 있었다. 요셉의원을 통해 무사히 수술을 받은 아이는 잘 자라 올해 중학교에 입학했다. 최근 요한의 어머니는 장 신부에게 감사 인사와 함께 의젓해진 아들 사진을 보냈다. 장 신부는 건강해 보이는 요한의 모습을 보고 가슴에서 뜨거운 무엇이 솟구치는 것을 느꼈다.

“제가 애들을 엄청나게 좋아하거든요. 그래서 아이들 기억이 더 많이 나죠. 필리핀 아이들은 거리낌이 없어요. 저를 보면 “파더 장!”이라고 하면서 막 안겨요. 좋아하는 친구를 만난 것처럼요.”

아이들을 통해 배운 점도 많았다. 한 10대 소녀가 어깨에 생긴 암이 전이되는 바람에 왼팔 전체를 잘라내는 일이 있었다. 수술을 마친 그 소녀가 감사 표시를 하러 온다는 소식에 장 신부는 도리어 마음이 착잡해졌다. 어린 나이에 팔을 잃고 우울해 할 아이의 모습을 볼 자신이 도무지 없었다. 그런데 웬걸, 장 신부를 본 소녀는 아주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신부님, 정말 감사합니다. 그런데 혹시 저 태블릿 PC 사주실 수 있나요? 엄마가 집에서 재봉틀로 만든 아기 옷을 온라인에서 팔고 싶어요!” 그날 아이에게 태블릿 PC를 사주는 대신 장 신부는 ‘희망’이라는 아주 값진 보답을 받았다.



필리핀 요셉의원의 원동력은 사랑

희생정신과 사명감으로 무장한 장 신부에게도 힘든 순간이 있었다. 초반에는 언어가 안 통해 힘들었다. 그래도 매일 열심히 영어로 된 타갈로그어(필리핀어) 교재로 공부해 1년 만에 강론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했다. 치료 적기를 놓치거나 꾸준히 치료를 받지 못한 아이가 세상을 떠날 때 가슴이 찢어지도록 아팠다. 코로나19로 요셉의원과 성당 문을 닫고 아무도 만나지 못할 때는 유일한 한국인이라는 사실이 새삼 와 닿았다. 한국에 대한 향수가 커졌다. 아무리 열심히 도와도 가난한 사람이 줄지 않아 힘이 빠질 때도 있었다. 마치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같았다. 기도하던 중에 장 신부는 문득 깨달았다. “늘 독을 꽉 채워야 하는 것은 아니다. 밑 빠진 독에 계속 물을 부어서 적시면 되는 것 아닌가!” 그 이후 놀랍게도 계속 부을 물이 생겼다. 바로 한국 신자들이 보내주는 사랑이다.

필리핀 요셉의원은 오로지 기부금으로 운영된다. 요셉의원이 한 달 동안 무료 진료와 급식ㆍ장학금 지원 사업을 하는 데 드는 비용은 1500만 원. 이 돈을 마련하기 위해 장 신부는 매년 본당 네다섯 곳씩 돌며 모금을 했다. 그때마다 모인 액수를 보며 크나큰 사랑을 실감했다. 1000만 원 이상 거금을 쾌척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그래서 장 신부는 많이 받은 만큼 더 베풀기로 했다. 그러던 중 코로나19 팬데믹이 터졌다. 장 신부는 (재)바보의나눔과 한마음한몸운동본부의 도움을 받아 식료품 지원과 집 짓기 사업을 시작했다.

“필리핀에선 코로나19 때문에 도시봉쇄를 해서 많은 사람이 일자리를 잃었어요. 그래서 매달 쌀과 라면ㆍ통조림 등 1000페소(약 2만 5000원)어치 식료품을 사서 실직가정과 결손가정 81곳에 보내줬어요.”

집짓기 사업은 정말 쓰러지고 부서진 집을 다시 지어주는 일이다. 보통 아버지 없이 어머니 혼자나 할아버지ㆍ할머니가 애들을 돌보는 집이 많다. “직접 그런 집을 찾아 돌아다니다 발견하면 안에 들어가서 ‘집을 지어주겠다’고 말했죠. 그럼 다들 진짜냐고 깜짝 놀라요. 가끔은 싫다고, 안 믿는다고 거부하는 사람도 있어요. 다시 지어 줘놓고 뺏어갈까 봐 그런 거죠. 정말 열악한데 도움을 못 주니 참 안타까운 일이죠. 그럼에도 새집이 생겨 기뻐하는 사람들을 보며 힘을 얻었습니다.”

7년간 필리핀에서의 삶을 한 단어로 표현해 달라는 질문에 장 신부는 ‘행복’이라고 대답했다. 요셉의원에서의 경험은 그에게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는 것이 진정으로 기쁜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줬다. 장 신부는 그러면서 “한국에서 온 의료 봉사자들 표정만 봐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마지막 날에는 완전히 축제 분위기”라며 “말은 안 하지만 얼굴만 봐도 얼마나 행복해하는지 느껴진다”고 했다. 바로 그 ‘남을 돕는다’는 행복감을 얻기 위해 의료 봉사자들은 많은 돈을 써가면서까지 인술을 베풀러 오는 것이다. 이처럼 장 신부와 한국 신자들의 사랑이야말로 필리핀 요셉의원의 ‘원동력’이었다.

이학주 기자 goldenmouth@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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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2-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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