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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곁에 하느님 계심을 기억하며 성호 긋기

[미카엘의 순례일기] (30)십자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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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방 가톨릭교회 신자들이 갈릴래아 호숫가에 자리한 베드로 수위권성당에서 미사를 봉헌하고 있다.

 

 


그리스도교는 작은 공동체로 시작되었지만, 로마 제국의 발전과 더불어 점차 거대한 종교로 커 나갔습니다. 그에 따라 다양한 배경을 가진 많은 이들이 세례를 통해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이런 환경과 언어적 차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정체성과 신원에 관한 문제를 점점 다르게 해석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하나였던 그리스도인들을 가톨릭, 정교회, 개신교, 성공회 등으로 갈라지게 하였습니다.

성지를 순례하다 보면 다양한 그리스도인을 만나게 됩니다. 이스라엘 순례에서 가장 많이 만나게 되는 순례단은 바로 정교회 신자들로 이루어진 그룹입니다. 구약성경에 나타난 나지르인(민수기 6장 1-21절과 같이 자발적 서원을 한 사람을 일컫는 말. 히브리어 나지르에서 나온 말로 ‘거룩하게 되는’, ‘분리된’이라는 의미)처럼 머리카락과 수염을 자르지 않고 검은 모자에 낯선 형태의 수단을 걸친 사제와 그를 둘러싼 머리에 베일을 두른 자매들의 무리 때문에 정교회 순례단은 쉽게 눈에 띕니다. 우리와 반대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긋는 성호와 이콘에 입 맞추는 친구는 생경하게만 느껴집니다. 사실 가톨릭과 정교회는 원래 하나였으니, 당연하게 성호를 긋는 방향도 같았습니다. 그랬던 전례 동작이 언제부터 달라졌고, 왜 달라졌으며 그 의미는 무엇일까요?

성호(聖號, ‘거룩한 표지’라는 뜻으로 十字聖號의 준말이며, 교회에서는 전통적으로 ‘십자가 표지 signum Crucis’라 부름)는 특히 초 세기 그리스도인들의 십자가 신앙에서 비롯된 아주 오래된 우리의 신앙 행위입니다. 바오로 사도가 서간에서 십자가 사건을 통해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에 관해 강조하는 구절을 보면 십자가가 어떤 의미였는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갈라 6,14 참조) “여행을 할 때, 집 안에 들어오거나 나갈 때, 신발을 신을 때, 목욕할 때, 음식을 먹을 때, 촛불을 켤 때, 잠들 때, 앉아 있을 때, 그때마다 그리스도인은 이마에 십자성호를 그었다”는 테르툴리아누스 교부(2세기 중엽 카르타고에서 활동)의 증언을 통해서도 성호가 얼마나 일상화된 신앙생활이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성호가 중요한 부분이 되면서 전례 안에서도 그 동작이 정착되었고, 오늘날 우리가 성호를 긋는 형태도 고정되었습니다. 1198년에서 1216년 사이에 교황이셨던 인노첸시오 3세의 가르침은 성호 동작의 형태와 의미를 자세히 전합니다.

“성호는 삼위일체 하느님을 드러내는 표징이기 때문에 세 손가락을 사용합니다. 세 손가락을 이용해서 먼저 위에서 아래로, 그리고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긋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늘에서 지상으로 강림하셨고, 유다인(오른쪽)으로부터 이방 민족(왼쪽)에게까지 복음을 전하셨기 때문입니다. 한편 어떤 이들은 성호를 위에서 아래로, 그리고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긋기도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죽음(왼쪽)에서 생명(오른쪽)으로 건너오셨기 때문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 역시 비참한 존재(왼쪽)에서 영광스러운 존재(오른쪽)로 탈바꿈한 것을 기억하기 위해서입니다.”

12세기 전까지는 지금의 정교회 신자들이 성호를 긋는 방향이 전통적인 방법이었습니다. 방향을 반대로 긋는 동작은 베네딕도 수도회에서 시작되었다고 전해집니다. 이후 점차 가톨릭에서는 성호의 방향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고정하고, 또한 세 손가락만을 이용한 동작에서 손 전체를 사용하는 쪽으로 바뀌어갔습니다.

마태오 복음 25장 31-46절에 나타난 이야기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 교회의 전통 안에서 오른쪽은 언제나 영광스러운 방향이며 천국을 뜻합니다. 왼쪽은 그 반대의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성호를 위에서 아래로 긋는 것은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모님의 태중을 통해 육화하셨음을 고백”하는 것이며,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긋는 것은 “최후의 심판 때에 저희를 영광스러운 자리에 두시고, 어둡고 버림받은 곳에 두지 않도록” 기도하는 것입니다. 지금 가톨릭에서 긋는 방향대로라면 어떤 의미일까요? 역시 같은 의미입니다. 즉, “주님께서 저승에 가시어 부활하셨듯이, 우리를 어둡고 버림받는 곳에 두지 마시고, 영광스러운 천국에 들게 해주시기를” 청하는 것이죠. 정교회와 가톨릭에서 행하는 성호가 사실은 같은 의미입니다.

가톨릭 신자임을 알아볼 수 있는 가장 큰 표징은 성호일 것입니다. 작고 사소하지만 또한 크고 중요한 전례 동작인 성호의 의미를 정확하게 알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의 길로 나가는 순례자인 우리 자신을 기억하며 성호를 긋는 순간마다 우리 곁에 함께 하시는 하느님을 새롭게 기억할 것을 다짐해봅니다.



김원창(미카엘, 가톨릭 성지순례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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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1-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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