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5일
사목/복음/말씀
전체기사 지난 연재 기사
“아무 말 없이 그저 하느님을 봅니다”

[미카엘의 순례일기] (34)프랑스 아르스의 비안네 신부

폰트 작게 폰트 크게 인쇄 공유

▲ 아르스 성당에 안치되어 있는 성 요한 마리아 비안네 사제.



론 강(Le Rhne)과 손 강(La Sane)이 만나 생기는 삼각지를 중심으로 세워진 리옹(Lyon)은 프랑스 남부에서 가장 큰 도시 중 하나입니다. 로마인들이 갈리아인들의 약탈을 방지하고 마르세유와의 자유로운 교역로를 확보하기 위해 손 강변에서 가장 높은 언덕인 푸르비에르(Fourvire)에 도시를 세우면서 발전하기 시작했습니다. 로마와 영국을 잇는 무역로의 중심이 되었고 무역과 은행업, 인쇄술, 예술 그리고 종교적으로도 빼놓을 수 없이 중요한 도시로 성장했습니다. 드라마에 자주 등장하는 국제 인터폴의 본부가 자리한 곳도 리옹입니다. 성모님께 봉헌된 아름다운 성당(노트르담성당, Basilique Notre-Dame de Fourvire)과 요한 세례자에게 봉헌된 주교좌성당(Cathdrale Saint-Jean-Baptiste de Lyon)은 리옹을 순례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명소입니다.

그러나 종교적으로나 역사적으로 중요한 도시인 리옹은 대부분의 가톨릭 순례단에게 그저 경유지로만 남는 경우가 많습니다. 리옹에서 버스로 30분이면 도착할 수 있는 작은 마을, 아르쉬르포르망(Ars-sur-Formans)에 가기 위한 여정에 불과한 것입니다. 1300명 남짓한 인구수의 작은 마을은 우리에게 ‘아르스’로 더 잘 알려졌습니다. 모든 본당 신부님들의 수호성인이신 성 요한 마리아 비안네(프랑스어로는 장 마리 비안네 Jean-Marie Vianney)신부님의 삶이 남겨진 곳입니다. 성인께서 살아계셨을 적에는 주민의 수가 고작 230여 명인 마을이었다고 합니다. 너무 작은 마을이라 찾아가는 것조차 힘든 곳이었죠. 지나가는 아이에게 길을 물은 성인께서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네가 마을로 가는 길을 알려주었으니, 이제 나는 네게 천국으로 가는 길을 알려주겠다”라고 하셨다는 일화는 유명합니다.

사실 그 시절 아르스는 미신에 빠져 신앙에 무관심한 이들로 가득한 곳이었습니다. 하지만 신부님의 친절과 자비, 그리고 자신이 맡은 본당 신자들을 위한 끊임없는 기도와 보속은 그곳을 완전히 바꿔놓았습니다. 성인께서는 새벽 4시에 일어나 밤늦게 잠드실 때까지 단 한 순간도 쉬지 않으셨다고 합니다. 10시간 이상을 기도와 성체조배, 미사와 고해성사를 위해 성당에 머무르셨고, 매일 강론을 준비하기 위해 많은 시간을 보내셨습니다. 점차 신부님의 명성이 높아지면서 때로는 18시간 이상을 고해소에 머물기도 하셨는데 신부님의 손을 한번 잡아보려는 순례자들 때문에 열 걸음이면 갈 수 있는 사제관까지 한 시간이 넘게 걸렸다는 말도 있습니다.

아르스는 구석구석 돌아보는 데에 20분밖에 걸리지 않을 정도로 작은 마을입니다. 그러나 교구에 속한 본당 신부로서 처음으로 시성되신 ‘본당 사제의 수호성인’의 성지인 만큼, 신부님들은 특히 이곳을 꼭 방문하고 싶어하십니다. 비안네 신부님의 시신은 현재 밀랍으로 처리되어 유리관에 모셔져 있습니다. 잠들어 계신 듯 보이는 신부님 앞에서 봉헌되는 미사는 신부님뿐 아니라 순례자 누구에게나 잊지 못할 경험이 됩니다.

신학생 때부터 비안네 신부님의 상본을 언제나 성경에 넣고 다니셨다는 한 신부님께서는 순례 중에 비안네 신부님의 강론을 빌어 이런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신부님께서 처음 아르스에 왔을 때는 아무도 성당에 오지 않았답니다. 단 한 사람, 샤팡 형제만이 성당을 지나칠 때마다 들고 있던 괭이를 문 앞에 내려놓고 성체 앞에 머물다가 돌아갔을 뿐입니다. 비안네 신부님께서는 그분에게 매일 어떤 기도를 드리는지 여쭈어보셨다고 합니다.

“신부님! 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잠깐 앉아서 하느님을 보려는 것뿐입니다. 그러면 하느님께서도 저를 바라보고 계십니다.”

비안네 신부님께서는 샤팡 형제를 통해 성체 앞에 우리가 어떻게 머물러야 하는지를 배우셨고, 자주 강론에서 샤팡 형제의 기도에 대한 이야기를 언급하셨습니다. 우리는 가끔 기도를 잘하려 애쓴 나머지 기도하는 그 마음을 잊지는 않는지요? 하느님께서 우리를 잘 보실 수 있도록, 우리가 하느님을 잘 볼 수 있도록 바른 자세로 앉아있기만 해도 충분한 것을요. 바라보는 것, 그것이 곧 기도이니 말입니다.”

어쩔 수 없이 성당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뜸해지는 요즘입니다. 미사 성제를 자주 봉헌할 수 없고 성체 강복이나 성체 조배를 하기에도 어렵습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 늘 우리를 바라보고 계시듯, 일상 안에서 우리 역시 하느님을 늘 바라보는 마음으로 살아갈 수는 있지는 않을까요? 신앙을 잃은 마을에서 홀로 하느님을 마주했던 샤팡 형제, 그리고 처음으로 그를 알아보았던 비안네 성인처럼 말입니다.



김원창(미카엘, 가톨릭 성지순례 전문가)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21-09-01

관련뉴스

말씀사탕2024. 4. 25

1사무 2장 8절
주님께서는 가난한 이를 먼지에서 일으키시고 영광스러운 자리를 차지하게 하시는도다
  • QUICK MENU

  • 성경
  • 기도문
  • 소리주보

  • 카톨릭성가
  • 카톨릭대사전
  • 성무일도

  • 성경쓰기
  • 7성사
  • 가톨릭성인


GoodNews Copyright ⓒ 1998
천주교 서울대교구 · 가톨릭굿뉴스.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