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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현규 수녀의 사랑의 발걸음] 29. 하느님은 사랑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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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가까이 생드니 오베흐빌리에 라호즈레병원 입원 환자들을 만나며 겪은 일화다. 이번 이야기는 내가 펴낸 「그대들을 사랑합니다」에도 수록돼 있다.

어느 날 함께 사는 수녀님이 “마리스텔라 수녀에게 보내는 메시지가 와 있다”고 전해 주어 전화실로 가니 메시지의 내용은 병원 응급실에서 치료를 받던 루도비코가 임종했다는 소식이었다. 미리 예감은 했으나 슬펐다.

급한 걸음으로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영안실로 갔다. 전깃불은 켜져 있지만 이곳은 항상 어두컴컴하다. 영안실 여직원에게 루도비코의 임종 소식을 전해주어 고맙다고 하니, 가족이 없는 그가 영안실에 안치되어 있는 며칠간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다고 한다. 어떠한 연고자도 없어 소지품을 확인해보니 내가 그에게 주었던 ‘성모님 상본’ 뒤에 ‘베르사유, 마리스텔라 수녀’라고 적혀 있기에 연락을 했다고 한다.

병실에 입원해 있는 루도비코를 방문할 때에 누구도 찾아오는 것을 보지 못하였다. 직원에게 그의 시신을 보게 해 달라고 청하니 흔쾌히 승낙하였다. 루도비코의 몸은 흰색 천으로 온통 둘러싸여 있었다. 이 청년의 주검 앞에 내 마음은 오직 깊은 침묵뿐이었다. 여직원과 나는 그 앞에서 함께 기도하였다. 한국식으로 말한다면 상주가 된 느낌으로.

루도비코를 처음 보았을 때가 2011년 11월 5일이었다. 나이는 33세이며 어렸을 때 부모님을 여의고 할머니가 자신을 키웠다고 한다. 노래를 잘해서 어린이 합창단 단원이었다고 한다. 자신을 키워준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시고 17세에 홀로 되어 살아가면서 은행에서 근무하기도 했단다. 부모님들이 모두 큰 병으로 세상을 떠났고, 그 또한 약한 몸을 물려받아서인지 힘겹게 살아왔다는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렇게 살아오던 중 결국 방에서 쓰러져 응급실로 실려 와 머리 수술도 했다고 한다. 나를 처음 보자마자 가슴으로부터 나오는 울음을 터뜨렸던 루도비코….

내가 성모님 상본에 마음을 적어 묵주와 함께 건넸더니, 붕대를 감은 오른손에 묵주를 어설프게 감았다. 머리 수술로 인해 말을 제대로 할 수 없으면서도 환한 미소를 보이며 그렇게 좋아할 수가 없었다. 어렸을 때, 신자였던 할머니 품에서 자라면서 신앙생활을 해왔음이 보였다. 나와 얘기를 나누는 중 일찍 세상을 떠난 부모님들에 대한 그의 사랑이 지극함을 알 수 있었다. 홀로 힘겨웠던 삶이 이젠 완치될 수 없는 병마로 이 젊은 청년을 내리누르고 있었다.

며칠 후 7층에 위치한 그의 병실로 들어가니 루도비코가 없었다. 간호사에게 물었더니 중환자실로 옮겼다고 한다. 간호사에게 이 환자에게는 누구도 찾아오는 이가 없었고, 내가 이미 몇 번 방문했었다고 하면서 잠깐이라도 보게 해달라고 애원하다시피 청했다. 간호사의 안내를 받으며 그가 누워있는 병실로 들어갔더니 아니나 다를까 코에는 산소호흡기가 꽂혀 있었고 머리와 얼굴까지 온통 흰 붕대로 감겨 있었다. 혼수상태로 보였다. 병원 가까이 있는 성당의 신부님이 오셔서 루도비코에게 병자성사를 주셨다. 하느님의 위로와 자비 안에서 루도비코는 젊은 나이로 이 세상을 떠났다.

영안실 여직원이 내가 루도비코에게 준 묵주와 성모님 상본을 그의 가슴 위에 놓고 관 뚜껑을 덮겠다고 하였다. 직원과 함께 어두컴컴한 영안실에서 그의 영원한 안식을 위해 하느님께 기도하였다. 어떠한 절차와 형식도 없는 몹시 가난한 장례식이었다. 그러나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루도비코에게 생애 마지막 순간, 자비로우신 사랑을 가득히 주셨다.

프랑스 성요한 사도 수녀회 장현규(마리스텔라)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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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0-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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