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29일
사목/복음/말씀
전체기사 지난 연재 기사
[성녀 데레사의 가르침에 따른 영성생활] 42. 기도의 단계 ⑦ - 능력들의 수면 기도

영혼의 능력이 깊은 잠에 빠져 하느님과 일치

폰트 작게 폰트 크게 인쇄 공유

▲ 정원에 물을 주는 세 번째 방식에 비유되는 능력들의 수면 기도를 나타내는 색유리화.

 
정원에 물을 주는 세 번째 방식에 비유됨

지난 호에서 우리는 고요의 기도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이 고요의 기도가 더욱 깊어지면 영혼의 능력들(지성, 기억, 의지)을 비롯해 오감(五感)이 마치 잠을 자는 것처럼 거의 아무런 기능도 하지 않는 단계에 이르게 됩니다. 그래서 성녀는 이 단계를 영혼의 능력과 감각들이 잠을 자는 것 같은 상태에서 드리는 기도라 해서 ‘능력들의 수면(睡眠) 기도’라고 불렀습니다.

성녀가 「자서전」 11장에서 소개하는 정원에 물을 주는 4가지 방식에서 이 기도는 3번째 방식, 즉 정원에 고랑을 파서 먼 데서부터 강물을 끌어들이는 것에 비유됩니다. 이 기도 역시 4궁방에서 이루어집니다. 이 기도에서는 이전 단계인 고요의 기도에서보다 인간의 노력이 월등히 줄어드는 반면, 영혼 안에 스며드는 하느님의 은총은 더욱 더 많아집니다. 성녀에 따르면, 이 상태에 있는 영혼은 마치 술을 마셔서 취해 있거나 잠에 빠져 있는 사람 또는 미친 사람 같다고 합니다(「자서전」 16,1-4). 성녀는 영혼의 능력들과 감각들이 잠에 빠져 있는 정도에 따라 이 기도를 세 단계로 나눴습니다.



1단계: 영혼의 능력들이 선잠을 자는 상태

이 단계에서 의지는 하느님에게 매료돼서 즐거움을 누리며 상당히 큰 고요를 맛보는 가운데 하느님과 하나가 됩니다. 반면, 다른 두 능력, 즉 지성과 기억은 현세적인 일들을 할 수 있도록 자유로운 상태에 놓여 있습니다(「자서전」 17,4). 고요의 기도보다 좀 더 발전된 이 단계는 고요의 기도와 비슷한 듯이 보이지만, 고요의 기도 때 영혼이 거의 움직이지 않은 채 복음서의 마리아처럼 거룩한 쉼을 향유하는 반면, 이 단계에서는 영혼이 마르타처럼 활동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성녀는 이 단계에 있는 영혼이 동시에 마리아와 마르타처럼 관상과 활동을 영위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또한 영혼은 아주 흐뭇한 기쁨을 맛보며, 더불어 가장 깊은 고요를 체험하기 위한 준비를 하게 됩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주시는 천상 선물의 맛으로 흡족해하기 때문에 이 지상의 온갖 보화에는 아무 만족도 느끼지 못합니다.



2단계: 영혼의 능력들이 잠에 빠진 상태

이 단계에서 영혼의 능력들은 이전보다 더 깊은 잠에 빠지게 됩니다. 따라서 비록 지성과 의지가 하느님과 하나 되어 있고 기억과 상상이 약간은 활동한다 할지라도 전체적으로 깊은 고요에 들어가 있습니다. 성녀 데레사는 이 기도에서 자기 영혼이 마치 수많은 부품으로 이루어져 있고 각각의 부품이 서로 통합되지 않은 채 따로따로 움직이는 기계처럼 느꼈다고 고백합니다(「자서전」 17,5). 이 단계에 있는 영혼은 이전 단계보다 훨씬 강하게 하느님과 일치의 관계로 들어가게 됩니다. 여기서 하느님은 인간의 의지를 차지하시고 지성도 점령하십니다.

성녀에 따르면, 이 상태에서 지성은 정상적으로 활동하지 않고 하느님을 즐기는 데에만 몰두해 있습니다. 지성은 너무도 훌륭한 많은 천상 것들을 보고 관상에 젖어 있어서 어디다 눈을 두어야 할지 모를 정도가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기억과 상상력은 자유롭게 활동을 합니다. 그래서 하느님과 깊이 일치해 있는 영혼을 방해하곤 합니다. 그러나 지성과 의지는 하느님에 대한 사랑에 사로잡혀 있어서 기억과 상상력의 방해에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자서전」 17,6). 또한 이 단계에 있는 영혼에게는 몰라볼 정도로 덕이 크게 자라납니다. 이 단계의 특징은 영혼이 하느님의 영광에 젖어 깊은 쉼을 누리며 기쁨과 즐거움을 만끽한다는 점입니다(「자서전」 17,7).



3단계: 영혼의 능력들이 깊은 잠에 빠진 상태

이 기도 단계에 들어선 영혼의 능력들은 완전히 깊은 잠에 빠져서 그 기능을 전혀 수행하지 못합니다. 영혼의 능력들이 깊은 잠에 빠져드는 것은 무엇보다 영혼이 하느님 그리고 하느님께서 베푸시는 영적인 선으로 깊이 빨려 들어가 꼼짝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 상태에서 영혼의 모든 능력들은 거의 온전히 하느님과 일치해 있게 됩니다. 지성은 하느님을 생각하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의지와 기억 또한 그렇습니다. 그래서 영혼은 원하는 대로 자신을 움직일 수 없습니다(「자서전」 16,3). 그래서 자신이 누리고 있는 엄청난 천상의 감미로움 속에서 하느님을 찬미하고 감사드리고자 많은 말을 하지만 그 말에는 조리가 없고 마치 술에 취한 사람이나 미친 사람처럼 횡설수설하게 됩니다. 영혼이 무아지경에서 지극히 유쾌한 신적 열광에 사로잡혀서 그 능력들이 원하는 대로 작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때 영혼은 자신이 누리는 이 크나큰 행복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싶다는 큰 소망에 불탑니다.

그래서 성녀는 이 상태에 있는 영혼을 자신의 기쁨을 이웃 사람들과 나누고자 했던 요한복음 4장에 나오는 사마리아 여인, 그리고 열정에 불타 거문고를 타며 하느님을 찬미하던 구약의 다윗 성왕에 비유했습니다(상동). 이런 영혼은 주위 모든 사람들이 자신과 마찬가지로 하느님 사랑에 미친 자가 되기를 간절히 열망하게 됩니다.

이 단계에서 드러나는 또 다른 특징으로 극심한 고통을 들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영혼에게 허락하시는 천상 기쁨이 큰 만큼 그것을 육체적 한계와 더불어 받아들여야 하는 고통 또한 커서 마치 온몸과 영혼이 산산조각 나버리는 것 같다고 합니다(「자서전」 16,1).
 
 

▲ 윤주현 신부(대구가르멜수도원장, 대전가톨릭대 교수)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15-01-16

관련뉴스

말씀사탕2024. 3. 29

시편 48장 2절
우리 하느님의 도성, 당신의 거룩한 산에서, 주님은 위대하시고 드높이 찬양받으실 분이시로다.
  • QUICK MENU

  • 성경
  • 기도문
  • 소리주보

  • 카톨릭성가
  • 카톨릭대사전
  • 성무일도

  • 성경쓰기
  • 7성사
  • 가톨릭성인


GoodNews Copyright ⓒ 1998
천주교 서울대교구 · 가톨릭굿뉴스.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