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6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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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묵상] 부활 제4주일·성소 주일 - 나는 그들을 알고, 그들은 나를 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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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느님께서 나를 아신다

나를 아신다는 말씀이 얼마나 감사하고 귀한지 모릅니다. 저는 존재감이 별로 없습니다. 제가 모임에 있어도 모르는 사람이 많고, 몇 년이 지나서도 제가 그 모임에 있었는지 모르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런데 ‘하느님이 나를 아신다’는 말은 저에게 가볍게 들리지 않습니다.

보통 눈에 띄는 사람들을 기억하기 마련인데, 하느님은 드러나지 않는 저를 안다고 하십니다. 그냥 아시는 것도 아니고 값지고 소중하게 보아 주시고, 머리카락까지 세어 두실 정도로 잘 아시고, 들풀까지 입히시는 마음으로 아십니다. 그 하느님의 마음이 저에게 기쁨과 감동으로 다가옵니다.

다른 독서와 복음을 묵상하는데 그 마음이 조금 더 깊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독서는 다니엘이 모든 것을 잃었지만, 그 부서지고 깨진 마음을 받아달라고 기도하는 모습입니다. 다니엘은 ‘주님 제가 이렇습니다’ 하며 하느님께 시선을 둡니다.

하느님은 복음에 나오는 임금과 비슷합니다. 만 탈렌트를 탕감해 주시는 모습, 그 모습과 더불어 저를 바라보시는 시선들, 곧 ‘보시니 좋았다. 네가 나의 눈에는 값지고 소중하며, 머리카락까지 세어 두시고, 들풀까지 입히시거든’ 하는 말씀들이 마음 깊은 곳에 위로를 주었습니다. 그러면서 ‘주님께서는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노라.’ 하는 기도가 충만해졌습니다.

■ 그들은 나를 따른다

하느님의 사랑은 봉헌을 생각하게 합니다. 주님의 사랑과 은혜를 체험한 이들이 헌신으로 나아가고, 변화된 삶을 살아가고, 자신의 삶을 봉헌한 것처럼 말입니다. 복음에 나오는 자캐오는 주님의 구원을 체험하고, 자신의 재산을 절반이나 내놓고 변화된 삶을 살아가겠다고 약속합니다. 또 죄의 용서를 체험한 막달라 마리아는 300데나리온이나 되는 향유를 주님께 부어 드립니다. 또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했지만 그럼에도 자신을 용서하고 받아 주시는 예수님을 체험한 베드로는 목숨을 걸고 복음을 선포합니다.

저에게 그 봉헌이 무엇일까를 생각해 보았는데요. 두 가지가 떠올랐습니다. 하나는 예수님의 말씀대로 벗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큰 사랑을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예수님께서 보여 주셨던 것처럼 십자가에 달려 죽기까지, 끝까지 순종하는 모습입니다.
그런데 그 두 가지 모습을 생각했을 때 마음에서 처음 올라온 반응은 ‘나는 할 수 없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사랑을 실천하는 것도, 끝까지 순종하는 것도 힘들겠다는 마음이 먼저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 베드로와 「나를 이끄시는 분」을 쓰신 월터 취제크 신부님이 떠오르면서, 또 내 힘으로 하려 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하느님께 그 길을 갈 수 있는 힘을 청하고 기도했습니다.

■ 그들을 이끌어 주실 것이며

신학과 3학년으로 복학하기 전에 고민이 있었습니다. ‘말도 잘 못하고 능력도 없고, 사람들과 잘 지내지도 못하는데, 사제가 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많이 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리더십 있는 신부님들을 보면서, ‘나는 저렇게 할 수 없겠다’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의기소침하고 무력감을 느끼며, 신학교에 복학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다가 새 신부님 첫 미사에 갔는데, 앞뒤 말씀은 생각이 나지 않지만, 신부님의 강론에서 이런 말씀을 들었습니다. “…못 나고 능력이 없고 재주가 없어도 모두 신학교로 보내 주십시오. 주님께서 그를 변화시킬 것입니다….” 신부님의 그 말씀을 듣고 개인적으로 힘을 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을 믿고 의지하면서 조금씩 변화하는 제 모습을 보았습니다.

예수님이 “나를 따라 오너라”라고 말씀하시면서, 제자들에게 바란 것은 자신들의 능력을 계산하고 재보는 것이 아니라, 그저 “예!”라고 대답하고 예수님을 따라 나서는 모습일 겁니다. 사람 낚는 어부가 되는 것은 자신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만들어 주시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느님의 은총으로 변화된 사람들을 생각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신약에 보면 이런 일들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여러 남자가 있었던 사마리아 여인을 선교사로 삼으셨고, 자신의 몸에 값비싼 향유를 부은 죄 많은 여인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온 세상 어디든지 이 복음이 선포되는 곳마다, 이 여자가 한 일도 전해져서 이 여자를 기억하게 될 것이다.” 또 베드로가 세 번이나 예수님을 모른다고 했지만, 그를 교회의 반석으로 세워 주셨습니다. 그리고 일곱 마귀가 들었던 마리아 막달레나에게는 부활의 첫 번째 증인이 되는 명예를 주십니다.

이렇듯 예수님이 우리에게 보여 주시는 모습은 이것입니다. ‘네가 어떠한 모습이든지 간에 너를 하느님의 사랑에서 갈라놓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괜찮다. 다시 한번 힘을 내 일어서 보거라.’


김기현 요한 세례자 신부 (인천가톨릭대학교 영성지도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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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2-05-03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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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계명을 잘 들어, 주 너희 하느님을 사랑하고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그분을 섬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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