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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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청에서 만난 유흥식 추기경/ 교황청 성직자부를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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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온조르노 돈 라자로!(Buongiorno Don Lazzaro! 좋은 아침이에요, 라자로 신부님!)”

성직자부 장관 유흥식(라자로) 추기경이 성직자부에 들어서자 직원이 인사를 건넸다. 직원들은 유 추기경을 ‘돈 라자로’라 불렀다. 교황청에서 유 추기경은 ‘장관’, ‘대주교’, ‘추기경’ 등의 직함이나 경칭이 아니라 ‘돈 라자로’, 바로 ‘라자로 신부님’으로 통한다.

한국을 떠나 교황청에서 성직자부 장관으로 활동하고 있는 유 추기경. 유 추기경에게 로마에서의 생활을 묻자, 유 추기경은 이탈리아어 3문장, “잃어버릴 줄을 안다”(Sapere perdere), “매 순간을 산다”(Vivere l’arrimo presente), “십자가 위의 예수님을 사랑한다”(Amare Gesu’ Crocifiddo Abbandonato)를 말했다.

유 추기경은 성직자부에서 어떻게 생활하고 있을까. 성직자부에서 일하는 ‘돈 라자로’의 모습을 따라가 봤다.



■ 십자가 위 예수님 향한 사랑으로

유 추기경의 집무실에 성직자부 사무관 아우구스티노 신부가 서류철을 한 더미 가져왔다. 세계 각국에서 성직자부에 올라온 보고서들이다. 사무관과 밝게 인사하고 결재를 시작한 유 추기경이지만, 서류를 살피며 이내 표정이 무거워졌다.

성직자부는 선교지역을 제외한 세계 모든 나라의 사제, 부제, 신학생에 관한 교황청의 업무를 관할하는 부서다. 성직자 양성도 맡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세계에서 발생하는 성직자에 관한 모든 문제, 성직자 개인에서 본당·교구 재산에 이르기까지의 문제들이 성직자부에 보고된다. 유 추기경은 전 세계교회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문제를 가장 자세하게 마주하는 셈이다.

성직자부는 각 사건들을 면밀하게 파악하고 각 나라의 법과 교회법에 입각해 각 성직자에 관한 결정을 내리는데, 그 판단의 책임을 지는 것이 유 추기경이다. 유 추기경은 하루에 200~300건가량의 보고를 검토하고 결재하고 있다. 유 추기경의 서명이 담긴 문서는 바로 교황에게 전달, 교황의 서명으로 발효된다.

유 추기경은 “피해자들에게 마음이 아프고 죄송하고, 성직자들의 잘못된 행위에 대한 처벌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면서 “동시에 보고된 성직자가 사제직에 남아 있을 수 없는 경우에 저희가 판단을 내려야 하기 때문에 하느님의 자비와 정의가 균형을 이루도록 노력한다”고 말했다.

“제가 져야 할 십자가죠.”

유 추기경의 말이 무거웠다. 성직자부 장관으로 이곳에 오기까지 누구도 성직자부 장관이 하는 일이 무엇이라고 가르쳐준 일이 없다. 그저 ‘교황의 뜻을 받아 일하겠다’는 마음 하나로 로마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40년 넘는 사제생활도, 18년의 주교생활도 이 일에는 소용없었다. 완전히 새로운 환경에서 홀로 서야만 했기에 남몰래 눈물 흘린 적도 여러 번이다.

유 추기경은 “스스로 강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저 자신이 왜 이러는지 모르겠을 만큼 힘든 시기가 있었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제게 닥치는 모든 어려움, 십자가 고통 안에서 예수님의 모습을 보고 또 사랑하려고 노력했다”며 “1년을 이렇게 살아왔는데, 이제 또 더 많이 봉사하면서 살도록 노력하려 한다”고 말했다.



■ 잃어버릴 줄 아는 지혜로

오전 11시45분, 성직자부에는 교황청 다른 부서에서 볼 수 없는 광경이 펼쳐졌다. 바로 간식시간. 그날그날 직원들이 함께 먹을 수 있는 간식이 준비된다. 유 추기경과 직원들은 저마다 간식을 들고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꽃을 피웠다.

성직자부에는 장관인 유 추기경은 물론이고, 대주교, 몬시뇰, 신부, 수녀, 평신도 등 다양한 직분의 사람들이 모여 함께 일하고 있다. 한 사무실에 모든 직원이 모여 있지 않고, 혼자 방을 쓰거나 관련 있는 보직에 있는 사람 몇몇이 한 방을 쓰는 식이다. 식사도 각자 개별적으로 한다. 하지만 유 추기경이 펼쳐놓은 맛있는 간식은 모든 직원을 하나로 묶어줬다. 정확히는 유 추기경의 친교와 소통이 지닌 힘이었다.

간식시간 후에는 유 추기경의 짧은 브리핑이 이어졌다. 유 추기경은 이 시간을 통해 최근 세계교회의 동향이나 프란치스코 교황의 근황, 교황청과 성직자부의 주요 일정을 직접 공지하고 있다. 유 추기경은 뿐만 아니라 직원들의 생일, 서품 25주년, 각 직원들의 출신 국가에서 발생한 어려움 등을 이 시간에 공유하고 있다. 역시 다른 부서에는 없는, 성직자부 직원들이 간식시간 만큼이나 좋아하는 시간이다.

유 추기경은 “하느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제게는 가장 중요한 첫 번째”라면서 “그날그날 형제들을 통해서 말씀하시는 하느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려면 내가 그동안 해온 경험, 직책을 잃어버리지 않고서는 불가능했다”고 말했다.

유 추기경이 ‘돈 라자로’라 불리는 것도 그 때문이다. 유 추기경은 교황청을 거닐면서 보이는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먼저 인사하고 자신을 ‘돈 라자로’라 소개했다. 직책이나 신분의 높낮이 없이 그저 한 사람의 신부로서 그리고 한 사람의 형제로서 사람들을 만나고 친교를 나누고자 한 것이다. 그러다보니 교황청에서 ‘돈 라자로’를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다. 물론 후에 유 추기경이 ‘성직자부 장관’임을 알고 깜짝 놀란 사람들이 속출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 지금 이 순간을 살며

업무 중 별안간 손님이 찾아왔다. 이탈리아 한 교구의 주교들이었다. 교구에서 발생한 문제에 관해 상의하고 싶어 찾아온 것이었다. 유 추기경은 하던 일을 멈추고 주교들을 맞았다. 유 추기경은 주교들의 이야기를 끝까지 경청했다. 다소 경직된 표정으로 방문한 주교들이었지만, 나갈 때는 웃으며 유 추기경과 인사하고 떠났다.

성직자부에는 방문객이 많은 편이다. 교황청 관계자들도 오지만, 교구 주교들이 많이 온다. 사제단 중에, 혹은 재산상으로 문제가 없을 수 없다보니 성직자부 장관과 안면을 통하고 싶어 하는 것이다. 약속을 잡고 오는 경우도 있지만, 예정 없이 불쑥 방문하는 이들도 있다. 이에 유 추기경은 장관으로 부임하면서 성직자부의 모든 직원들에게 “성직자부에 들어온 모든 이들을 환대해 달라”고 부탁했다. 누구든지 어떤 괴로움이나 고통 때문에 오는 이들을 사랑으로 맞아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매일 업무 자체도 많은데 일일이 방문객의 이야기를 다 들으면 시간이 없지 않느냐고 묻자 유 추기경은 “제 업무가 굉장히 많이 늘어나죠”하고 말하면서도 “그렇지만 저한테는 끝까지 잘 들어드리는 게 중요하거든요”라며 미소로 답했다.

유 추기경은 “어제는 이미 지났고 내일은 아직 오지 않았다면, 오늘은 나에게 주어진 순간”이라며 “‘지금’ 정말 하느님을 사랑하려고, 이웃을 사랑하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주교들을 떠나보낸 유 추기경은 잠시 성직자부 경당에 머물러 기도했다. 눈을 감은 유 추기경의 모습에 시간이 멈춘 듯 고요함이 흘렀다. 유 추기경에게 지금 이 순간이란, 영원이신 하느님이 함께하시는 시간인 듯했다.






이탈리아 로마 이승훈 기자 joseph@catime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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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2-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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