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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자 수녀의 하느님의 자취 안에서] 7. 들을 귀가 있는 사람

노틀담 생태영성의 집 조경자(마리 가르멜, 노틀담수녀회)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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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우리 밭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작물은 바로 참외다. 토종 씨앗을 얻어 심었는데, 사과 모양의 참외가 예쁘게 넝쿨을 만들어 열매 맺었다. 우리 수녀님들은 으레 가장 먼저 딴 열매는 정성껏 예쁜 접시에 올려 식탁 중심에 놓고 감탄과 또 찬미를 드리곤 한다. 그러고 보니 식탁도 제대다. 누군가가 참외를 칼로 쪼개니 모두가 탄성하였다. 그 속이 정말 잘 익고, 다음 해를 향한 건강한 씨앗이 꽉 차 있었기 때문이다. 여섯 쪽으로 나누어 한 입씩 베었을 때에 우리는 모두 다시 감탄하였다. 정말 꿀맛이었기 때문이다. 올해 농사가 신통치 않다고 생각했던 윤희 수녀님은 참외 맛을 보며 신이 났다. 앞으로 매일 이 맛난 참외를 먹을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 마치 자식 자랑하는 모습처럼 느껴졌다.

참외를 심은 밭은 거의 안식년처럼 많은 작물을 심지 않고 오히려 자연농에서 권장하는 짚을 겹겹이 덮어 놓았다. 그러다 보니 말끔히 풀이 뽑힌 그런 밭이 아니라, 썩은 짚 사이로 풀도 자라고 작물도 자라는 그런 밭이 되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그 나름대로 질서가 있음을 알 수 있다. 토마토와 가지가 서로 기대어 함께 살고 있다. 오이는 위로 오르고, 참외는 아래에서 능선을 만들고 있다. 우리가 이들에게 해 줘야 하는 것은 기댈 말장을 박아주고, 타고 오를 줄을 띠워주면 된다. 우리 자신을 위해 재촉하지 않는 공간, 그래서 땅이 쉴 수 있는 터다. 그러니 우리가 땅의 회복을 눈으로 확인하는 자리가 되었고, 공생의 관계를 깨닫는 자리, 순환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자리가 되었다. 벌레가 있고 나비가 날아들어도 노여워하지 않을 수 있는 자리이다. 가만히 이들을 보고 있으면 그 자체로 하느님을 찬미하게 된다. 여기에는 그들 나름대로의 교향악이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이 작은 터에서 벌어지는 공생 관계를 보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자연이 서로에게 허용하는 이 관계, 알고 보면 거류민인 우리조차도 받아들여 준 이 관계 안에서 하느님의 말씀이 살아 있고, 계속 쓰여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사랑으로 창조된 이 세상 모든 피조물은 우리와 함께 하느님의 사랑을 노래하고 싶어 한다. 그런데 하느님을 가장 많이 닮았다고 하는 우리, 그래서 다른 모든 피조물들을 잘 돌볼 수 있는 사명을 받은 우리 인류는 지금 본래의 멜로디를 무시하고 불협화음을 만들고 있다. 다른 생명들과의 협주가 아닌, 저 혼자만의 소리로 자만하려는 것이다.

우리가 창조질서 회복을 위해 노력한다는 것은 어쩌면 뭔가를 새롭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본래 이루어지고 있는 질서를 되찾는 것이다. 우리는 이 감각으로부터 너무 무뎌졌지만, 정말 다행인 것은 우리도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자연의 일부라는 사실이다. 자연은 우리를 포함한 그 순환에서 우리를 제외하지 않았다. 밭에서 깨닫는 그 감탄과 찬미 안에서는 물론이거니와 기후위기의 악순환 속에서 불안을 느끼는 것도 우리만의 불안이 아니다. 대자연의 찬미이자 대자연의 호소이다. 그러니 우리가 직면한 기후위기 속에서 불안을 느낀다면, 대자연이 지금 불안으로 움츠리고 있는 그 일부로서 겪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자기 혼자 아픈 것처럼 아우성치기보다 먼저 우리 인류가 조장한 어려움임을 인정하고, 국경을 넘어선 가난한 사람들과 약한 생명은 더 아프다는 것을 깊이 깨달아야 한다.

우리 자신과 모든 생명의 노래를 도와달라는 노랫말로 알아들을 때에 우리는 비로소 제 방식의 생명 돌보기에서 돌아설 수 있을 것이다. 들을 귀가 있는 사람은 안다.

노틀담 생태영성의 집 조경자(마리 가르멜, 노틀담수녀회)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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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1-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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