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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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자 수녀의 하느님 자취 안에서] 54. “지금은 움켜쥔 손을 펼쳐야 할 때”

조경자 수녀(한국천주교여자수도회장상연합회 JPIC분과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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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농사지을 때에 나는, 씨앗을 심었을 뿐인데 잎이 자라고, 꽃이 피고, 열매 맺는 것만 봐도 행복했었다. 마치 아이가 뭘 해도 예뻐 보이는 것처럼, 그저 신기하고 놀라운 일들이었다. 그런데 심으면 거둔다는 것을 감각을 알고서는 가능하면 좀 더 많은 수확을 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마을 어르신들께서는 우리에게 농약과 비료를 사용해야 크고, 많은 수확을 할 수 있을 거라며 조금은 한심스럽다는 눈으로 바라보셨다. 더군다나 땡볕 더위에도 풀을 뽑는 것을 보실 때에는 “왜 이렇게 힘들게 일해. 제초제를 뿌리면 되는구먼”이라고 말씀하시며, 당신들 논이나 밭둑을 한여름에도 노랗게 물들인 주범인 제초제 사용을 권하셨다. 정말 고된 노동 앞에서 제초제나 비료, 농약은 유혹이 아닐 수 없다. 더욱이 고령의 어르신들이 외롭게 땅을 일구실 때에 이 유혹에 넘어가지 않기란 정말 어려우실 것이라는 점도 생각하게 된다.

우리 공동체는 수확이 아니라, 땅을 살리는 데에 주력하기로 마음을 모았고, 이후에는 농사에 따랐던 유혹이 더는 유혹이 될 수 없었다. 한 해, 두 해 지나고 나니 오히려 마을 어르신들께서 “수녀님들이 어떻게 농사짓는지 다 아는데, 나 좋자고 이 땅 옆에 농약 치면 바람에 다 날려서 수녀님네 땅까지 가는데 어떻게 약을 뿌려? 예전에는 일주일에 한 번씩 약을 뿌렸는데, 이제는 일 년에 두어 번 치고 말어”라는 말을 건넸다. 어르신들의 이런 고백은 또 하나의 열매처럼 다가왔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기뻤던 것은, 땅이 건강을 회복해가는 것을 보게 되었을 때였다. 처음 이 땅에 들어왔을 때에 돌을 붙잡고 있는 흙도 돌처럼 단단했었다. 그런데 흙의 얼굴색이 달라지고, 냄새와 촉감이 달라져서, 마음에 깊이 묻어두었던 상처가 드디어 아문 사람의 얼굴처럼 행복해 보였다. 본래 있었던 생명력을 땅이 다시 기억하게 되어 회복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고 보니 농사짓는 우리들의 생각과 가치관, 감수성의 회복은, 땅과 다른 모든 피조물이 스스로 제 몫을 기억해 내는 것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우리’에게로 오므렸던 손을 펴기 시작했을 때에, 우리에게로 오므리던 마음의 습성도 펼쳐졌다. 땅도, 작물도, 이웃의 마음도 펼쳐졌다.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습니다”라고 호소하시는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말씀은, 그저 좋은 말씀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삶 곳곳에서 이 연결됨을 찾고 회복해야 하는 삶의 원리이다. 우리는 이 원리를 밭에 농약을 사용하듯이 단절시켜 왔다. 농약을 뿌리는 것은 비난하면서도 농약을 뿌리는 습관은 내려놓지 못한다. 만약 우리가 아직도 열매를 보며 감사를 모르고, 쉽게 얻으려 하며, 버려지는 음식에 무감각하다면,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 농약을 뿌리는 것에 ‘동의’하는 것이다.

‘기후변화’에서 ‘기후위기’, 그리고 이제는 ‘기후 종말론’이라는 표현을 한다. 너무 빠르게 변하는 기후의 징조들에 우리는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격이다. 최근 1년이라는 시간이 이토록 짧게 느껴진 때가 없었다. 그야말로 째깍째깍 초침이 가는 것을 듣게 된다. 지구의 온도 상승에 가속이 붙어서 더는 자신이 스스로 제어할 능력을 넘어선 모양이다. 유럽 각지에서 폭염으로 목숨을 잃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런 와중에도 우리는 전쟁을 선택하고, 식량 창고와 식량 수급 선박을 부수어가며 힘을 과시하고, 그 속에서 무기를 사고, 팔며 이권을 챙기는 무모한 짓들을 하고 있다. 전염병에는 벌벌 떨면서 흉기를 휘둘러 갈취하려는 못된 짓을 하고 있다. 힘 있는 이들에게 아부하고, 줏대 없이 여기 붙었다가 저기 붙어가며 국민을 기만하는 언론은 자기 목적만이 아니라, 정보를 접하는 이들의 방향도 잃게 하고 있다. 노동자가 최소 임금으로 어렵게 살아도 모른 척하며, 자기가 입을 손실에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쥐고 있던 손을 펼치고, 머리를 맞대며 방향을 모색해도 늦은 때에 엉뚱한 행동을 하는 우리는 “지성과 사랑이 부여된 인간”의 모습이 아니다. 아직도 자기가(나라 혹은 기업, 가정) 수확할 것과 자신의 창고만 늘릴 요량을 펴려는 속셈을 가지고 손을 움켜쥐고 있다면, 이젠 좀 펼쳐야 할 때이다. 그것이 하늘에 보화를 쌓는 길이다. 내일 함께 빛을 볼 수 있기를 희망하는 길이다.

조경자 수녀(한국천주교여자수도회장상연합회 JPIC분과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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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2-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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