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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자 수녀의 하느님의 자취 안에서] 4. 어릴 적 꿈을 이루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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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나의 꿈은 정말 소박했다. 아주 깊은 산골로 시집가서 시부모님 모시고 사는 것이었다. “그게 뭐가 꿈이야?”라고 물을 수 있겠지만, 나는 그게 좋게 느껴졌다. 어쩌면 내 부모님께서 섬에 사시면서 평생 농사짓는 모습이 나에게 좋은 모델이 되어주셨기 때문일 것이다.

어릴 적 나에게는 또 하나의 꿈이 있었다. 화가가 되는 것이었다. 나는 어릴 때부터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해서 틈나면 장독대에 스케치북을 기대어 바깥 풍경을 그리곤 하였다. 여름날 한낮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여 한낮의 풍경을 완성할 때면 어느새 저녁 어스름이 숲에 드리우는데, 그때 그림에도 그 사이 시간을 색으로 표현하는 그 붓질이 마치 시간을 그려내는 것 같아서 아주 깊은숨으로 그림을 그렸었다. 그 순간에는 밥 먹으라는 엄마의 목소리도, 새 소리나 풀벌레 소리도, 모깃소리도 없는 진공상태 같았다.

초등학교 2학년 방학숙제 때에 처음으로 파도를 그렸다. 매일 보는 것이 바다이니 익숙한 파도를 그릴 법도 한데, 나도 모르게 물거품을 표현해놓고는 정말 바다를 보는 것처럼 행복했었다. 그 파도를 시작으로 나는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게 되었다. 그런데 5학년 때에 아버지께서 너무 아프셔서 병원에 가셨지만 할 수 있는 치료가 없다고 판단되자, 집으로 돌아오셨다. 늦둥이로 태어나서 늘 연세 드신 부모님의 모습을 보며 자라온 나로서는 곧 돌아가실 것처럼 느껴졌었다. 그때 공소회장님께서 이런 나를 보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사순 시기에 십자가의 길을 40일 동안 바치면 소원을 들어주신대.” 누가 들으면 기복신앙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나는 이 희망의 끈을 꼭 잡고 싶었다. 마침 사순 시기였기 때문에 공소에 아무도 없는 시간에 기도하러 올라갔다. 밤 8시. 사실 기도하러 산으로 올라가면서도 가로등 하나 없었던 그 어둠은 어린 나에게 무서운 마음이 들게 하였다. 그렇지만 공소 안으로 뛰어들어가서는 1처부터 14처까지 장궤하며 “아버지를 살려주세요, 주님!” 하고 간절히 기도드렸었다.

어느 날 나는 누워계신 아버지 곁에 배 깔고 누워서 그림을 그렸다. 그런데 아버지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버지 영정 사진은 울 애기가 그려줘.” 이 말씀을 듣고 머리가 아뜩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러면서도 조급한 마음이 들었다. 내가 그리는 그림은 풍경이지 얼굴이 아니었었기 때문이다. 이후로 나는 초상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단짝 친구는 항상 내 모델이 되어주었다. 그런데 사순 시기가 끝나갈 무렵, 아버지께서 일어나셨다. 병원에서도 놀랐고, 우리 가족과 마을 사람들 모두가 놀랐다. 아버지께서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버지는 울 애기가 기도해줘서 나았어.” 나는 곧바로 공소로 뛰어 올라가 혼자서 엉엉 울었다. 주님께서 내 기도를 들어주셨다는 것이 너무나 감사해서 나는 “주님, 저를 당신께 봉헌합니다”라고 나를 봉헌하였다.

이제 나는 영정 사진을 그리지 않아도 되었다. 그러나 초상화는 나에게 습관이 되었고, 취미가 되었다. 언젠가 어떤 노신부님의 초상화를 그리게 되었는데, 당신 얼굴이 담긴 초상화를 보시고 나에게 “부모님이 화가이신가?”라고 물으셨다.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네. 아버지는 논에 그림을 그리시고, 어머니는 밭에 그림을 그리세요.” 정말 지금 생각해도 기막힌 대답이다.

나는 이 두 꿈을 이루었다. 산골로 시집가는 것, 그리고 화가가 되는 것. 지금은 가끔 복음서의 예수님과 만나는 이미지를 그리고, 또 매일 밭에 그림을 그린다. 그리고 철부지 어린 내 기도를 들어주신 주님께서는 나와 여기서 함께 그림 그리기를 꿈꾸셨음을 이제 나는 안다.

노틀담 생태영성의 집 조경자(마리 가르멜, 노틀담수녀회)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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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1-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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