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9월 23일
사목/복음/말씀
전체기사 지난 연재 기사
[조경자 수녀의 하느님의 자취 안에서] 3. 땅이 우는 소리에 귀 기울이며

노틀담 생태영성의 집 조경자(마리 가르멜, 노틀담수녀회) 수녀

폰트 작게 폰트 크게 인쇄 공유

오늘은 그 어느 바람 자락을 풀잎 자락 하나, 나뭇가지 하나 움직이지 않고 고요한 것이, 그들도 잠시 멈추어 깊은 숨을 고르고 있는 듯하다. 그러는 중에도 땅속 깊은 데서는 수없이 많은 미생물이 그들이 잘 서 있을 수 있도록 붙잡아 주고 있겠지 생각하니, 이 순환이 더욱 소중하게 다가온다.

우리는 해마다 이른 봄이 되면, 밥을 한 솥 해서 뒷산으로 간다. 마치 제삿밥을 챙기듯 맛나게 밥을 해서 예쁘게 양파망에 넣은 뒤, 부엽토 위에 올려 낙엽으로 잘 덮어준다. 일주일이나 열흘 뒤 가보면 양파망 한가득 하얀 꽃이 피어있다. 이 꽃들이 바로 우리 땅을 살리는 미생물, 곰팡이다. 이들을 잘 살려 우리 흙과 친해지도록 도와주면, 모든 생명은 건강하게 자기 몫을 살게 된다. 한 줌의 흙에는 수없이 많은 미생물이 살고 있다. 그러니 흙을 부를 때는 그 모든 생명을 함께 부르는 것이다.

이 미생물들이 흙에 잘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다. 땅에 농약을 뿌리지 않는 것이다. 농약이 뿌려진 땅에는 미생물들이 살 수 없다. 미생물이 없는 땅에서는 식물이 제대로 자랄 수가 없다. 그러니 농부들은 땅에 비료를 뿌린다. 비료는 곧 성장 촉진제와 같은 것이다. 본래 흡수할 수 있는 양보다 더 많이, 더 잘 흡수하여 보기 좋게 튼실한 작물을 얻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 작물이 딛고 있는 터전은 그 시스템 자체가 깨져서 딱딱하고 강퍅한 흙이 된다. 호미도 들어갈 수 없이 딱딱한 흙에 농사지으려니 농부들은 트랙터로 밭을 간다. 과거에 농부들이 소와 쟁기만으로 농사지을 때는 어떻게 그렇게 했을까 싶겠지만, 그만큼 흙이 포실하게 살아 있었으니 손이 덜 가도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미생물이 살아 있는 땅은 굳이 트랙터로 일구지 않아도, 저희끼리 숨 쉴 공간을 만들어 흙이 딱딱하지 않다. 미생물과 뿌리는 서로에게 필요한 것을 제공해주고 살게 한다. 정말 신기하지 않은가? 우리 눈에 보이지도 않는 미생물이 뿌리와 협업하여 땅을 살리고 다른 생명을 살린다는 것이…. 이 위대한 순환 안에서 하느님의 자취를 본다. 이 작은 생명도 당신의 생명과 코이노니아에 기꺼이 참여하고 있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자연이 기억하는 이 하느님의 자취를 인간은 너무 빨리 잊어버렸다. 농약이나 비료, 트랙터의 원리가 바로 그것을 증명한다. 마치 이런 느낌이 든다. 제대로 흙을 볼 수 있을 때, 그 안에 사는 무수히 많은 생명을 의식할 수 있을 때에야 우리는 엠마오의 제자들이 빵을 나눌 때에 비로소 예수님을 알아본 그 체험을 이 땅에서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당장 배부르고, 좋아 보이는 것을 선택해야 똑똑한 사람이라는 지금 우리의 사고 구조는 절대로 ‘생명에로 전환’한다는 구호들을 완수하지 못할 것을 우리는 알고 있지만, 우리는 적당히 모르는 척하는 모습이다.

‘생명에로 전환하는 길’은 ‘나만 사는 길’이 아니라 ‘다른 생명도 살게 하는 길’이다. 틱낫한 스님은 “우리 안에서 땅이 우는 소리를 들어야 우리 시대에 참된 치유가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생명의 순환관계에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이 순환에서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일단 멈추고 땅의 무수한 생명의 소리에 귀 기울여보자.

이른 봄, 뒷산으로 밥 한 솥 땅에 올리는 그 일이 오늘 제단에 올리는 빵으로 다가오는 것이 정말 새롭다. 그러고 보니 땅은 우주의 제단이요, 농부는 곧 이 땅의 사제이다. 이 일의 소중함을 많은 사람이 되찾기를 기도한다. 오늘도 땅이 우는 소리에 귀 기울이며….

노틀담 생태영성의 집 조경자(마리 가르멜, 노틀담수녀회) 수녀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21-07-20 등록

관련뉴스

말씀사탕2021. 9. 23

집회 2장 9절
주님을 경외하는 이들아 좋은 것들과 영원한 즐거움과 자비를 바라라.
  • QUICK MENU

  • 성경
  • 기도문
  • 소리주보

  • 카톨릭성가
  • 카톨릭대사전
  • 성무일도

  • 성경쓰기
  • 7성사
  • 가톨릭성인


GoodNews Copyright ⓒ 1998
천주교 서울대교구 · 가톨릭인터넷 굿뉴스. [전화번호보기] All rights reserved.
상단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