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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르드가 안겨준 기적과 은총

[미카엘의 순례일기] (31)루르드 성모 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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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신이 받는 고통을 통해 하느님의 은총을 깨달을 수 있는 것 역시 기적이 아닐까. 포르투갈에서 온 장애인 가족이 루르드를 순례하고 있다.



간혹, 순례 일정에 포함된 수많은 성지 중 단 한 곳만을 보고 떠나시는 순례자들이 있습니다. 치유의 성지로서 성모님의 기적의 상징과도 같은 곳인 루르드는 즐겨 그러한 순례의 목적지가 되는 장소입니다. 60대 초반의 나이에 온화한 미소를 가지셨던 자매님 한 분 또한 루르드를 가고 싶으시다며 순례에 참여하셨습니다.

낡고 헐렁한 원피스에 오래된 캐리어를 끌고 다니셨던 그분은 알고 보니 작지 않은 중소기업의 대표셨고, 심지어 같은 방을 쓰는 젊은 자매님의 정체는 개인 비서였습니다. 건강이 좋지 않은 탓에 옆에서 비서가 챙겨주지 않으면 일정을 따라올 수 없으셨던 것입니다. 버스 맨 뒤편에 앉아 종일 묵주기도를 바치거나 주무시기만 했던 것이 그제야 이해가 되었습니다. 순례단 모두는 그런 자매님을 배려하며 속도를 맞춰 걷기 시작했지요.

그러나 루르드에 도착하기 전날이 되자 자매님은 얼굴색부터 달라지셨습니다. 누구보다 앞서서 걸었고, 열정적으로 곳곳을 누볐습니다. 순례단이 루르드에 머무는 사흘 남짓의 시간 동안 자매님은 마치 날개를 단 듯 루르드를 활보하셨습니다.

프랑스 루르드에서 스페인으로 이동하는 시간은 4시간에 달합니다. 마침 일정의 절반을 지나고 있었던지라, 순례단은 버스 안에서 각자 순례에 대한 느낌을 나누기로 했습니다. 이윽고 자매님의 차례가 되었습니다. 맨 뒤에 앉아계시던 자매님은 한동안 망설이시다가 조심스럽게 버스 앞쪽으로 오셔서 마이크를 잡으셨습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느님, 올해 여름까지 또 한 해를 더 살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어지는 자매님의 고백은 놀라웠습니다.

10여 년 전까지 잘 나가는 중소기업의 50대 초반 여성 CEO였던 자매님은 갑작스럽게 급성 췌장암 말기 판정을 받으셨고, 이미 온 장기와 뼈까지 암이 번진 상태라서 손쓸 수 없음을 알게 되셨습니다. 결혼도 마다하고 어려운 집안을 일으키기 위해 수십 년간 쉬지 않고 일한 대가치고는 너무 잔인했습니다. 겨우 두세 달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는 의사의 말에 눈물과 회한으로 며칠을 보내다, 자매님은 거실에 놓인 루르드 성모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가난했던 어린 시절에도 안방 한쪽에 늘 놓여있던 성모상이었습니다. 그 앞에서 묵주기도를 드리면서 하루하루를 감사하라고 가르치셨던 어머님이 생각났습니다. 그곳에 가보기로 했습니다. 천국에서 만날 부모님께 루르드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싶었습니다. 또 혹시 나에게도 기적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절박한 기대도 있었습니다.

병을 숨기고 성지순례를 신청했습니다. 마침내 꿈에 그리던 루르드에 도착해, 자매님은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고 성모님의 말씀대로 샘물을 먹고 씻었습니다. 그리고 기적을 체험하셨습니다.

그러나 갑자기 병이 씻은 듯 나았다는 믿기 힘든 기적이 일어났다는 것이 아닙니다. 자매님은 그 순간 가장 최초의 기억에서부터 지금까지의 삶이 떠오르며, 갑자기 모든 순간이 귀중하고 감사하게 느껴졌다고 하셨습니다. ‘모든 것에 감사하라’는 성경 말씀이 더는 성경의 한 구절이 아니라 삶 그 자체로 다가왔습니다. 귀국 후 자매님은 가진 것들을 정리하여 많은 곳에 기부하셨고 죽음을 차분히 준비하셨습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더는 암은 진전되지 않았고, 1년이 지났습니다. 자매님은 또 한 번 루르드를 찾았습니다. 예상보다 훨씬 더 많은 날을 허락하신 주님께 감사드렸습니다. 이후 정기적으로 병원을 찾았습니다. 여전히 암은 그대로였고, 암으로 인한 고통도 자매님을 괴롭혔습니다. 그러나 병은 더는 진행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계속 흘렀습니다. 무려 10년이라는 시간이 말입니다.

“기적이네요!”

마이크를 놓으신 자매님께서 자리로 돌아가시려던 순간, 어떤 분이 그 자매님을 향해 큰소리로 외치셨습니다. 잠시 머뭇거리시던 자매님은 다시 마이크를 잡았습니다.

“기적이 맞습니다. 그러나 제 몸에 있는 암세포가 더는 자라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지난 삶 동안 무엇에도 감사할 줄 모르고 살았던 저는, 이제 오늘 하루 제게 주어진 모든 것에 감사합니다. 설령 내일 제가 죽더라도, 저는 여전히 감사하며 그 죽음을 맞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내년에 또다시 루르드에 오리라는 기대도 하지 않습니다. 마지막 순례라 생각했던 이곳에 이미 열 번이나 돌아왔으니 그 또한 한없이 감사할 뿐이니까요. 이렇게 감사할 수 있게 된 저 자신이, 저에게는 진짜 기적이며 은총입니다.”

“언제나 기뻐하십시오.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살아가는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하느님의 뜻입니다.”(1테살 5, 16~18)



김원창(미카엘, 가톨릭 성지순례 전문가)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21-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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