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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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영상교리] (4) 십자 성호

하느님의 자녀임을 드러내는 거룩한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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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QR코드를 찍으면 ‘가톨릭 영상 교리’를 볼 수 있습니다. 주교회의 한국가톨릭사목연구소ㆍ가톨릭평화방송 제작

▲ 성호경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돌아가신 십자가를 표시하며, 삼위일체 신앙에 대한 고백이며, 하느님께서 내려주시는 복을 기원하는 뜻이 담겨 있다. 사진은 왼쪽부터 예수님의 십자가 위 죽음을 재연하는 신자들과 러시아 이콘 화가 안드레이 루블료프(1360~1430) 작 ‘삼위일체이신 하느님’, 십자 성호를 긋는 프란치스코 교황.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성호경은 가장 짧지만 가장 중요한 기도입니다. 우리는 모든 크고 작은 일상사에서 기도의 시작과 끝에 성호경을 바칩니다. 눈 떠서 잘 때까지 성호경과 함께하는 것이지요. 성호경은 ‘십자 성호’를 긋는 기도로 ‘성호’는 ‘거룩한 표지’라는 뜻입니다.

성호경은 먼저 왼손을 가슴에 댄 채 오른 손가락을 편 상태로 내 몸에 십자 모양의 성호를 그으며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하며 바치는 기도입니다. 이마에서 ‘성부와’, 가슴에서 ‘성자와’, 왼편 어깨에서 “성”, 오른편 어깨에서 “령의” 하며 십자를 긋습니다. 그리고 두 손을 모으며 ‘이름으로. 아멘’ 이라고 합니다.



십자 성호의 구분

십자 성호는 큰 십자 성호와 작은 십자 성호 두 가지로 구분되는데요, 방금 설명해 드린 십자 성호는 큰 십자 성호입니다. 작은 십자 성호는 이마와 입술과 가슴에 작은 십자 표시를 하는 것입니다. 미사에서는 이 두 종류의 십자 성호를 다 사용하는데요, 미사의 시작과 끝에, 그리고 기도할 때는 ‘큰 십자 성호’를 긋고, 미사 중 복음을 듣기 전에는 ‘작은 십자 성호’를 긋습니다. 주님의 말씀인 복음을 머리와 입과 가슴에 새겨 잘 따르고 실행하겠다는 다짐으로 작은 십자 성호를 세 번 긋는 것입니다.

성호경의 세 가지 뜻

성호경은 크게 세 가지의 뜻을 지닙니다. 첫째, 예수 그리스도께서 돌아가신 십자가를 표시합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으로 인류 구원이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다음으로는 삼위일체 신앙에 대한 고백입니다. 한 본체로서 세 위격이신 하느님을 그대로 믿겠다는 고백이며 모든 일을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성호경은 악마로부터 구해지는 것이면서 구원이자 하느님 자비의 표지이기도 합니다. 마지막으로 성호경은 하느님께서 내려주시는 복을 기원하는 의미입니다. 성호경은 짧지만 특별한 은혜를 받게 해주는 준성사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호를 긋는 것은 나 스스로를 축복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성호경은 그리스도의 구원과 축복, 삼위일체 신앙의 고백이며, 우리가 가톨릭 신자임을 드러내는 신앙인의 상징입니다. 그래서 성호경은 가장 짧지만 가장 중요한 기도가 되는 것입니다.



성호경의 유래

그런데 성호는 언제부터 긋기 시작했을까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후 제자들은 십자가의 형상을 죽음의 형틀이 아닌 구원의 상징으로 새롭게 받아들였습니다. 이 십자가가 그리스도인의 표지로 예식에 들어온 것은 2세기경입니다. 세례 때 예비신자 이마에 주례자가 십자 표시를 했다고 전해집니다. 로마제국 박해시기 때는 남모르게 이마나 가슴에 간단한 십자 표시를 하는 습관이 신자들 사이에서 퍼져 나가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그리스도교가 로마의 국교가 되면서 십자가는 그리스도교의 대표적인 상징이 됐고, 전례에 적용되기 시작했습니다. 4~5세기부터는 사제가 오른손으로 사람이나 사물에 십자를 그어 축복하는 관습이 생겼고, 두 어깨를 연결해 크게 긋는 큰 십자 성호는 11세기부터, 이마와 입술과 가슴에 하는 작은 십자 성호는 12세기부터 전례에 사용되었습니다.

우리의 신앙 선조들도 박해 시기에 십자 성호를 암호로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거지 행색으로 위장해 다니는 가운데 오직 성호를 긋는 표시로 흩어진 신자들을 찾아 모았고, 깊은 산골에서 옹기장이로 살아가던 신자들은 옹기 바닥이나 뚜껑에 십자 문양을 새겨 건네주며 서로를 알아보고 신앙생활을 이어갔습니다. 또 박해 시기에 배를 타고 조선에 들어왔던 제4대 조선대목구장 베르뇌 시메온(1814~1866, 장경일) 주교는 십자 성호와 관련해 이런 기록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작은 배 한 척에 타고 있던 선원들이 손을 하늘로 올리고 십자 성호를 계속 그으며 우리가 보내는 신호에 응답했습니다. 과연 그들은 신자였습니다.” 옛 신앙 선조들은 십자 성호 하나만 제대로 그어도 천국에 간다며 정성을 다해 성호경을 바치셨습니다.

날마다 성호를 긋는 것은 내 몸 위에 십자가를 새기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희생을, 예수님의 사랑을 날마다 기억하는 것입니다. 또한, 성호를 그으며 나는 언제나 하느님의 은총 속에 있음을 알게 됩니다. 매일, 매 순간 예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내 가슴으로 예수님을 안는 것입니다.





마티아는 그리스말 ‘마티티아’의 약칭으로 우리말로 ‘하느님의 선물’이란 뜻입니다.



[금주의 성인] 성 마티아 (5월 14일)신약성경에서 마티아는 사도행전에서 딱 두 번 나옵니다. 마티아를 사도로 선출하는 대목에서입니다.(사도 1,13.26)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 열한 사도는 다른 제자들과 성모님과 다른 여자들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열심히 기도하고 있습니다.

마티아가 사도로 뽑힌 것은 이때쯤이었습니다. 사도행전이 전하는 당시 모습(사도 1,15-26)을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하루는 백스무 명가량 되는 형제들이 모여 있을 때 베드로가 일어나 유다 이스카리옷의 직책을 대신할 사도를 뽑는 문제와 관련해서 발언합니다. “주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지내시는 동안 줄곧 우리와 동행한 이들 가운데에서, 곧 요한이 세례를 주던 때부터 시작하여 예수님께서 우리를 떠나 승천하신 날까지 그렇게 한 이들 가운데에서”(사도 1, 21-22) 사도를 뽑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제안에 따라 바르사빠스라고도 하고 유스투스라는 별명도 지닌 요셉과 마티아 두 사람을 가려서 앞에 세우고 나서 기도한 후 제비를 뽑아 마티아를 사도로 선출하게 됩니다.

전승에 따르면 마티아는 사도단에 합류한 후 처음에는 유다 지방에서, 나중에는 콜키스(오늘날 흑해 동부 그루지아 일대)에서 복음을 전하다 순교했다고 합니다.

마티아 사도는 세바스토폴리스(오늘날 흑해 동부 연안 도시 수후미)에서 죽어 그곳에 묻혔다가 로마 제국에 그리스도교를 공인한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어머니 성녀 헬레나(248?~330)에 의해 로마로 옮겨졌습니다. 그후 다시 독일 남서부 국경 도시 트리어로 이장됐습니다.

그러나 다른 설도 있습니다. 마티아 사도는 유다 지방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예루살렘에서 유다인들에 의해 돌에 맞아 순교했다고 전해집니다. 유다인들은 마티아 사도를 돌로 쳐 죽인 후에 다시 도끼로 목을 쳤다고 합니다. 유해는 나중에 로마로 옮겨졌다가 다시 트리어로 옮겨졌다고 하지요.

트리어로 옮겨진 마티아 사도의 유해는 베네딕토 수도원 성 마티아 성당에 안치됐다고 합니다. 트리어는 마티아 사도를 수호성인으로 모시고 있는 도시이기도 합니다. 또한 그는 목수와 재단사의 수호성인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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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2-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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