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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깎아지른 몬테 발도 절벽에 세워진 마돈나 델라 코로나 성당

[차윤석 중세 전문가의 간 김에 순례] 5. 이탈리아 마돈나 델라 코로나 순례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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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테 발도 절벽의 마돈나 델라 코로나. 옛 수도자의 은수처에 1522년 몰타 기사단이 성당을 세우고 피에타상을 모시면서 순례가 시작됐다. 1624년 암반 위에 성당을 크게 증축한 뒤로 ‘델라 코로나’란 이름으로 불리게 됐다. 출처=Stanislav Judas/Shutterstock


험준한 몬테 발도 절벽 암반 위 성모 성지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에서 알프스 능선을 가로지르는 브레너 고개는 로마 제국 시대부터 알프스 이북과 이남을 연결하는 주요 교통로입니다. 이탈리아 최대 휴양지인 돌로미테와 가르다 호수로 가는 이탈리아 22번 고속도로와 이어져 휴가철이면 더욱 붐비지요. 22번 고속도로는 알프스 골짜기 사이를 흐르는 아디제강을 따라 쭉 뻗은 내리막길이라 독일 아우토반을 달리던 운전자에게는 늘 과속의 유혹이 도사리고 있곤 합니다.

트렌토를 지나 골짜기가 끝나갈 즈음, 저 멀리 깎아지른 절벽 바로 아래로 네오고딕 양식의 성당이 하나 눈에 들어옵니다. 이번에 소개할 순례지인 마돈나 델라 코로나 성당입니다. 몬테 발도 산자락 해발 774m 험준한 절벽의 암반 위에 있어서, 멀리서 보면 마치 공중에 매달린 것처럼 보입니다. 위치도 위치지만, 이곳에 성지가 조성된 이유도 신비롭습니다.
 
순례 성당 주제단. 깎아낸 절벽을 그대로 이용해 제단을 조성했다. 높이 70cm, 너비 56cm의 피에타상은 1432년 로베레토 귀족 가문의 루도비코 디 카스텔바르코가 기증한 것이다. 가시관과 5개 천사상은 순례로의 14처 청동상과 함께 베로나 건축가 라파엘로 보넨테의 작품이다.


로도스섬에서 천사가 옮긴 피에타상

전설에 따르면 로도스섬에 있던 피에타상이 기적처럼 절벽 암반 끝에서 발견됩니다. 사람들이 절벽의 바위틈에서 빛이 나서 밧줄을 타고 내려가 보니, 그곳에 피에타상이 있었고 천사의 합창 소리가 울려 퍼졌다고 합니다. 로도스섬을 정복하려는 오스만제국의 공세를 피해 천사가 몬테 발도로 옮긴 것이었죠. 그 뒤 이곳에 단출한 성모 소성당을 지었고, 절벽 바위틈의 좁은 길로 순례가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이런 전설은 미화되게 마련입니다만, 이야기의 얼개를 짤 역사적 소재가 없진 않습니다.

이곳에는 1000여 년 전 베로나의 산 제노 베네딕도회 수도원 수도자들의 은수처가 있었습니다. 베네딕도회는 관상 은둔 수도회가 아니므로 세상과 완벽히 단절된 채 사는 은수처라기보다, 처음에는 일상에서 벗어나 기도와 묵상하기 위한 곳이거나 피란처로 시작했을 겁니다. 실제로 베로나는 9~10세기 헝가리족의 침입, 12세기 초 규모 7의 대지진 등으로 혼란스러웠습니다. 지금은 이 지역이 이탈리아지만, 중세까지만 해도 프랑크 왕국과 바이에른 왕국의 땅이어서 귀족들은 도시의 이익을 두고 황제와 교황 편을 들며 갈등을 빚었고, 서로 전쟁까지 벌였습니다.

1434/1437년 몰타 기사단이 이곳 소성당을 인수하는데, 당시 ‘몬테 발도의 마돈나’라고 불리는 성모자 프레스코화가 있었습니다. 기사단은 십자군 전쟁 시기에 순례자들을 위해 예루살렘에서 설립된 기사수도회로, 병원을 갖추고 있어서 구호 기사단이라고도 불립니다. 기사단은 1490년부터 1521년 사이 이곳에 40평 규모의 성당을 새로 짓고 봉헌합니다. 이때 이 지역의 봉건 영주가 1432년에 기증한 피에타상을 모셨는데, 이 과정에서 로도스섬의 피에타상 전설이 탄생했을 테지요.
 
순례 성당과 ‘거룩한 계단’. 길이 30m, 너비 20m의 삼랑 형식의 네오고딕 양식 성당으로 발폴리첼라 계곡의 산탐브로지오 대리석으로 정면을 장식했다. 28개 대리석 계단은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기 전에 올라갔던 빌라도궁의 계단을 본떠 만들었다.

몰타 기사단이 이탈리아에 조성한 순례지

당시 몰타 기사단은 오스만제국에 의해 예루살렘 성지에서 쫓겨나 키프로스를 거쳐 로도스에 근거지를 둘 때였습니다. 로도스섬을 지키던 기사단장 피에르 도뷔송(1423~1503) 총장은 외교력과 상황 대처에 탁월한 인물이었습니다.

콘스탄티노폴리스를 무너뜨린 술레이만 2세가 1481년 사망하자, 셈 술탄과 바예지트 2세 술탄 사이에 왕위 계승 전쟁이 일어납니다. 싸움에 진 셈 술탄이 로도스섬으로 망명하는데, 총장은 셈 술탄을 인질로 삼아 오스만제국과 평화조약을 맺습니다. 한술 더 떠서 셈 술탄이 유럽에 원군을 요청하는 일을 막아주는 대가로 바예지트 2세에게 매년 4만 5000두카트를 받습니다. 1489년에는 인노첸시오 8세 교황에게 술탄을 인도하면서 이탈리아의 영지를 받았고 이후로 기사단의 총장은 추기경급으로 대우받습니다. 이런 복잡한 정세 속에 도뷔송 총장은 알프스 중심 교역로에 기사단이 관리하는 예루살렘 같은 순례지가 생기길 원하지 않았을까 합니다.

실제로 이때부터 피에타상을 찾는 베로나교구와 비첸차교구 순례자가 늘어납니다. 순례자가 늘면서 돌계단도 더 만듭니다. 기사단은 1624년 다시 성당을 증축하는데, 이때 반원형의 터 모습 때문에 ‘암반(corona)의 성모’란 이름도 생깁니다.
 
마돈나 델라 코로나의 안내도. 순례 성당, 10세기 초 수도자의 은수 동굴, 피에타상이 발견된 장소, 옛 순례자의 길, 티글리오 다리 등의 위치와 몰타 기사단의 순례 성지 조성과 베로나 주교 방문 등 순례지의 역사를 한눈에 보여준다. 필자 제공


예수님의 고난을 체험하는 순례길

오랫동안 마돈나 델라 코로나는 순례하기에 쉽지 않은 곳이었습니다. 1530년 베로나 주교는 나무 윈치를 이용해 절벽을 내려갔습니다. 순례자 대부분은 절벽 아랫마을에서 숲을 지나 절벽을 깎아 만든 1600여 개의 돌길을 지그재그로 올라야 했습니다. 1922년 피에타상 발현 400주년을 기념해 절벽 위 마을에서 내려가는 편안한 순례로가 생기면서 순례자는 더욱 늘었고, 순례자의 집까지 생겼습니다. 1988년에는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순례하셨습니다.

새 순례로는 스피아치 마을에서 시작됩니다. 인체 크기로 만든 청동상으로 조성된 14처를 따라 예수님의 고난의 길에 동참하다 보면 어느새 순례지에 다다릅니다. 어둠 속 동굴을 지나면 계단 위로 피에타상이 모셔진 순례 성당이 보입니다. 절벽에 지은 성당인데도 공간감이 매우 큽니다. 1975~1978년 지금 서쪽과 주제단 쪽 절벽을 더 파서 들어가 성당을 증축했기에 그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주제단 위 피에타상과 주위의 천사들이 이곳의 기원을 알려줍니다.

성당 마당에 나와 세상 아래를 내려다봅니다. 저 멀리 우리가 바삐 달리던 고속도로가 보입니다. 잠깐이라도 잘 들렀다고 느끼는 순간 우리는 관광객에서 순례자로 바뀝니다. 생활 속 순례는 바로 이런 ‘돌아서 감[回]’에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순례 팁>

※ 베로나에서 가르다호 동쪽 기슭 스피아치 마을까지 46㎞로 차로 50분 소요. 스피아치 주차장에서 순례지까지 순례로는 도보로 20분 또는 셔틀버스 이용

※ 절벽 아래 브렌티 벨루노 마을에서 ‘순례자의 길’ 을 표지판을 따라 올라가는 2.5㎞ 옛 순례로(2시간 소요). 지구력과 음료가 필수지만, 곳곳에 멋진 파노라마 경치가 기다린다.

※ 순례성당 아래 고해성사 소성당이 있다. 순례자 미사는 주일과 대축일 10:30·15:30(11~4월), 8:30·9:30·10:30·12:00·15:30·16:30·18:00(5~10월). 평일 10:30(월·화·수), 15:30(목·금), 10:30(토)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24-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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