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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속의 복음] 대림 제2주일, 인권 주일-주님의 길은 낮아지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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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승구 신부



차별을 당연하게 여기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사농공상이 있었고 양반과 상놈이 있었습니다. 신분의 차이가 분명했습니다. 평민은 귀족과 달라야 했고 노예는 인간의 축에 끼지도 못하고 팔려 다니는 신세였습니다. 불과 백여 년 전만 하더라도 여성의 참정권을 인정하지 않는 곳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지금은 이런 차별을 두고 전근대적이고 봉건적이라 비웃습니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며 인권은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고유한 권리임을 공식적으로 거부하는 나라는 지금 이 세상 어느 곳에도 없습니다.

이사야 예언자는 오랜 유배 기간을 보냈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당신의 백성을 위로하며 희망의 노래를 전하고 있습니다. 이제 막힌 길은, 가두었던 벽은, 가려졌던 주님의 영광은, 뚫리고, 열리고, 드러날 것입니다. 이 예언은 단순한 선언이 아니었습니다. 타향살이 유배에 시달렸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마침내 고향 땅으로 향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을 둘러쌓던 억압에서 해방될 수 있었습니다. 더 이상 지배자의 결심과 한 마디의 명령으로 가족들과 가문이 몰살당할 것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실질적인 해방입니다.

우리 시대의 해방도 쉽게 얻은 것이 아닙니다. 모든 인간은 하나같이 소중하다는 귀한 신념을 인류 공통의 가치로 품어 안기까지는 수많은 사람의 열과 성, 투쟁과 희생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얻은 것이 ‘모두는 소중하다, 한 인간은 온 지구를 품고 있다’는 선언이었습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 소중한 가치는 여기저기 할퀸 자국으로 상처 입고 있습니다. 교황님께서 우려하신 것처럼 나이 든 노숙자가 길에서 얼어 죽은 것은 기사화되지 않으면서 주가지수가 조금만 내려가도 기사화될 만큼 인간의 가치는 끝도 없는 나락으로 떨어졌습니다. 이를 비판하면서도 우리 안에서조차 차별은 존재합니다. 성공한 사람과 실패한 사람을 보는 눈이 다릅니다. 부자와 가난한 사람을 보는 눈,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보는 눈, 배운 것이 많은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을 보는 눈은 분명 다릅니다. 우리 안에 차별은 그렇게 존재합니다. 그런 차별이 없다면 흙수저와 금수저 같은 이야기도 없었을 것입니다. 조금만 눈을 돌려도 주변에서 이런 안타까운 일들을 한없이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 안타까운 일 때문에 하느님께서는 당신 아드님을 세상에 보내셨으며 이것이 우리에게는 기쁜 소식이 되었습니다. 주님의 길은 낮아지는 길이었습니다. 가장 작은 이들을 찾아가는 길이었습니다. 그분의 길을 곧게 내는 것은 우리도 역시 그분이 찾은 사람들을 만나는 것입니다. 그 모두를 귀하게 여기시어 먹이시고, 안으시고, 이끄시는 하느님의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의 대림에 차별과 혐오 없는 주님의 길을 마련한다면 임마누엘은 비로소 복음의 시작이 될 것입니다.



나승구 신부(서울대교구 금호1가동(선교)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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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0-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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