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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마른 땅 광야에서 만난 하느님

[미카엘의 순례일기] (9)4일간 머문 광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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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의 수요일을 지나, 사순절이 시작되었습니다. 40일간 주님의 수난과 죽음에 동참하고, 영광스러운 부활을 준비하는 시기 말이지요. 교회 안에서 ‘40’은 거룩하고 완전한 숫자 중 하나입니다. 40일간의 홍수, 광야에서의 40년, 십계명을 받기 전 40일, 다윗과 솔로몬의 통치기간 40년, 세례를 받고 광야에서 기도하셨던 주님의 40일, 그리고 주님께서 부활하신 뒤 승천하실 때까지의 40일….

이러한 의미를 기념하며 교회는 사순절을 제정했고, 초대 교회 때부터 신자들은 이 기간에 단식, 기도, 고독을 실천했습니다. 덕분에 매년 이맘때면 이스라엘에는 순례자들이 가득 모여듭니다. 베들레헴에서 예루살렘까지, 주님의 발걸음이 남은 곳에는 어김없이 그들의 기도가 쌓여갑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광야는 수많은 순례자에게 잊을 수 없는 장소로 꼽히곤 합니다.

사실 이스라엘은 영 볼거리가 없는 나라입니다. 점령 지역을 다 합쳐도 우리나라의 1/3밖에 되지 않는 데다가, 그조차도 절반 이상이 사막과 광야로 이루어져 경작이 불가능합니다. 나머지 절반도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금수강산에 비하면 초라할 따름이지요. 유럽처럼 아름답고 웅장한 성당들을 상상하거나, 갈릴래아 호수의 눈부신 절경을 기대한다면 크게 실망해 돌아갈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곳에는 없고 오직 이스라엘에만 있는 것, 그것을 단 하나만 꼽아야 한다면, 아마도 ‘광야’일 것입니다. 그런데 대체 이 ‘광야’란 무엇일까요?

성경 안에서 그토록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이 광야라는 장소는 동북아시아의 한반도에서 나고 자란 우리에게는 낯선 개념입니다. 흔히 사막과 혼동하기도 하는데, 둘은 전혀 다릅니다. 비록 사람이 살거나 농사를 지을 수는 없는 척박한 환경이지만 드물게 물이 흐르는 계곡도 있고, 날카롭게 조각난 돌밭 사이로 자라는 풀을 뜯어 먹는 양떼를 볼 수도 있지요. 한때 수백 개의 수도원이 그곳에 세워졌으며, 그중 일부는 아직도 남아있습니다.

이렇듯 광야는 결코 완전한 절망이 아닙니다. 오히려 작지만 소중한 희망에 가깝습니다. 성경 속의 ‘광야’도 실은 이와 같습니다. 구약 성경에서 광야는 씨를 뿌리지 못하는 메마른 땅으로 악귀와 맹수의 위험에 노출된 광활한 공간이자, 풍요의 상징인 에덴동산과 대조를 이루는 곳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를 떠돌고 나서야 하느님을 만날 수 있었고, 예수님께서도 공생활을 준비하기 위해 광야를 선택하셨습니다. 다시 말해 광야는 우리를 정화(준비)시켜, 하느님의 참사랑과 구원의 의지를 몸소 체험하게 만드는 장소라고 볼 수도 있는 것입니다.

한 번은 광야에서 4일을 지내고 싶다는 순례단의 요청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일정상 그곳에 오래 머무는 경우가 드문 일입니다. 아침 식사를 하고 저녁에 숙소로 돌아올 때까지 광야에서만 시간을 보내기로 했지요. 첫날 오전에는 들뜬 마음으로 산책하듯 사진도 찍고 담소도 나누었습니다. 하지만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끝없이 펼쳐지는 똑같은 풍경에 사진은 의미가 없어졌고, 입을 뗄 기력도 없어 조각난 돌들이 신발 밑창에 부딪히는 소리를 제외하고는 어떤 것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는 미사 시간조차 너무나 길게 느껴졌습니다. 그렇게 4일을 고행처럼 보내고, 늦은 밤 순례단이 호텔 구석에 모였습니다.

모두 입을 모아 피곤을 토로했습니다. 솔직히 숙소에서 쉬고 싶었는데 차마 말을 못했다는 분도 있었습니다. 핸드폰이 무거워 던질 뻔했다는 분도 계셨습니다.(광야를 걷다 보면 정말 육신을 제외한 모든 것이, 어쩌면 육신까지도 거추장스럽게 느껴지곤 하니 마냥 웃을 일만은 아닙니다) 그렇게 모두 육체와 정신의 피로를 호소하던 도중, 연세가 가장 많으셨던 자매님께서 말씀하신 한마디가 저의 기억에 오래 남았습니다.

“광야에서는 평생 제가 소중히 여겼던 이 세상의 어떤 것도 가치가 없었어요. 오직 하느님만이 저의 기댈 곳이었고, 희망이었지요. 그런 기분은 처음이었답니다.”

성경 속 광야에도, 이스라엘의 광야에도 분명 위험과 죽음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비단 광야에서만 그런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일상을 보내는 지금 여기, 세속의 온갖 유혹과 죽음의 공포를 맞닥뜨리며 살아가는 하루하루는 광야의 고행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광야에서 사는 이스라엘 백성이며, 그래서 쉼 없이 하느님을 찾아야 합니다. 죽음의 광야에서 살 것인지, 생명의 광야에서 살 것인지는 오직 우리 자신에게 달려있을 뿐입니다.



김원창(미카엘, 가톨릭 성지순례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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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1-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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