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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직현장에서] 용산역에서 만난 노숙인

홍미라(루치아, 인보성체수도회, 서울인보의집 원장)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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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미라 수녀



용산역입니다. 전주행 열차를 타기 위해 일찍 서둘렀더니 한 시간의 여유가 생겼습니다. 의자에 앉아 월간지를 보려는데 한 노숙인이 다가와 옆에 앉아 말을 건넸습니다. 주변을 순찰하던 청원경찰이 오더니 노숙인에게 “수녀님 괴롭히지 말고 저쪽으로 가세요”라고 말하였습니다. 제가 청원경찰에게 “이분은 저와 대화를 하고 싶어 계시는 것이니 괜찮습니다” 하였고, 청원경찰관은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제가 있는 곳을 계속 주시하고 계셨습니다.

대화가 시작되기 전, 그분께 50분 후에는 기차를 타야 한다며 차표를 보여드렸습니다. 그리고 이야기는 시작되었습니다.

1997년 IMF 전에 사업하셨고, 다복한 가정의 가장이었으며, 자신이 노숙인이 되었던 사연을 구구절절(句句節節) 들려주었습니다. 40분 정도의 시간이 흘렀고, 제 연락처를 그분께 드렸습니다. 제가 있는 전주 사랑의 집(노숙인시설)으로 오시라고요. 그분은 웃으시며, 기왕 노숙인 생활할 거면 서울이 좋다시더군요. 제게 시간을 내주어 고맙다며 안 주머니에서 500㎖ 사이다 페트병을 꺼내주며 감사 인사를 했습니다. 뚜껑을 열어주셨는데, 술 냄새가 가득했습니다. 역사 안에서는 술이 금지되어 있으니, 그렇게 위장을 해서 마셨나 봅니다. 저는 술을 마시지 못한다고 사양하고 차를 타러 가면서 시간 약속을 지켜 준 노숙인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렸습니다. 마지막까지 손을 흔들어 주시는 노숙인을 뒤로하고 차에 올랐습니다.

간혹 사람을 평가하고 판단할 때 대부분의 사람은 외적인 모습으로 판단합니다. 노숙인들과 지내기 전의 부끄러운 제 모습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가슴에 묻어두었던 아픈 상처를 누군가에게 고해성사(告解聖事)하듯 털어놓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용산역에서 만난 한 노숙인이 그랬던 것 같습니다.



홍미라 수녀(루치아, 인보성체수도회 서울인보의집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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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1-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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