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30일
사목/복음/말씀
전체기사 지난 연재 기사
비방, 자신과 듣는 사람의 영적 생명 죽이는 ‘죄’

[김용은 수녀가 묻고 살레시오 성인이 답하다] 7. 험담이나 가십도 죄가 되나요?

폰트 작게 폰트 크게 인쇄 공유

▲ 서로 험담하거나 비방만 하지 않는다면. 아마도 이 세상의 불의와 죄악의 많은 부분도 사라질 것이다. 비방은 자신과 듣는 사람의 영적 생명을 죽이는 행위이다.



사랑하올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성인께



안녕하세요. 성인께서도 아시죠? 지금 이 세상을 살아가는 저희에겐 분신 같은 스마트폰이 있다는 것을요. 전철이나 버스를 탈 때는 물론 길을 걸을 때도 뚫어지라 봅니다. 무엇을 보느냐고요? 어떤 조사에 의하면 주로 메신저와 뉴스 그리고 웹서핑과 SNS가 주된 활동이라고 합니다. 최근 우리 한국이 ‘갈등 공화국’이란 말이 나오는데요. 이렇게 갈등을 방조하고 부추기는 데는 넘치는 가십성 보도와 이를 빠르게 퍼 나르면서 확대 재생산하는 온라인 공간, 그리고 여기에 빠져 사는 우리가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데요. 악의적인 가십일수록 더 잘 퍼지는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 ‘참 좋은 사람이더라’ 보다는 ‘참 나쁜 사람이더라’라는 정보가 훨씬 더 자극적이니깐요. 우리의 뇌는 부정적인 판단과 험담에 더 빠르게 집중하게 되고요. 그래서 쉽게 뒷말을 하게 되나 봅니다. 성인의 시대에도 험담이나 가십이란 것이 있었을까요? 가십도 죄가 될까요? 교황님께서는 뒷담화만 하지 않아도 성인이 된다고 하셨는데요. 뒷말도 죄가 된다는 것일까요? 궁금합니다.

말 넘치는 세상, 사소함 속에도 진중함이 묻어나는 말, 가벼운 듯 따뜻한 그래서 웃게 해주는 그런 말이 그리운 오늘, 성인께 김 수녀가 일곱 번째 편지를 드립니다.

사랑하는 김 수녀와 독자들에게



김 수녀가 살아가는 세상은 내가 살던 세상과는 정말 많이 다르긴 하네요. 하지만 내가 살던 세상에서도 냉혹한 비판과 비난이 난무했어요.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에게 위선이며 미친 짓이라고 공공연하게 떠들어대는 사람, 그리고 할 일이 없어서 성당 주변이나 빙빙 돌고 있다며 뒷말하는 사람들도 있었고요. 사람들에게 인정을 못 받으니 봉사활동이나 하면서 인정받으려고 애쓴다며 비아냥대기도 하고요. 물론 지금의 세상은 디지털기기사용으로 확인되지 않은 정보가 더 빠르고 더 쉽게 자극적으로 확산되니 내가 살던 시대와는 비교하기 어렵겠네요.

가십이나 뒷담화가 죄냐고요? 가십을 시작할 때 누구나 가볍게 서로의 정보 교류를 위해 하겠지요. 서로 친교를 나누기도 하고 재미도 있고요. 하지만 생각해보면 모든 죄는 그렇게 시작되는 거 같아요. 여럿이 모여 남 이야기를 하다 보면 성급하게 판단하고 험담도 하면서 자기만족에 빠지게 되지요. 특정 인물을 불신하고 경멸하는 말을 하면서 스스로 높아지려는 유혹도 생기겠지요.

가십의 사촌격인 비방이란 것이 있어요. 이는 바이러스와 같아서 여기저기 옮겨 다니면서 사람들과의 관계를 병들게 하지요. 그로 인해 누군가의 명예를 부당하게 훼손한다면 그것은 죄라고 생각해요. 남의 물건을 훔친 사람을 도둑이라 하지요. 인간이 가지고 있는 귀중한 자산은 바로 명예(honor)입니다. 명예 하면 어떤 높은 직위를 연상하겠지만, 사람이라면 마땅히 누리고 받아야 할 인격적인 존엄이나 품위이지요. 그래서 법에도 명예훼손이란 죄가 있다고 생각해요. 타인의 명예를 훔친 죄이지요.

우리 인간에게는 세 종류의 소중한 생명이 있는데요. 영적 생명과 육적 생명 그리고 사회적 생명입니다. 죄는 영적인 생명을 소멸시키고 죽음은 육적 생명을 앗아가지만, 비방은 바로 사회적인 생명을 죽이지요. 가십은 누군가에게 모욕적일 수 있는 확인되지 않은 정보를 나누면서 나도 모르게 험담과 비방으로 흘러가게 해요. ‘하더라’ 하면서 같이 동조하고 죄의식 없이 가십의 덫에 걸려 그 자체를 즐기기도 하고요.

가십이나 뒷말 자체를 무어라 단죄하긴 어렵겠지요. 직장동료들이나 친구들이 함께 모여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상호작용하고 친교를 나눌 수 있겠지요. 그러다가 가십의 사촌인 비방으로 간다면 그것은 심각한 죄라고 말할 수 있어요. 게다가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이라면서 이 사람 저 사람에게 험담을 늘어놓는 행위도 조심해야겠어요. 남들이 다 아는 것이라면서 늘어놓는 이런 험담은 질이 안 좋은 비방입니다. 이는 말하는 자신과 그것을 듣는 사람의 영적 생명을 죽이는 것이고 동시에 비방당하는 사람의 사회적 생명을 죽이게 되니까요. 결국 세 사람이 죽는 것이지요. 칭찬하는 것처럼 하면서 비꼬거나 농담하는 것도 사악한 행동이에요. ‘아, 그 사람 참 괜찮은 사람이었는데…’ 하다가 교활하게 말을 바꾸고 가볍게 농담하듯 비아냥거리는데 이는 잔인한 비방입니다.

만약 비방을 없앨 수만 있다면 아마도 이 세상의 불의와 죄악의 많은 부분도 사라지리라 믿어요. 가십의 늪에 빠지는 것을 조심하세요. 우리를 험담과 비방으로 끌어들이니깐요.

예수님으로 사시길! Live Jesus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씀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22-08-17

관련뉴스

말씀사탕2024. 3. 30

지혜 7장 10절
나는 지혜를 건강이나 미모보다 더 사랑하고 빛보다 지혜를 갖기를 선호하였다. 지혜에서 끊임없이 광채가 나오기 때문이다.
  • QUICK MENU

  • 성경
  • 기도문
  • 소리주보

  • 카톨릭성가
  • 카톨릭대사전
  • 성무일도

  • 성경쓰기
  • 7성사
  • 가톨릭성인


GoodNews Copyright ⓒ 1998
천주교 서울대교구 · 가톨릭굿뉴스. All rights reserved.