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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직현장에서] 천사가 된 아녜스

홍미라 수녀(루이차, 인보성체수도회 서울인보의집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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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미라 수녀



2000년 6월 17일 오전 10시경 저를 따랐던 한 아이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수화기로 너머로 흐느끼는 소리가 들리더니 “수녀님~~ 아녜스가……요” 하며 전화받은 아이의 언니가 말을 잇지 못하며 울기 시작했습니다.

18세의 아녜스는 야무지고 당찬 씩씩한 소녀였고, 숙녀였습니다. 고3 수능을 준비하다가 쓰러져 병원응급실에 갔는데, 직장암 말기라고 하였습니다. 가망이 없다는 말에 부모님은 아연실색(啞然失色)하시고, 지푸라기라도 잡는 마음으로 보따리를 싸서, 서울 아산병원으로 아녜스를 데리고 와서 수술을 받았습니다. 다행히 수술은 잘 되었고 항암치료를 시작했습니다.

항암치료를 받으러 오는 날이면, 저는 일정을 비워두었다가 아산병원으로 아녜스를 만나러 가곤 하였습니다. 2000년 4월 중순 아녜스를 마지막으로 만난 날입니다. 항암치료를 마친 아녜스가 병실에서 힘겹게 위액을 쏟아내고 있었습니다.

아녜스가 저를 향해 “수녀님~! 수녀님과 같이 하룻밤만 함께 자고 싶어요”라고 말을 건네왔습니다. 아녜스의 모친께서 옆에서 듣고 계시다가 “안돼! 수녀님은 바쁘시잖아. 그리고 그런 부탁은 하는 게 아니야”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아녜스에게 “아녜스가 건강해 지면 함께 여행 가서 같이 자자”라고 대답을 하였습니다.

결국, 그 약속은 지켜지 못했고, 휴가를 내어 아녜스를 떠나보낸 채석강에 가서 마지막 이별인사를 하고 왔습니다.

20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돌이켜서 생각해 보아도 후회스러운 일 중의 하나가 아녜스의 마지막 부탁을 들어주지 못했던 것입니다. 저는 매년 6월이 오면 세월이 지나도 여전히 소녀로 남아있는 아녜스를 떠올립니다. 그리고 아녜스가 떠나간 17일이 되면, 아녜스와 꽃 한번 피우지도 못하고 떠나간 어린 영혼들을 위해 미사를 드리고, 연도를 바칩니다.



홍미라 수녀(루치아, 인보성체수도회 ‘서울인보의집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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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1-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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