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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진 신부의 세상살이 신앙살이] (219) 저는 농부입니다

당당하게 즐기는 ‘자랑스러운 삶’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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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동창 신부님이 연출한 공연을 보러 간 적이 있습니다. 공연 보면서 좋은 연극을 연출한 동창 신부님이 무척 자랑스러웠습니다. 공연이 끝난 후 배우들과 시간을 가질 기회가 있었습니다. 여럿이 몇 테이블에 나누어 앉아 대화를 나누는데, 내 앞에는 무대에서는 본 적이 없는 잘생긴 청년이 여자 친구와 앉았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무대 뒤에서 조명을 책임 맡던 분이라, 무대 위에서는 볼 수 없었던 것입니다. 연극은 무대 위 배우들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배우들 뒤에서 말없이 함께 작업하는 분들이 많이 있는데…. 아, 무식한 강.석.진! 암튼 대화중에 그 청년은 내게 말했습니다.

“신부님, 저는 원래 직업은 농부예요. 남양주에서 하루 종일 농사를 짓고, 이렇게 저녁이 되면 공연장 와서 내가 하고 싶은 연극 공연 조명 스텝으로 활동하고 있어요!”

내 귀를 의심하였습니다. 정말 키도 크고, 잘생긴 외모를 가진 청년이 너무도 당당하게 자신을 ‘농부’라고 말하다니! 또한 옆에 있는 여자 친구도 다소곳하면서, 순수하고, 맑은 분 같았습니다. 그래서 ‘농부’라는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벌떡 일어나 고개를 숙이며,

“자랑스럽습니다. 자신을 당당하게 ‘농부’라 고백하는 당신이 무척 자랑스럽습니다.”

이 말을 듣자 그 청년은,

“에이, 농부가 뭐 그리 자랑스러울까요?”

“아닙니다. 저는 당신이 하는 일이 자랑스럽고, 자신을 당당히 ‘농부’라 말하는 모습이 자랑스럽습니다. 사실 내가 사는 근처에 고등학교가 있는데, 대문 위 큰 현수막에 ‘자랑스러운 동문 특강’이라는 문구와 함께, 그 학교 출신 잘 나가는 선배들을 데리고 특강을 시키는 것 같더군요. 그런 시간을 통해 학교 학생들에게 그 선배처럼 ‘자랑스러운 사람’이 되도록, 꿈을 심어주는 프로그램 같았습니다. 거기 나오는 동문은 당연히 사회적으로 유명 인사들을 초빙하겠지요. 하지만 외적 기준만이 ‘자랑스러움’의 전부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지금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가치 있게 여기고, 드러나지 않으면서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해 나가는 분들, 바로 그 분들이야말로 진정 ‘자랑스러운 분’이 아닐까요? 그리고 자신을 농부라고 자신 있게 말하는 당신, 진정 자랑스럽습니다.”

연출을 하는 나의 동창, 힘든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연기하는 배우들, 조명을 맡던 농부, 그 밖의 모든 분들, 각자가 가진 소명에 따라 자기가 맡은 위치에서 자신의 일을 즐기며 살아가는 그 분들 모두가 자랑스러웠습니다. 우리 삶 주변에서, 묵묵히 농사를 짓고, 고기를 잡고, 목축업을 하며, 무언가를 키우고 돌보는 그분들 모두, 타인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일상의 삶을 충실하게 살아가는 그 분들, 정말 ‘자랑스러운 삶’을 사는 분입니다.

그러면서 문득, 사람에 대한 배려의 마음 없이 ‘내로라하는 직위’와 ‘그럴싸한 직책’을 갖기 위해 앞만 보고 달려온 사람이라면 자신의 모교에서 학생들에게 ‘꿈을 갖게 하는 특강’ 내용, 왠지 대충 감이 잡힐 것 같았습니다. 한마디로, ‘출세의 길은 영광의 길’, 바로 그 공식을 주입하겠지요! 하지만, 아닙니다. 정말 ‘자랑스러운 삶’은 바로 자신이 지금 발 딛고 있는 현실을 당당하게 즐기며 사는 삶, 바로 당신이 그 누구보다 자랑스러운 분입니다.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13-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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