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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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자 수녀의 하느님의 자취 안에서] 9. “수녀님은 왜 그렇게 어렵게 살아요?”

노틀담 생태영성의 집 조경자(마리 가르멜, 노틀담수녀회)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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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이전에는 이곳에서 여름철마다 아이들을 위한 생태신앙캠프를 진행했었다. 캠프를 시작하면서 우리는 아이들에게서 휴대폰을 잠시 걷어둔다. 그러면 아이들은 ‘도대체 뭐하고 노냐’는 원망 어린 눈빛으로 우리에게 사정하지만, 우리는 오히려 아이들이 휴대전화를 잊고 자연 안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안내해준다. 처음에는 어떻게 놀지 몰라 하고, 뭘 봐야 할지 모르다가 단 한 시간도 안 되어 자연 안에 일부가 되어 뛰어노는 아이들을 보게 된다. 이 장면은 상상만 해도 완성된 하나의 그림처럼 다가온다. 자연은 본래 아이들이 있어야 할 자리, 뛰어놀아야 할 자리였다는 것을 우리는 매번 새롭게 깨닫게 된다. 아이들은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피조물의 이름을 불러주고, 쓰다듬어주고, 눈 마주치는 그 일을 아주 자연스럽게 해낸다. 우리 어른들은 ‘보살피고, 관계하는 것’을 아주 어려운 일로 만들었지만, 아이들은 주저하지 않고 즉시 다가간다.

어느 해 여름, 캠프 중에 아이들 앞에서 강의하는데 문득 한 아이가 손을 들고 나에게 물었다. 그 아이는 캠프 중에 어쩔 수 없이 선택해야 하는 불편함이 싫었던지 유난히 딴청부리던 아이였다. 아이의 질문은 이랬다. “수녀님, 수녀님은 왜 그렇게 어렵게 살아요?” 아픈 지구를 위해 우리가 어떻게 사는지를 소개하는 중이었고, 또 농사에, 교육에 땀범벅이 된 나의 모습이 아이의 눈에 안쓰러워 보였던 모양이다. 나는 예상하지 못했던 질문이지만 나도 모르게 대답 대신 아이에게 이렇게 되물었다. “성경에서 예수님은 어떤 사람들의 친구가 되어주셨나요?” 그러자 아이는 자기가 직접 본 것처럼 대답하였다. “가난한 사람들, 아픈 사람들요.” 아이의 즉각적인 대답에 나도 서슴없이 말하였다. “맞아요. 예수님은 가난한 사람들, 아픈 사람들에게 다가가셔서 그들과 함께하시고, 그들의 아픔을 어루만져주셔서 낫게 하셨어요. 그렇다면 오늘 예수님이 우리가 사는 세상에 오셨다면 어디에서 그분을 찾을 수 있을까요?” 그러자 아이는 대답하지 못했다.

나는 나조차도 처음에는 의식하지 못했던, 그러나 살수록 더욱 살아 있는 복음으로 다가오는 주님과의 관계성을 나는 조심스럽게 이야기해 주었다. “수녀님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우리 시대에 가장 가난한 이들이 바로 이 생명이라고 생각해요. 인간만이 아니라 많은 생명이 기후 위기로 상처받고 있어요. 바로 이렇게 다른 생명을 돌보는 장소로 예수님께서 수녀님을 초대하셨어요. 예수님은 저 가난한 생명과 함께하고 계시거든요.” 나의 이 대답을 들은 장난꾸러기 아이의 눈빛이 달라졌다. 그리고 캠프 내내 그룹에서 리더의 역할을 하는 아이가 되었다.

아이들은 캠프 중에 하느님 안에서, 자연 안에서 그동안 몰랐던 생태적, 창조적, 사회 관계적 충격을 받는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과 캠핑하면서 이런 생각을 하곤 한다. 아이들의 가슴에 아주 깊은 상처를 내고 있다고. 그런데 이 상처는 마치 조개의 몸에 모래가 들어가 상처를 내는 것과 같다. 모래가 들어갔을 때 어떤 조개는 뱉어내려다 제 몸이 썩어 죽을 수 있지만, 어떤 조개는 그 모래를 품어 진주가 되게 한다. 이 상처, 이 모래는 곧 희망의 씨앗이다. 비단 아이들만이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어른들 중 거의 대부분은 이 모래를 뱉어내려 하고, 이미 절망스러운 미래를 전제하고 희망 품기를 그쳐버렸다. 미래에 대하여 아이들만큼 절실하지 않기 때문이다.

쥴리아 버터플라이라는 환경운동가가 있다. 그녀가 삼나무 벌목을 막는 일을 하다가 동료들이 죽고 더 이상은 무리일 것으로 생각했을 때에 자신 안에서 이런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쥴리아, 이 세상에 희망을 가진 사람이 너 하나밖에 없다고 하더라도 그 하나 때문에 아직 이 세상에는 희망이 존재하는 것이야.” 나에게, 우리에게 아직 이 희망이 존재하는가? 아이들에게 이 희망을 남겨주고 싶은가? 그렇다면 아직 이 세상에는 희망이 존재하는 것이다.

노틀담 생태영성의 집 조경자(마리 가르멜, 노틀담수녀회)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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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1-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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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저의 하느님, 제 마음 다하여 당신을 찬송하며 영원토록 당신 이름에 영광을 드리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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