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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한국 쓰레기, 우리가 가서 치울까?

[미카엘의 순례일기] (28)고토 섬의 쓰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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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청소년 순례단이 일본 고토 섬을 방문해 쓰레기로 뒤덮인 해변을 청소하고 있다.



한반도보다 약 250여 년 빠르게 복음이 전파된 섬나라 일본은 우리보다 훨씬 더 많은 순교자와 더욱 끔찍한 박해의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일본 가톨릭교회는 지나온 역사의 시간이 긴 만큼, 동북 지역부터 남부의 작은 섬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곳에 순례지가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신부님을 비롯한 선교사 대부분이 가장 먼저 발을 디딘 곳, 끈질기고 오랜 박해 속에서도 신앙을 지켜내려던 이들이 몰래 숨어 살았던 곳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박해를 피해 숨어 살던 교우촌과 결국 잡혀 잔인하게 처형되었던 순교지 대부분이 나가사키(長崎) 지역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많은 신자가 신앙의 자유를 위해 고향을 등지고 바다를 건너 정착한 곳이 있습니다. 다섯 개의 커다란 섬과 140여 개의 작은 섬으로 이루어진 ‘고토(五島) 열도’라는 곳입니다. 나가사키 항에서 100㎞, 제주도에서는 180㎞ 정도 떨어져 있는 이 열도에는 나가사키 교구의 150여 개 성당 중 무려 50여 개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많은 신자가 모여 살던 곳이라는 반증입니다. 나가사키 항에서 고속 페리를 타고 2시간 정도가 걸리는 고토는 크게 상(上)고토와 하(下)고토로 나누어집니다.

섬 주민 중 천주교 신자가 아닌 집은 딱 한 집밖에 없었다고 전해지는 카시라가시마(頭ヶ島) 섬, 그곳에 있는 카시라가시마 천주당(頭ヶ島天主堂)은 바로 그 신자들이 지은 성당입니다.

길고 길었던 박해가 끝난 후, 신자들은 무엇보다도 먼저 성당을 건축하기로 했습니다. 그들은 값이 얼마 나가지도 않는 산과 땅을 모두 팔고 그것도 모자라 빚을 져가며 돈을 모았습니다. 그리고도 턱없이 부족했던 건축비를 보충하기 위해, 신자들은 직접 주변의 섬에서 하루에 두세 개씩 돌을 채석해 가져왔습니다. 일본에서는 보기 힘든 석조 성당이 탄생할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성당이 완공된 후 많은 신자가 첫 미사를 봉헌하고는 그 섬을 떠나야만 했습니다. 성당을 건축하기 위해 자신들의 집과 땅을 팔았기 때문입니다.

카시라가시마 성당뿐 아니라 고토에 있는 많은 성당은 이와 비슷한 사연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순교한 사람들과 살아남아 신앙을 지켜간 사람들에 대해 생각하며 무심코 근처 해변으로 향했는데, 뜻밖에도 그곳이 엄청난 쓰레기로 뒤덮여 있는 광경을 보게 되었습니다. 일본에 거주하며 순례단을 위해 일하시는 수녀님께서는 씁쓸한 목소리로, 그 쓰레기들의 90는 한국에서 버려진 것이라고 이야기해주셨습니다. 그러고 보니 쓰레기 대부분에 한글이 인쇄되어 있었습니다. 막걸리병부터 스티로폼, 노끈까지….

그렇게 수개월이 지난 후, 대전교구 신부님을 뵐 기회가 있었습니다. 카미고토에서 느꼈던 점에 관해 이야기를 꺼내자, 신부님께서는 갑자기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가서 치울까?”

한 번 치운다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겠지만, 일본의 성지를 순례하고 또 한국에서 흘러들어간 쓰레기를 치우는 것이 분명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신부님의 아이디어는 신자들의 공감을 얻어 곧바로 진행되었습니다. 중고등학생들과 함께 순례 겸 봉사를 떠나기로 한 것입니다.

나가사키 시내에 있는 주요 성지를 순례한 뒤, 페리를 타고 카미고토에 도착한 순례단은 뜻밖에 커다란 환영을 받았습니다. 순례단을 위한 환영 현수막이 걸려있었을 뿐 아니라, 많은 고토 지역 공무원들이 도열해 한국의 청소년 순례단을 맞이해주었습니다. 또한, 한국 청소년 순례단의 소식을 접한 고토시에서는 일정 내내 담당 공무원이 동행하도록 했으며, 몇몇 유수의 신문사에서도 취재를 위해 기자들을 파견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일찍부터 순례단은 해변으로 향했고 뜨거운 햇살 아래 파도에 밀려온 끝없는 쓰레기를 치우기 시작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지쳐가는 아이들을 보고 있던 공무원들과 신문사 기자들도 금세 손을 거들었습니다. 그렇게 한참 후 해변은 제 모습을 되찾았습니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땀에 젖은 아이들과 어른들은 캠핑장으로 이동한 뒤 미사를 봉헌했습니다. 모두 온통 땀에 젖은 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볼은 빨갛게 익어버렸고 온몸에는 작은 상처들이 가득했지만, 마음은 기쁨과 보람으로 넘쳐흘렀습니다. 우리 순례단의 모습을 지켜보고 계시던 연로한 일본 신자들의 마음도 아마 그렇지 않았을까요? 비록 말은 통하지 않지만 언어와 국적과 나이를 넘어서는 공통된 마음, 우리 신앙인들이 자주 되뇌는 짧은 찬미가를 함께 노래하고 있었을 것이라고.

“천주께 감사!”



김원창(미카엘, 가톨릭 성지순례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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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1-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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