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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자 수녀의 하느님의 자취 안에서] 5. “땅의 얼굴을 새롭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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땡볕에서도 풀은 정말 잘 자란다. 저 뜨거운 볕에 여린 잎 활짝 펼치며 잘도 자란다. 열심히 풀 매고 난 자리에 이틀 후면 초록초록으로 새싹이 올라오고 있다. 허탈한 웃음이 나오지만, 땅의 생명력을 보여주는 것으로 생각한다.

우리는 무경운으로 농사짓기를 하므로 봄, 가을로 밭갈이해야 할 때에 삽과 호미로 부지런히 밭을 일군다. 아니, 삽과 호미면 충분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감자나 양파, 마늘은 이른 작물이기 때문에 6월이면 다 수확하게 된다. 이후 이 밭은 김장밭이 될 준비를 한다. 한 달 정도의 안식을 갖고 김장밭 준비를 하는데, 지금이 바로 그 시기이다. 강화도는 기온이 낮은 편이라 다른 지역보다 김장배추를 일찍 심어야 속이 제대로 찬 배추를 볼 수 있다. 삽질하면서 내가 소가 된 기분이었다. 미생물이 잘 서식하고 있는 흙은 포실하지만 그렇지 않은 흙은 딱딱해져서 사람의 손이 더 간다. 아픈 자식에게 마음이 더 가는 부모의 마음이 이렇지 않을까?

야콘밭에 풀이 성하게 자라 공동체 수녀님들께 풀을 뽑자고 하였다. 오늘따라 더 딱딱한 흙을 보며, 이 흙이 우리네 마음자리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물을 줘도 받아들이지 않고, 귀한 씨앗을 심어줘도 품어낼 수 없는 땅, 그래서 주인의 마음을 애타게 하고, 손이 가게 하는 땅 말이다. 호미로 흙덩이를 부숴주고, 손으로 쓸어주며, 이랑을 북돋워 주었다. 초보 농부 안나 수녀님이 풀 매고 지나간 자리에 이랑이 무너진 채로 지나간 것을 보며 내가 잔소리를 했다. “밭의 주인공은 작물이니 우리는 그들이 주인공이 될 수 있도록 북돋아 줘야 해요. 야콘이 크는 것은 흙이 갈라지는 것으로 알 수 있어요. 그러니 풀을 뽑으면서 그들을 잘 덮어주면 좋아요.” 안나 수녀님은 “아, 그렇구나~” 하며 그대로 듣고 받아들여, 흙을 모아 야콘을 덮어주었다. 요즘 농사일에 맛 들이고 있는 윤희 수녀님이 뽑힌 풀을 보며 “수녀님들, 씨 맺히지 않은 풀은 거름으로 만들게요. 모아주세요”라고 하였다. 순간 수녀님들의 이런 마음 자세가 정말 좋은 땅으로 다가왔다.

그러고 보니 예수님께서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던 것이 그냥 남의 말 듣고 하신 말씀이 아니겠구나 싶다. 당신이 씨를 뿌려보고, 풀도 뽑아보며, 양도 돌보고, 농부들과 또 목자들과도 ‘함께 하셨겠구나!’라고 생각하니, 돌보는 이 일이 정말 소중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2000년 전, 자연 안에서 생명을 돌보시던 그분과 함께 시간을 거슬러 이 일을 하고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된다.

내가 아는 한 신부님은 신자들의 머리에 손을 얹어 축복하시면서 이렇게 기도하신다고 말씀하셨다. “주님, 돌처럼 굳은 마음이, 살처럼 부드러운 마음이 되게 하소서.” 하느님 말씀을 심는 우리 마음 밭이 돌처럼 굳으면 어떤 말씀도 깊이 뿌리내리기 어렵다. 이 사제의 기도는 농부가 씨앗을 뿌릴 밭을 준비하고 돌보는 그 손길과 같다. 우리는 믿음으로 이 모든 손길을 받아들이며, 자신을 말씀을 심을 좋은 땅으로 준비한다. 이 땅을 우리의 믿음으로 잘 북돋아 주면, 이 땅에 나는 풀들, 곧 실수나 실패들도 열매 맺는 데에 필요한 거름이 되게 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오늘, 이 시대에 우리 인류는 정말 많은 실수를 하였다. 문득 돌아보며 어떻게 다시 시작해야 할지, 어디로 돌아가야 할지 생각하게 된다. 우리 삶의 방식 중 몇몇 가지만 바꾸면 모든 상황이 안전할 것이라는 식의 생각으로는 우리가 직면한 위기의 심각함을 제대로 해결할 수 없다. 우리는 더욱 전적인 전환을 필요로 하는 위기에 직면해 있다. 그 어느 때보다도 하느님의 백성이라는 우리의 정체성을 생각하게 된다. 하느님 백성은 선택된 민족으로서 다른 모든 민족이 하느님을 알아보도록 하는 표징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처한 이 절망 속에서 우리가 하느님을 찾으면,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숨을 내보내시어 … 땅의 얼굴을 새롭게”(시편 104, 30) 하실 것이다. 우리 모두는 그분이 창조하신 땅이다. 노틀담 생태영성의 집 조경자(마리 가르멜, 노틀담수녀회)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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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1-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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